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②] 민간에서 세계로… 6년의 길, 공동등재의 현실을 세우다
개인의 신념이 제도적 논의로 바뀌기까지, 태권도 외교의 이면
[KtN 박준식기자]남북이 함께 태권도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논의가 국가 차원의 정책 의제로 발전했다. 논의의 출발점은 6년 전 민간의 작은 움직임이었다. 제도적 지원이 없던 시기에 태권도의 국제적 가치와 문화적 정통성을 알리려는 노력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이 오늘의 공동등재 추진으로 이어졌다.
2019년 출범한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을 이어왔다. 추진단은 태권도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한민족의 생활철학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각국 유네스코 관계자와 태권도 단체를 방문했다.
초기 활동은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남북이 공유하는 문화적 뿌리로서 태권도의 본질을 복원하고,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문화 외교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추진단의 목표였다.
2022년 7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태권도연맹(ITF) 집행위원회는 남북 공동등재 논의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최재춘 단장은 리용선 ITF 총재와의 면담을 통해 남북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태권도 역사에서 남북이 문화유산을 함께 추진하기로 한 첫 공식 협력으로 기록됐다.
빈 합의 이후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세계태권도연맹(WT)과의 협의도 병행했다. 남한의 WT와 북한의 ITF는 운영 체계가 다르지만, 두 단체 모두 태권도의 철학적 근원과 문화적 가치에는 이견이 없었다. WT 관계자들도 태권도의 남북 공동등재를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문화 프로젝트’로 인식하며 협력 의사를 밝혔다.
추진단은 국제기구와의 접점을 꾸준히 넓혔다. 유네스코 산하 문화다양성포럼, 국제스포츠위원회 회의 등에서 태권도의 남북 공동등재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유럽과 아시아의 유네스코 위원국 일부는 “태권도의 공동등재는 평화와 연대를 실현하는 유네스코 정신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협력 기반이 제도적으로 확대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국기원, 태권도진흥재단이 협력체계를 구성해 실무 논의를 진행했다. 전북 무주 태권도원은 국제회의와 학술행사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공동등재 추진의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은 등재신청서 작성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조성균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태권도의 역사, 전승 체계, 남북 간 차이와 공통점, 문화적 맥락을 분석하며 유네스코 심사 기준에 맞는 학문적 근거를 구축 중이다. 연구진은 2025년 12월까지 등재신청서 초안을 완성해 제출할 계획이다.
양태경 경희대학교 겸임교수는 “태권도는 한국인의 정신과 철학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남북 공동등재는 단절을 넘어 협력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에는 정치권의 지원도 본격화됐다. 전현희 국회의원이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수석 명예추진단장으로 위촉되며, 국회 차원의 논의가 시작됐다. 전현희 의원은 “북한의 단독 등재 신청은 대한민국의 문화 주권과 정통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남북 공동등재를 통해 문화적 정통성과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기원 윤웅석 이사장은 “태권도는 215개국에서 2억 명 이상이 수련하는 대한민국의 국기다. 종주국으로서 태권도의 가치를 지키고,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남북 공동 시범단 구성을 제안하며 협력의 실질적 기반을 넓히고 있다. 추진단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태권도원을 중심으로 남북 시범공연과 국제포럼을 병행 추진하고, 세계태권도평화축전 개최를 검토 중이다. 공동 시범단이 실현되면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에게 남북이 문화적으로 연대하고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사회의 반응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러 유네스코 위원국은 태권도의 공동등재를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평가하며, “남북이 문화로 대화하는 첫 사례”라는 반응을 보였다. 유네스코 내부에서도 공동등재 추진이 ‘문화 외교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언급되고 있다.
KOREA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은 국제 전문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문화유산 전문가, 국제법 자문단, 유네스코 전직 관계자가 자문위원단으로 참여해 등재신청서의 논리적 완성도와 법적 정당성을 보완하고 있다.
최재춘 단장은 “태권도의 공동등재는 남북이 함께 평화를 향해 걷는 과정”이라며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태권도의 문화적 가치와 한민족의 정체성을 세계에 다시 새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년에 걸친 민간의 노력은 제도적 논의로 이어졌다. 문화와 외교, 학문이 함께 움직이며 현실적인 추진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태권도의 남북 공동등재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문화가 정치보다 먼저 평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