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트렌드⑥] 감정이 데이터가 되는 시대, ‘포스트 팝’의 도래

플레이리스트보다 감정, 알고리즘보다 진심 — 음악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2025년의 흐름

2025-11-05     신미희 기자
“보여드릴 게 많다” 제이홉 콘서트에 완전체 BTS 총출동 사진=2025 06.13 @BTS_twt_AGUUSTD· 엑스 갈무리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2025년의 글로벌 음악 시장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좌표 위에 서 있다. 차트는 여전히 수치로 움직이지만, 그 수치를 움직이는 힘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다. 스트리밍의 재생 시간, 반복 청취율, SNS 인용 빈도, 댓글의 정서 분석까지 모든 지표가 ‘감정 반응’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산업은 기술의 언어로 진화했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음악은 결국 인간의 언어를 회복한 음악이다. 이 흐름을 가리켜 비평가들은 ‘포스트 팝(post-pop)’이라 부른다. 팝 이후의 팝, 즉 유행과 마케팅의 시대를 지나 다시 감정이 중심이 된 음악의 귀환이다.

이번 주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는 그 변화를 실감하게 만든다. HUNTR/X의 골든이 1위를 지키는 가운데, 알렉스 워렌의 오디너리와 올리비아 딘의 맨 아이 니드가 각각 4위와 5위로 상승했고, 사자 보이즈의 소다 팝이 8위를 기록했다. 모두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 곡이다. 화려한 비트나 거대한 프로덕션보다 ‘진짜 감정’을 앞세운 노래들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과거의 클릭 중심 구조를 버리고, ‘청취자의 체류 시간’을 핵심 변수로 삼고 있다. 노래가 끝나도 재생을 멈추지 않고 같은 곡에 머무는 시간, 후렴을 반복해 듣는 패턴이 새로운 성공의 척도다. 리스너는 자극이 아닌 위로를, 강렬함이 아닌 지속적인 몰입을 원한다. 알고리즘은 결국 인간의 감정 데이터를 학습하며, 다시 인간의 감정을 선택하게 되었다.

포스트 팝의 핵심은 ‘감정의 즉시성’이다. 과거의 팝이 드라마처럼 서사를 쌓았다면, 지금의 음악은 대화처럼 반응한다. 알렉스 워렌의 오디너리는 한 세대의 불안과 허무를 포용했고, 올리비아 딘의 맨 아이 니드는 사랑의 회복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냈다. 두 곡 모두 화려한 작법보다 현실의 언어를 선택했다. 리스너는 그 노래 속에서 자신의 하루를 듣는다. 음악이 공감의 거울이 되는 시대, 감정은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 되었다.

사자 보이즈의 사례는 포스트 팝의 산업적 구조를 보여준다. 소다 팝과 유어 아이돌은 각각 다른 언어, 다른 리듬, 다른 문화권의 정서를 조합했지만, 그 결과는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다국적 팀이 협업으로 만든 이 음악은 더 이상 ‘K팝’이나 ‘라틴 팝’ 같은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를 상징한다. 곡은 국적이 아니라 공감의 반경으로 정의된다. 사자 보이즈는 기술보다 감정을 앞세운 첫 번째 다문화형 팝 플랫폼이다.

브루노 마스, 빌리 아일리시, 더 위켄드 같은 거장들은 포스트 팝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브루노 마스는 다이 위드 어 스마일로 세대 간의 감정 연대를 증명했고, 빌리 아일리시는 버즈오브어페더로 세대의 불안과 위로를 연결했다. 더 위켄드는 세이브 유어 티어스와 다이 포 유를 통해 감정의 어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네임밸류보다 감정의 밀도가 음악을 오래 머물게 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인기의 지속이 아니라 ‘공감의 지속’이다.

감정은 이제 산업의 언어가 되었다.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드 기반 플레이리스트’를 핵심 큐레이션 모델로 삼고 있다. 슬픔, 희망, 혼란, 안정, 회복 같은 감정 분류가 장르를 대체했다. 사용자는 장르가 아닌 감정으로 음악을 탐색한다. 산업은 장르를 해체했고, 리스너는 감정으로 음악을 소비한다. 포스트 팝은 이렇게 장르의 종말 위에서 피어난다.

빌보드 1위 ‘골든’의 주인공 '케데헌' OST 작곡  이재, 음악으로 광복 80년을 노래하다  사진=2025 08.14  이재 SN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음악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최근의 히트곡들은 후렴의 길이를 줄이고 브리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노래의 감정적 정점이 전통적 구조의 후반이 아닌, 중간 혹은 첫 30초 안에 배치된다. 청취자의 집중 시간을 감안한 설계다. 하지만 이 변화가 음악을 단순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곡은 짧은 시간 안에 더 정밀한 감정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프로듀서들은 이제 비트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조율하는 설계자가 되었다.

포스트 팝의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 복원’이다. 기술이 완성한 세계에서 예술은 다시 불완전함을 탐구한다. 빌리 아일리시는 낮은 음성, 숨소리, 떨림 같은 인간의 결을 그대로 남기며 완벽함 대신 진심을 선택했다. 브루노 마스는 소울의 질감으로 감정의 깊이를 되살렸고, 사자 보이즈는 서로 다른 배경의 감정들을 조립하며 세계의 다양성을 노래했다. 음악은 더 이상 완벽한 기계음이 아니다. 음악은 인간의 흔들림을 품은 데이터다.

차트의 데이터는 이 흐름을 명확히 증명한다. 2025년 상반기 기준, 감정 기반 곡(리얼리티 팝·어쿠스틱 팝·소프트 발라드)의 평균 체류 시간은 EDM·트랩 등 자극형 장르보다 2.3배 길다. 사용자는 자극보다 공감에 오래 머무른다. 감정의 지속성이 음악의 수명을 연장하는 시대다. 포스트 팝의 성공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음악이 인간을 얼마나 깊게 이해하느냐가 차트를 결정한다.

결국 포스트 팝은 음악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노래는 다시 메시지의 수단이 아니라 감정의 대화가 되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모든 알고리즘의 핵심이다. 팝은 이제 감정의 언어이자, 세계가 공유하는 감성의 네트워크다.

감정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다시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이 순환 속에서 음악은 다시 인간으로 복귀했다. 골든, 오디너리, 소다 팝, 버즈오브어페더 같은 곡들이 그 증거다. 노래가 끝나도 감정은 남는다. 음악은 이제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이어주는 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