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펀드⑤] 미국 패션의 다음 10년, 파이널리스트 10인이 설계하는 산업의 미래
성장 전략, 경쟁 구조, 지속 가능 비즈니스의 실제
[KtN 박채빈기자]2025년 CFDA·보그 패션 펀드(CVFF) 파이널리스트 10인은 우승 여부와 별개로 미국 패션 산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보여주는 지표다. 패션계는 종종 개별 브랜드의 성과에 집중하지만, 신진 디자이너 생태계가 구축되는 방식이야말로 산업의 내구성을 결정한다. 이번 파이널리스트 명단은 창의성, 다양성, 지속 가능성, 시장성과 같은 주요 판단 기준이 어떻게 재정립되고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10개 브랜드의 전략과 비전은 미국 패션의 다음 10년을 현실적으로 예측하게 한다.
2025년 파이널리스트는 ASHLYN, AUBERO, BACH MAI, BERNARD JAMES, DON’T LET DISCO, GABE GORDON, HEIRLOME, JAMIE OKUMA, MERUERT TOLEGEN, PETER DO로 구성됐다. 이 구성은 특정한 스타일이나 지역, 문화에 편중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정체성과 제작 방식, 소비자 접근 전략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다층적 생태계는 미국 패션이 한 가지 유형의 브랜드로 시장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한다.
파이널리스트 중 ASHLYN은 조용한 럭셔리와 제로 웨이스트 패턴 메이킹이라는 지향을 기반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 AUBERO는 업사이클링을 감각적 자산으로 전환했으며, HEIRLOME은 멕시코 장인 기술을 프리미엄 시장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이미 확인된 서사형 브랜드들이 시장 전환기의 확실한 후보군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사례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전략이 눈길을 끈다. BACH MAI는 구조적 실험과 소재의 극적 활용을 통해 현대적 쿠튀르라는 시장 영역을 강화하고 있다. 고급 여성복 특유의 대담한 실루엣과 정교함은 미국 패션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미학적 전략으로 평가된다.
BERNARD JAMES는 주얼리 브랜드 중 드물게 남성 고객층을 중심에 놓고, 뉴욕 기반의 하이엔드 소재 활용과 공예적 제작 방식으로 차별성을 구축했다. 액세서리 시장에서 장기적 성장 기반으로 평가되는 부문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DON’T LET DISCO는 컬러 활용과 볼륨, 키네틱 감각을 통해 패션을 즐거움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팬덤 기반 브랜드 성장 모델과 공연·파티 문화와의 접점을 통해 소비자 접점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GABE GORDON은 실용성과 조형적 완성도를 결합한 디자인으로 일상 의류 시장에서 장기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중간 가격대와 고품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브랜드 전략은 확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기대하게 한다.
JAMIE OKUMA는 미국 원주민 문화 기반의 예술과 고급 패션을 연결한다. 원주민 커뮤니티 내 협업 체계를 중심에 두고, 정체성 보존을 경제적 자립과 연결하는 구조는 문화 산업의 모델로도 활용 가능하다.
MERUERT TOLEGEN은 중앙아시아 문화 소재를 활용해 고급 소재와 조형적 테크닉을 결합한 브랜드다.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소개된 문화권 기반의 미학을 고급 패션 중심에 배치하는 전략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PETER DO는 이미 뉴욕패션위크 중심 브랜드로 성장한 이후, 글로벌 유통망 확대와 새로운 고객층 확장을 목표로 하며 안정적 사업 확장 단계에 진입했다. 시장성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실험적 실루엣과 실용적 테일러링의 조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10개 브랜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각 브랜드는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다. 브랜드 철학 수준에 머물지 않고, 공급망, 제작 방식, 가격 책정, 홍보 전략까지 서사의 논리가 관철된다. 신진 브랜드의 경쟁력은 미학이 아니라 세계관이라는 가치가 다시 강조되고 있다. 이 세계관이 얼마나 견고하게 구성됐는지가 성장 가능성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2025년 파이널리스트 구성은 미국 패션이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을 실행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대량 생산과 로고 중심 소비가 시장의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책임 있는 제작 방식과 정체성 기반 고급화 전략이 경쟁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규모가 작은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현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명확한 가치 제안과 서사가 소비자 선택의 핵심이 되는 시대, 미국 패션은 가장 빠르게 이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CVFF는 산업 구조 개선을 위한 중요한 실험장이다. 파이널리스트들은 단순히 수상 경쟁자가 아니라, 산업이 지향해야 할 기준을 함께 만드는 공동 설계자다. 브랜드 간의 차이가 클수록 생태계는 건강해지며, 다양한 접근 방식이 공존할수록 시장의 미래는 넓어진다. 2025년 파이널리스트 팀은 미국 패션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한 근거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패션은 다시 세계 무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분명한 목소리를 가진 신진 브랜드들이 시장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이번 파이널리스트 명단은 그 흐름의 출발점이다. CFDA와 보그가 구축한 지원 시스템은 앞으로도 새로운 경쟁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산업의 혁신 속도를 유지할 전망이다. 앞으로의 10년,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신진 디자이너 생태계에 의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