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기획] 미래 외교, 실용과 구조로 제도화되다
이재명정부의 외교, 선언에서 실행으로 옮겨가는 구조 변화
[KtN 박준식기자]이재명정부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세운 외교의 기조는 ‘실용’과 ‘구조’라는 두 축으로 정리된다. 대통령실 브리핑과 발언록을 종합하면, 외교를 특정 진영이나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 이익과 제도적 지속성의 문제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주 회의 폐막 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협력의 지도 위에서 상생의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대통령실이 ‘한국 외교의 철학적 선언’으로 해석한 구절이다. 협력은 이재명정부 외교의 중심 언어가 되었다. 다자 협력, 민간 참여, 기술 공유를 통해 경쟁 대신 연대를 선택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경주에서 채택된 세 가지 공식 문서, 즉 ‘경주선언’, ‘APEC AI 이니셔티브’,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프레임워크’는 그 철학을 제도로 옮긴 결과였다. 세 문서는 각각 성장 회복과 포용적 번영, 기술혁신의 공동 관리, 인구 변화 대응의 협력체계를 담고 있다. 외교부는 “APEC 역사상 최초로 인구 프레임워크가 채택되었고, 의장국이 주도한 AI 협력문서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이재명정부가 이번 회의를 통해 강조한 외교의 첫 번째 축은 실용 외교였다. 실용 외교는 정책의 원칙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리트리트 세션 모두발언에서 “AI 전환에 친화적인 환경 조성과 민관 협력 확대, 인프라 투자를 통해 혁신을 공동번영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상징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 과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용 외교의 실제 구현은 ‘공급망 안정 협력’, ‘인구구조 대응 협력’, ‘AI 공정성 논의’ 등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APEC 전체회의에서 ‘공급망 안정화법’ 제정 계획과 ‘민관 합동 공급망 포럼’ 개최를 언급하며, 국제무역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경제 구조의 안정이 외교 협력의 신뢰를 높이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축은 구조 외교다. 구조 외교는 회담 중심 외교를 제도 중심 외교로 전환하는 시도다. 이재명정부는 APEC이라는 다자 틀 속에서 의제별 연속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무역·투자, 디지털경제, 인적교류, 포용성장이라는 네 개의 하위 세션을 독립적으로 운용해 실무 부처가 연속적으로 참여하도록 설계했다. 대통령실 브리핑은 이를 “의장국의 회의 운영을 일회성이 아닌 제도적 연속성으로 확장한 구조”라고 평가했다.
경주 회의 후 진행된 양자 외교에서도 구조 외교의 틀이 드러났다. 중국과는 원–위안 통화스왑 재체결, FTA 서비스·투자 협상 가속화, 초국가 범죄 대응 MOU 체결, 실버산업 및 청년창업 교류, 농산물 무역 원활화 등 다층적 합의가 이뤄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관세 협의, 금융투자 협력 패키지, 원전 및 에너지 협력 확대, 조선 협력체계 신설 등 분야별 구조 협력이 병행되었다.
호주와는 핵심광물·에너지·방산 협력을 확대하고, 캐나다와는 국방·자원 협력을 강화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아세안 국가들과는 디지털경제, 인프라, 보건, 초국가 범죄 대응을 중심으로 협력 구조가 넓어졌다. 싱가포르와의 디지털·AI 협력 MOU, 제주산 축산물 수출 합의, 녹색해운항로 협정은 민생과 산업의 경계를 잇는 실질적 성과로 기록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각 회담에서 “외교는 선언보다 구조, 약속보다 실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정상 간 합의가 부처 간 사업, 지방정부·민간 협력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의 실행 구조가 단기 이벤트가 아닌 정책 순환 체계로 고정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정부 외교의 세 번째 축은 지속 가능성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APEC 의제 중 ‘포용적 성장’ 부분을 가장 강조했다. 성장의 성과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교육, 고용, 복지, 기술훈련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점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포용은 경제정책의 마무리가 아니라 외교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경주 회의 폐막 기자회견에 공식 기록되어 있다.
이재명정부의 지속 외교는 의제의 일관성에서 드러난다. APEC 이후에도 대통령은 한중·한일 회담, 아세안+3, G20 준비 논의 등에서 동일한 주제를 이어갔다. AI, 인구, 공급망, 포용성장은 하나의 문장으로 통합된다. “사람 중심의 혁신, 모두가 함께 가는 성장.” 대통령실은 이 문장을 이번 회의 외교 요약문 첫머리에 넣었다.
이재명정부 외교의 또 다른 특징은 현장성이다. 외교부와 산업부는 APEC 합의 이후 민간 협력체, 산업 간담회, 수출 설명회를 연속 개최했다. 실무 협의는 외교 일정의 연장이 되었고, 외교의 결과가 산업 현장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명확해졌다. 대통령실은 이를 “정상회담의 내용이 현장에서 반복 실행되는 순환 구조”라고 표현했다.
첫째, 외교는 경제와 기술, 문화와 안보를 잇는 통합 정책이다.
둘째, 협력의 구조가 제도화되어야 지속이 가능하다.
셋째, 외교의 결과는 국민의 삶으로 돌아와야 완성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폐막식에서 “동맹은 안정의 기둥이고, 협력은 번영의 다리”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경주 회의 발언록에 기록된 그대로다. 이재명정부의 외교가 지향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진영의 선택이 아니라 균형의 설계, 경쟁의 구도가 아니라 연대의 구조, 단기 성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제도다.
이번 APEC은 선언의 외교가 아니라 설계의 외교였다. 경주에서 제시된 협력의 문장은 다자 협력의 새 구조를 열었고, 각국의 실무 협정은 그 문장을 정책으로 바꾸었다. 이재명정부의 K-외교는 이제 외교의 언어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체계로 정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