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트렌드④] 건강권과 도시의 위험 구조

[KtN 김동희기자]뮤지컬 렌트는 에이즈가 미국 사회에서 확산하던 시기에 도시 공간과 보건 접근성 불평등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한다. 질병을 소재로 사용하면서도 공포를 조장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건강 상태가 삶의 기회, 관계 유지, 노동 선택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 가능한 사실 형태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렌트 속 인물 구성과 사건 전개는 특정 시대 보건 체계의 조건을 기록한 자료로도 검토될 수 있다.

1990년대 뉴욕에서 에이즈 확진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공중보건 체계는 감염 확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치료제 접근성은 지역과 경제력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했다. 의료보험 제도에서 지원받지 못하거나 비정규 노동을 이어가던 시민은 치료 정보를 얻기 어려웠고, 응급 상황에서 충분한 조치를 받기 힘든 환경에 놓였다. 이러한 조건은 이스트빌리지의 예술가 커뮤니티에서 더욱 크게 나타났다. 창작 노동자는 상당수가 안정적인 건강보험 제공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렌트는 이 조건을 단순한 배경으로 처리하지 않고 인물 삶의 주요 변수로 구성한다. 엔젤과 콜린 서사는 돌봄 부담과 의료 접근성 불평등이 관계 유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엔젤의 건강 상태는 급격하게 변하며 콜린의 생활 리듬과 경제 활동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해당 방식은 한 개인의 질병이 주변 관계망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도시 보건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연구 자료에서도 해당 서사 구조를 ‘비가시적 위험의 생활화’로 분류한다.

미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 환경이 건강 문제를 악화시키는 사례로 배치된다. 공연 속 설정에 따르면 미미의 일터는 야간 노동 비중이 높고 의료 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방치된 건물 환경과 불안정한 주거 조건도 건강권을 위협한다. 이 구성은 노동 형태와 거주 환경이 질병 위험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인물의 선택을 도덕성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보건 제도 접근의 차이를 주요 원인으로 제시한 방식이 특징이다.

로저 서사에서는 치료제 확보와 심리 상태 변화가 결합된다. 건강 상태가 창작 활동과 사회적 관계 유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있다.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과 관계 긴장은 심리적 단절을 초래한다. 로저의 상황은 보건 제도 접근성이 부족할 때 개인이 경험하는 고립 구조를 보여준다. 해당 구성 방식은 질병을 극적 전환점으로 활용하는 서사 관습과 다르며, 에이즈 확산 초기 예술가 커뮤니티에서 기록된 실제 상황과도 연결된다.

보건 의료 체계 공백은 주거 불안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뉴욕 도심 재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임대료가 상승했고, 저소득층과 비정규 노동자는 주거권을 보장받기 어려웠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확보하지 못하면 감염자 스스로 건강 상태를 관리할 수 있는 조건도 약화된다. 렌트 속 인물들이 이주 압박에 시달리는 설정은 도시 재개발이 건강 위험을 어떻게 확대하는지 관찰 가능한 형태로 제시한다. 도시는 지원망이 부족한 인물에게 더욱 높은 위험도를 부과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작품이 다루는 시기 뉴욕은 공중보건 정보 전달이 미흡했다. 감염 경로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가 확산됐고, 사회적 낙인은 치료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공연 속 인물은 질병에 대한 정보 부족과 편견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긴장을 경험한다. 이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생활 조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수용자와 기획자 사이에서 실제 정책 자료와 연결해 검토할 수 있는 요소가 다수 포함돼 있다.

렌트는 보건 관련 통계를 서사에 직접 삽입하지 않지만, 감염자 비중이 늘어가는 당시 사회 구조를 참고해 인물의 생활 변화를 구성한 흔적이 보인다. 당시 뉴욕시 자료에 따르면 치료제 공급 확대 이전 사망률은 일정 기간 급증했다. 공연 속 엔젤의 서사 전개는 해당 수치를 서사적 형태로 전환한 사례로 분류될 수 있다. 인물의 생애 주기를 임의로 변화시키지 않고 당시 도시 사회에서 실제로 관측된 흐름에 맞춘 방식이다.

2025년 한국에서 렌트가 재공연되는 상황은 공중보건 관점에서도 검토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건강권 문제는 세대와 계층을 넘는 주요 사회 의제로 부상했다. 특정 직업군이 의료 접근에서 소외되는 문제는 한국에서도 존재하며, 도심 주거권·노동 안정성 문제와 결합될 때 위험도가 높아진다. 렌트 속 서사 구조를 오늘 한국 사회의 자료와 비교해 분석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 있다. 공연 해석의 근거를 감정 요소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제 사회 환경과 연결해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엔젤 서사 구성은 돌봄 체계 형성과 소멸 과정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비공식적 연대가 의료 접근 부족을 보완하지만, 제도적 지원 없이 유지되는 연대는 결국 지속 가능성이 약화된다. 렌트 속 인물들은 사회 제도에서 보호받지 못한 상황을 감정 중심으로 소비하지 않고 기록형 서사로 제시한다. 이는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거나 상징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완성된다. 관객은 서사를 통해 당시 사회 구조와 인물 선택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보건 격차 문제를 다룬 공연은 여러 경우 강한 교훈적 표현이나 평가 문장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렌트는 해당 방식에서 거리 유지를 선택한다. 인물 행동 결과는 도덕적 판단 요소로 처리되지 않고 현실 자료와 유사한 형태로 배치된다. 이러한 구조는 관람자가 사건을 자기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여지를 확보하게 한다. 연구자들은 이를 예술적 기록 형식으로 분류한다.

2025년 공연 작업에서 건강권 서사 해석은 한국 사회 현실 자료를 기반으로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의료 접근성 개선 정책, 지역 간 의료 인프라 격차, 비정규 노동자 보건권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비교 분석 대상으로 제기되고 있다. 렌트 재공연은 보건·노동·주거 정책 논의의 현실적 보조 자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공연은 과거를 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 환경 분석에 활용 가능한 사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