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트렌드⑦] 수표를 쥔 손은 어디로 향하는가

초부유층 자본 이동이 선택하는 다음 무대 안전자산을 찾아 떠나는 자본, 마이애미 이후를 가늠하다

2025-11-23     김상기 기자
Pagani Residences Unveils Its $30 Million USD Duplex Penthouses. 사진=Pagani Residenc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상기기자]초고가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가르는 것은 결국 누가 구매자인가에 대한 명확한 이해다. 초고액 자산가(UHNWI)는 세계적으로 약 4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되며, 자산 규모뿐만 아니라 투자 성향, 거주 이동 패턴, 정치·사회 리스크 회피 전략이 뚜렷하다. 최근 파가니 레지던스 같은 브랜드 주거 상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도시나 단일 국가에 고정되지 않는다. 자본 이동의 방향을 정하는 핵심 변수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그 변화가 초고가 주택 시장을 결정한다.

우선 자본의 안전성 선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 통화 가치 변동, 자국 규제 강화는 자본 해외 이전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홍콩 국적 자산가 다수가 싱가포르와 런던으로 향했던 것처럼, 북미·남미 부유층은 세금과 규제가 느슨한 지역으로의 이동을 선호한다. 마이애미는 이를 가장 먼저 포착한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자본은 영원히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특정 지역의 리스크 요인이 부각되면 곧바로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 투자자들은 다음 목적지를 탐색 중이다.

최근 주목받는 지역 중 하나는 중동 도시다. 두바이, 아부다비는 국부펀드를 통한 적극적 도시 개발과 완결성 높은 고급 인프라를 기반으로 초고가 주거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세금 부담이 낮고 자산보호 규제가 안정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자본에게 매력적인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에너지 산업 중심 경제에서 디지털 자산, 금융 서비스, 문화 투자로 영역을 확장하며 부유층의 소비 수요를 효과적으로 끌어들인다. 마이애미가 갖는 해양 레저 중심 이미지와는 구분되는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유럽에서는 파리와 밀라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럭셔리 패션 산업의 인프라가 도시 경쟁력으로 전환되면서, 브랜드가 부동산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이곳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패션 하우스가 주도하는 레지던스 사업은 문화적 영향력이 강한 도시에서 더욱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파가니 레지던스와 유사한 전략이 자동차를 넘어 패션 브랜드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금융 규제 완화 속도가 도시 간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선두 주자로 자리 잡고 있으나, 일본과 한국도 고급 자산 관리 인프라 개선을 통해 초고가 시장 유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규제 완화가 일정 부분 추진되고 있지만, 정책의 일관성과 세제 명확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자본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시장 안정성 확보 없이 고가 자산 유입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초부유층의 소비 성향 변화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새로운 부자층은 브랜드 가치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문화적 상징성에 민감하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가 자산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해안 도시의 기후위험이 커지는 상황은 브랜드 레지던스가 위치한 마이애미와 같은 지역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해수면 상승, 폭풍 피해, 보험료 급등 등으로 장기 보유 비용이 점차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기후 리스크가 부동산 자산가치의 감가 요인으로 작동하는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UHNWI들은 단순한 소유보다 삶의 경험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트로피 자산을 넘어서서 지역 고유 문화와 연결된 라이프스타일 제공 여부가 선택 기준이 된다. 파가니 레지던스가 강조하는 브랜드 경험은 고급 시장의 한 흐름을 대변하지만, 그 경험이 지역적 문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매력은 지속되기 어렵다. 문화적 기반이 약한 도시에서 브랜드 중심 고급 주거가 한 번에 성장할 경우, 시장이 빠르게 피로감을 느낄 위험이 있다.

자본 이동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규제 환경의 차별성이다. 세금우대 정책, 이민 규제 완화, 금융투자자 비자 확대 등은 부유층 유입을 유도하는 핵심 장치다. 마이애미가 선점했던 이점은 다른 도시에서도 빠르게 복제되고 있다. 경쟁 도시가 늘어날수록 마이애미의 브랜드 레지던스 시장은 프리미엄 유지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 독점적 매력 유지가 실패하면 가격 방어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기술과 자산의 연결도 변화 요인으로 부상한다. 디지털 자산과 실물 자산의 결합,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소유권 분할 등이 본격화되면, 초고가 자산의 접근성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분할 소유가 가능해지면 트로피 자산은 ‘공유형 상징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는 기존 UHNWI 중심의 독점 구조를 흔들 수 있다.

끝으로 주목해야 할 현상은 초고가 자산의 ‘정치화’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특정 도시의 자산 집중이 정치적 논란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급 자산 개발이 시민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공공 의제가 된다. 조세 혜택과 공공 기여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정책 변동 리스크가 커지며 자본 이동 속도는 더 빨라진다.

결국 UHNWI 투자 흐름은 단일 요인이 아닌, 정치·경제·문화·환경이 얽힌 다변수 문제다. 파가니 레지던스 같은 브랜드 주택이 속한 시장은 이러한 변수에 가장 민감한 자산 영역이다. 자본은 이익과 안정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시장은 그 흐름을 쫓아 재편된다. 마이애미가 다음 무대에서도 중심을 유지할지, 혹은 새로운 도시가 무대를 이어받을지 판단하려면, 자본 이동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수표를 쥔 손은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도시와 자산은 그 손을 붙잡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브랜드가 아니라 도시의 기초 체력, 그리고 사회적 지속가능성이 그 이유다. 초고가 레지던스 시장의 미래는 자본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도시를 위한 무대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