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트렌드②] 조나단 라슨, 창작 환경과 유산

뮤지컬 산업 구조와 사회 변화가 만든 새로운 기준

2025-11-24     김동희 기자
뮤지컬 '렌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에너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뮤지컬 렌트의 창작자 조나단 라슨은 1990년대 미국 공연 산업이 겪은 변화 속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라슨의 작업은 개인적 재능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당시 도시 구조 변화, 공연 산업 운영 방식, 음악 시장의 흐름이 라슨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라슨의 창작물은 개인의 주장을 관철한 결과물이 아니라 당대 환경을 관찰하고 대응한 산물에 가깝다. 2025년 한국 공연계에서 라슨을 다시 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0년대 초 뉴욕은 부동산 개발이 가속화되며 예술가가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이스트빌리지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 예술가는 작업 공간을 잃거나 생활비를 위해 예술 활동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미국 언론 보도에서도 도심 예술 밀집 지역의 해체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었다. 라슨은 이러한 환경에서 장기적인 직업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창작자의 조건을 관찰했고, 그 경험이 렌트에 직접적으로 반영됐다. 라슨은 단순한 예술 노동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도시 구조 변화와 공연 산업 운영 방식 간 상관관계를 서사적 요소로 연결한 사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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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슨이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전략도 주목 대상이다. 당시 브로드웨이 산업은 대규모 자본과 상업적 흥행을 중심으로 구조가 강화되던 시기였다. 라슨은 예술적 실험을 위해 오프브로드웨이 방식의 창작 환경을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공식 대형 극장에 진입하기 전 독립적인 실험 무대를 거치는 방식은 위험 부담이 크지만 대중과 가까운 소통 구조를 만드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공연학 분야 연구에서는 라슨이 예술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산업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선택한 전략을 생산 방식 다변화의 시도로 해석한다.

라슨의 음악 구성 방식은 당시 브로드웨이 주류와 기조가 달랐다. 전통 뮤지컬 음악이 관현악 기반 서정성을 강조한 반면, 라슨은 록 음악을 중심으로 서사와 감정을 구성했다. 이는 단순한 장르 변주가 아니라 청년 예술가 문화의 주류 음악을 공연 무대에서 재현한 방식이었다. 미국의 공연음악 연구자는 라슨의 작업을 대중음악과 공연예술의 경계에서 발생한 접합 사례로 분류한다. 기존 공연계는 록 사운드를 무대 표현의 중심으로 올리는 시도를 제한적으로만 수용해 왔기 때문에 라슨의 선택은 당대 기준에서 비주류적 방식이었다. 그러나 관객 반응 조사에서는 음악 구성 방식이 공연 접근성을 높였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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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슨의 사망은 작품과 창작 과정 해석에 영향을 끼쳤다. 1996년 렌트 공연 개막 전날 라슨이 돌연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며 작품은 대중적 관심을 빠르게 모았다. 사후 신화화 위험을 지적하는 연구도 있지만, 라슨 생전 작업 자료를 기반으로 한 분석에서는 작품 구도가 당시 도시 문제를 기록하는 형식임이 일관되게 확인된다. 조나단 라슨이 중요하게 고려했던 사회적 조건은 에이즈 확산이 초래한 보건 격차와 의료 접근성 문제였다. 이 문제는 공연 서사에서 주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라슨은 에이즈 관련 연구 지원 활동에도 참여하며 질병과 낙인 문제를 공연 밖에서도 논의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라슨의 창작 세계는 개인 고통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하는 방식과 거리가 있다. 서사 구성 원칙이 인물 간 경쟁과 승리를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슨의 작업은 도시 속에서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시민의 생활 조건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에 가깝다. 관람자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감정을 고정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할 수 있다. 공연 속 인물은 이상화와 동정 모두에서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왔다. 이 구성 방식은 공연 속 관람자 동선을 결정짓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는 사례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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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슨의 작업 방식은 산업 내부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렌트 흥행 이후 브로드웨이에서는 비영리 극단과 독립 제작진이 중심이 되는 창작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흐름이 강화됐다. 대규모 상업 자본 없이도 관객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증명된 이유에서다. 공연학계에서는 렌트를 대형 뮤지컬 중심 시장에서 발생한 균열 사례로 분석한다. 다양한 집단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때, 공연 시장 전체의 창작 풀과 관객 폭이 넓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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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슨의 창작 결과물이 동시대 문화산업과 직접 연결된 측면도 있다. 1990년대 미국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다양성과 정체성 정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 공연산업에서도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주요 소비 주체로 고려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라슨은 이 흐름을 창작 과정에서 고려했다. 등장인물 구성과 관계 설정은 단순히 대표 사례를 나열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생활 조건의 구조적 변화를 서사 요소로 구성했다. 등장인물의 직업, 주거환경, 관계 갈등을 지역 사회 변화와 연관성 있게 설계한 구조가 당시로서는 드문 방식이었다.

라슨이 남긴 작업 방식과 결과물은 오늘 유효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공연 기획 단계에서 연출 포커스가 인물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변화 관찰의 수단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라슨의 창작 방식은 예술계 내부에서도 창작자 안전망, 예술 노동 가치, 기회 접근성 등 중요한 의제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러한 의제는 현재 한국에서도 공연창작지원제도와 예술인 고용 환경 논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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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한국에서 라슨의 창작 세계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은 단순한 기념 활동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공연 산업은 작품 다양성 확보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특정 장르와 형식에 쏠린 편중 현상은 산업 기반을 좁힐 위험 요인으로 분석된다. 라슨의 작업 방식은 창작자 중심 관점에서 공연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창작자가 직접 시대 환경을 관찰하고 작품 구성에 반영한 사례는 지금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조나단 라슨의 창작은 개인 서사 중심으로 해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된다. 라슨 개인의 비극이나 천재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창작 환경 분석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라슨이 남긴 작업은 당대 사회 변화를 공연예술에서 기록하는 하나의 체계로 분류할 수 있으며, 산업 구조 변화와 지역사회 문제를 공연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2025년 재공연이 예정된 렌트는 조나단 라슨의 창작 기획 방식이 오늘 공연계에서 여전히 작동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