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트렌드③] 렌트 속 관계 구조와 정체성 표현
[공연 트렌드③] 렌트 속 관계 구조와 정체성 표현
[KtN 김동희기자]뮤지컬 렌트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거주하는 인물들의 관계망을 중심 구조로 삼는다. 관계 설정을 통해 정체성과 생활 조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으로 분류된다. 각 인물은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과 연결되는 선택을 하며, 그 연결은 혈연·제도 기반 관계가 아니라 생활권과 감정 교류가 결합된 형태로 구성된다. 이러한 관계 구조는 특정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 구조 안에서 형성되는 생존 방식에 가까운 형태로 묘사된다. 작품은 정체성 차이를 갈등 요소로 활용하지 않고, 다양한 존재가 실제 생활 조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관찰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마크는 기록 활동을 지속하는 영상작가로 설정된다.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창작 노동자는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이주 압박을 받는다. 마크가 하는 기록 작업은 창작 활동이지만 생계 유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당 설정은 19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시에서 발견되는 청년층 현실과 연결된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창작자는 사회 제도 바깥에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마크의 서사는 예술가 정체성을 소유했으나 체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인물의 표본으로 분류된다. 이 설정은 특정 인물을 찬양하거나 희화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로저는 음악을 매개로 자기 표현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로저가 겪는 건강 문제는 개인 의지와 무관하게 생활 조건을 크게 제한한다. 해당 설정은 질병 유무가 노동·주거 기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반영한다. 로저와 미미의 관계에서도 의료 접근성 문제, 안정적 주거권 문제를 관객이 파악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미미는 공연 속에서 생계를 위해 선택한 노동 환경이 건강권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를 보여주는 인물로 해석된다. 특정 소재를 충격 요소로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활 조건의 일부로 기록하는 형태다.
콜린과 엔젤 관계는 렌트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다. 두 사람이 맺는 관계는 관습적 가족 구조에서 벗어난 동반자로 설정되며, 일상 생활에서 상호 돌봄 체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 관계 구성은 정체성 문제를 사건 중심으로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활 조건에 포함시킨다. 공연학 연구에서는 해당 구성을 ‘정체성 정치 기반의 서사 구조’와 구분하여 서술한다. 콜린과 엔젤의 서사에서 관객이 관찰할 수 있는 요소는 관계 주체들의 생존 협력 방식이다. 질병과 경제적 취약성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두 인물은 제도적 보호 없이 서로를 보완하는 연대 구조를 형성한다.
조앤과 모린의 관계 역시 공식 제도에서 보장되지 않는 파트너십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두 사람은 성향 차이와 업무 환경 차이로 갈등을 겪지만, 해당 갈등은 성적 지향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관계 충돌이 발생해도 정체성을 줄거리의 중심 갈등으로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 유지된다. 이는 정체성을 문제화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 구성의 한 방식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등장인물 관계 안에서 직업, 생활권, 선택에 따른 갈등과 해결 방식을 중심으로 제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 관계는 혈연 기반 가족 구조를 대체하는 ‘선택된 가족’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선별된 관계망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구성원의 삶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구조다. 임대료 상승, 노동 유연화, 의료 접근성 격차가 발생한 상황에서 법적 가족이 제공하지 못하는 지원을 공동체 안에서 대체하는 방식이 나타난다. 렌트는 이러한 관계망을 서사 중심에 두고, 사회 구조 변화가 생활 지원 체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기록한다. 해당 구성 방식은 특정 관계를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로 확인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보여주는 방향이다.
도시 공간은 인물 관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구성된다. 렌트의 무대가 위치한 이스트빌리지는 개발 압력으로 주민 이동이 빠르게 진행되던 지역이었다. 관계망이 불안정해지고 거주지 이동이 잦아지면 생활 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인물 관계가 안정되지 못하는 이유는 개별 성향이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이동성 증가의 결과로 읽힐 수 있다. 공연은 인물의 주관적 선택보다 도시 시스템이 개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사건을 배열한다.
작품 속 의료 접근성 문제는 인물 관계를 흔드는 요소로 기능한다. 에이즈 치료제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던 시기의 의료 현실은 인물의 건강 상태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위험 요소였다. 콜린과 엔젤의 관계는 보건 격차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돌봄 체계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사회적 안전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인물이 비공식적인 관계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례와 연결된다. 공연 속 갈등 요소는 특정 집단에 대한 감정적 호소보다 개인이 얽힌 의료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렌트의 서사 방식은 등장인물의 삶을 해결이나 성취 중심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선택의 결과가 항상 긍정적으로 귀결되지 않고 관계가 깨지거나 변화하는 상황도 서사 흐름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공연 관람이 문제 해결형 감정 소비로 고정되는 것을 방지한다. 인물의 결말을 이상화하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는 관계 속 상호 지원 방식을 현실 속에서 관찰할 수 있다. 연구 자료에서도 렌트는 해피엔딩 중심 뮤지컬 구조와 구별되는 작품으로 분류된다.
2025년 공연 무대에서 인물 관계 표현 방식은 한국 사회 현실과 비교하며 해석될 수 있다. 한국에서 법적 가족 외 구조가 증가하는 것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1인 가구 증가, 사회적 관계망 축소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예술 작품이 제시하는 관계 구성 방식은 연구 대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렌트 속 인물 관계는 가족 제도 바깥에서 형성되는 상호 돌봄 구성의 사례로 분류된다. 연출 방향에 따라 한국 관객이 체감하는 현실 공명 지점은 더 많아질 수 있다.
뮤지컬 렌트의 인물 관계 구조는 정체성 문제를 관객이 선택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특정 장면을 이해할 때 사회 변화 자료와 연관 지어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관계 서사 중심 구조는 공연이 단순한 극적 갈등 해소가 아니라 사회 구조 변화를 관찰 가능한 형태로 기록하는 예술 형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연 재공연 작업은 해당 관계 구조가 한국 도시 환경에서도 어떻게 읽힐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