[콘텐츠 트렌드③] e스포츠, 인도네시아 경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엔진
게임 대회에서 산업 생태계로 확장된 디지털 경제의 실험장
[KtN 전성진기자]인도네시아의 e스포츠 산업은 더 이상 여가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모바일 중심의 폭발적 성장과 MZ세대의 참여 확대가 맞물리면서 e스포츠는 국가 단위의 산업 생태계로 자리 잡았다. ‘Mobile Legends’, ‘PUBG Mobile’, ‘Free Fire’ 같은 모바일 게임이 중심 무대에 올랐고, 대회는 문화행사와 경제 활동을 동시에 이끄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시청자 수는 2024년 기준 5천만 명을 넘었고, 관련 산업 규모는 연 7억 달러에 달한다. 경기장은 이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장이자 고용의 장으로 변모했다.
모바일 레전드 프로리그(MLBB MPL)는 인도네시아 e스포츠 산업을 대표하는 리그다. 매 시즌마다 8개 팀이 참가하며, 결승전은 방송과 스트리밍을 통해 전국으로 중계된다. 2024년 결승전 누적 시청자는 1,800만 명에 이르렀다.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에서 열린 결승 현장은 수천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찼고, 티켓은 예매 개시 3시간 만에 매진됐다. 현장에는 삼성전자, 텔콤셀, 토코피디아, 인도미 같은 대기업이 후원 부스를 설치했고, 팬들은 굿즈와 한정판 아이템을 구매하며 소비 행위를 즐겼다. 경기와 쇼핑, 공연이 결합된 복합형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e스포츠의 급성장은 인도네시아 통신 인프라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5G 상용화 이후 대회 중계 품질이 향상되었고, 스트리밍 서비스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팬들은 모바일로 실시간 경기를 시청하며 채팅으로 선수와 소통한다. 2024년 인도네시아 인터넷 트래픽의 15퍼센트가 e스포츠 관련 콘텐츠에서 발생했다는 통계는 산업의 규모를 보여준다. 자카르타 IT정책연구소 리자 아디 박사는 “e스포츠는 더 이상 단일 게임의 성패에 의존하지 않는다”며 “플랫폼, 광고, 중계, 결제, 굿즈가 맞물린 하나의 경제 생태계”라고 분석했다.
이 생태계의 중심에는 MZ세대와 여성 팬층이 있다. 평균 연령 22세의 팬들은 오프라인 경기뿐 아니라 SNS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여성 시청자 비율은 35퍼센트를 넘어섰고, 여성 프로선수와 캐스터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스포츠는 성별 구분을 약화시키고, 젠더 중립적 문화로 발전하는 흐름을 보인다. 인도네시아 e스포츠협회(IESPA)는 2025년까지 여성 리그를 독립 운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성 게이머 아유 프라타미는 “e스포츠는 실력 중심의 세계이며, 팬층의 다양성이 산업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산업 확장은 새로운 일자리와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e스포츠 제작, 중계, 해설, 콘텐츠 편집, 이벤트 기획 등 다양한 직종이 생겨났다. 2024년 기준 인도네시아 e스포츠 관련 종사자는 2만5천 명으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대학도 변화에 나섰다. 반둥공과대학과 빈누스대학교는 e스포츠 매니지먼트와 게임 비즈니스 과정을 개설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대형 광고주와 글로벌 기업도 시장에 빠르게 진입했다. 코카콜라, 레노버, 유니레버 등 다국적 브랜드가 리그 후원과 팀 파트너십을 통해 인니 시장 공략에 나섰다. 광고비 규모는 3년 새 4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는 e스포츠를 디지털경제 전략의 한 축으로 보고 있다. 창조경제청(BEKRAF)과 청소년체육부(Kemenpora)는 2023년 공동으로 ‘e스포츠 발전 로드맵 2030’을 수립했다. 로드맵은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첫째, 인니 자체 리그의 국제화, 둘째, 지역별 e스포츠 허브 구축, 셋째, 청년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는 지방 도시에도 e스포츠 경기장을 건립하고, 기업이 리그를 운영할 경우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또한 프로선수 등록제와 표준 계약서를 도입해 선수 보호 장치를 강화했다. 정책 담당자 안디 수프리안토는 “e스포츠는 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경제 영역으로, 국가 산업 전략의 일부로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하다. 넥슨, 크래프톤, 네오위즈 등 한국 게임사는 인도네시아 대회 후원과 콘텐츠 공동 제작을 확대하고 있다. 크래프톤은 2024년 ‘PUBG Mobile Indonesia Series’를 후원하며 현지 방송사 RCTI와 협업을 진행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자카르타에서 ‘한-인니 e스포츠 비즈니스 포럼’을 열고 양국 기업 간 공동 리그 설립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글로벌협력센터 이현수 센터장은 “인도네시아의 젊은 시장은 한국 e스포츠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시장 성장과 함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무분별한 스폰서 계약, 선수 과로, 상금 미지급 등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e스포츠노동연합은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만큼 공정한 계약과 노동 환경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리그 등록제 도입과 함께 상금 분배 기준을 명문화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e스포츠 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단순 흥행 중심이 아닌 제도적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도네시아 e스포츠는 단순한 경기장을 넘어 경제의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플랫폼과 방송, 광고와 결제가 결합한 새로운 산업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MZ세대의 참여는 시장의 지속성을 높이고 있다. 정부의 정책 지원과 글로벌 기업의 협력이 맞물리면,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e스포츠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게임 대회는 이제 문화 소비를 넘어 경제와 기술을 연결하는 실험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