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트렌드⑦] 음악의 소유에서 감정의 공유로, 스트리밍 이후의 새로운 질서
플랫폼이 아니라 감정이 주도하는 시대 — 팬, AI, 아티스트가 함께 만든 ‘공동 감정의 네트워크’
[KtN 신미희기자]2025년 글로벌 음악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공유’다. 음악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청취 행위는 취향 소비를 넘어 감정의 교류로 확장됐다. 노래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수백만 명의 감정이 만나는 사회적 언어가 되었다.
최근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는 이런 흐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HUNTR/X, 사자 보이즈, 올리비아 딘,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가 차트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개인의 고백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결국 세계인의 감정 데이터로 귀결된다. 곡이 끝나도 여운이 남는 이유는 선율이 아니라 감정의 파장이 오래 이어지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역할도 달라졌다.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멜론, 유튜브뮤직 등 주요 서비스는 이제 단순한 재생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기록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작동한다. 사용자의 감정 변화와 반복 청취 패턴이 알고리즘에 반영되며, 비슷한 정서를 가진 청취자들이 하나의 감정 공동체로 묶인다. 음악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공유된 정서’의 집합으로 확장된다.
HUNTR/X의 대표곡 ‘골든’은 이 흐름의 상징적 작품이다. EJAE,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는 AI 기반 보컬 모핑 시스템을 활용해 각자의 감정선을 데이터화했고, 그 데이터를 토대로 서로의 톤과 리듬을 조율했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재현하는 촉매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골든’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완성된 첫 번째 ‘감정 설계형 팝’으로 평가받는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번 앨범 시리즈에서 감정의 구조를 하나의 서사로 구축했다. ‘더 페이트 오브 오필리아’, ‘엘리자베스 테일러’, ‘우드’, ‘엑추얼리 로맨틱’ 등 7곡이 차트 상위권에 동시에 머물며 거대한 감정의 서사를 완성했다. 스위프트는 곡마다 정서를 색상 코드로 분류해 청취자들이 자신의 감정 상태에 맞는 트랙을 선택하도록 설계했다. 팬은 노래를 듣는 청취자이자 감정 지도를 탐험하는 사용자로 변화했다.
빌리 아일리시의 ‘버즈 오브 어 페더’ 역시 감정 공유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팬들은 오픈 사운드 플랫폼 ‘비트셰어’를 통해 직접 리믹스, 화음, 언어 번역을 덧입히며 원곡의 감정을 확장했다. 12만 개가 넘는 팬 리믹스가 생성되었고, 곡은 하나의 원본을 넘어 ‘공동 감정의 기록물’로 진화했다.
스트리밍 시대가 음악 소유의 개념을 무너뜨렸다면, 포스트 스트리밍 시대는 감정의 공유를 새로운 중심에 세웠다. 음악의 가치가 재생 수가 아니라 감정 체류 시간으로 평가된다. HUNTR/X의 ‘골든’은 스트리밍 횟수보다 감정 반응 데이터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청취자가 노래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감정의 몰입도와 기억 지속성이 함께 상승했다. 음악은 청취가 아니라 머묾의 경험으로 측정된다.
산업의 구조도 함께 바뀌었다. 음원 유통사는 더 이상 ‘소리’를 판매하지 않는다. 감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운영한다. 브루노 마스 팬 커뮤니티는 그의 노래를 스트리밍하는 대신, 곡의 정서와 비슷한 분위기의 사운드를 함께 큐레이션해 공유한다. 팬은 노래를 소유하지 않아도 감정을 소유한다. 음원의 물리적 파일이 아니라 감정의 경험이 자산이 된 것이다.
음악 산업은 이제 감정의 지속성을 중심으로 성장한다. 레이블은 스트리밍 수익보다 감정 유지율을 핵심 지표로 관리한다. SNS에서 곡이 만들어내는 감정 파동의 길이가 곧 성공의 척도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더 페이트 오브 오필리아’, 사자 보이즈의 ‘유어 아이돌’, 빌리 아일리시의 ‘버즈 오브 어 페더’가 모두 긴 체류 효과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팬의 개념도 달라졌다. 과거 팬이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비하던 존재였다면, 이제 팬은 감정의 공동 저자가 되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팬들은 자신의 감정 변화에 맞춰 곡 순서를 바꾸고, SNS에 ‘오늘의 감정 트랙리스트’를 공유한다.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이 음악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음악은 개인의 일기를 대신 쓰는 언어가 되었고, 팬은 공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AI의 역할은 감정의 매개자다. AI는 청취자의 감정 리듬을 학습해 개인의 심리 상태에 맞는 음악을 제안하지만, 감정의 창조자는 인간이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반사하는 거울로 작동한다. 음악이 기술을 품어도 예술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존재한다.
2025년의 음악 산업은 결국 ‘감정의 공동 창작 시대’로 요약된다. 노래는 한 명의 예술가가 완성한 결과물이 아니라, 수많은 청취자의 감정이 모여 완성된 집단 예술이다. 감정이 음악을 만들고, 음악이 다시 감정을 만든다. 예술은 이 순환 속에서 사회적 의미를 회복하고 있다.
음악은 더 이상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다. HUNTR/X의 리듬, 테일러 스위프트의 서사, 빌리 아일리시의 숨결, 사자 보이즈의 집단 감정은 모두 이 시대의 새로운 구조를 증명한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이 연결되는 사회적 언어이자,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유일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