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트렌드②] 관계는 줄이고 방어력은 높였다
친구의 기준을 재설계하는 20대의 새로운 인간관계법
[KtN 정석헌기자]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20대의 관계 맺기 방식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넓히는 것이 가치로 여겨지던 분위기 속에서 현재의 20대는 관계를 압축하고 있다. 잦은 만남을 유지하지 않는 관계라면 친구 범주에서 제외하는 흐름도 확인된다. 불필요한 갈등과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의 문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합리적 대응으로 읽힌다.
한동안 대두한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과 소진감은 더 이상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상황이 불안정할수록 감정 자원을 관리하는 전략적 태도가 강화된다. 취업과 진로 문제로 마음의 여유가 줄어든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더욱 민감하게 계산한다. 감정 노동이 큰 관계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생존 방식이 된 셈이다.
과거에는 친구 수가 사회적 성공의 은유처럼 기능했다. SNS 팔로워 숫자와 좋아요 개수는 관계의 넓이를 증명하는 지표였다. 그러나 현재의 20대는 이러한 양적 지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인맥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이들은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안정감을 주는 관계를 선호한다. 건조한 표현을 빌리자면 실질적인 도움과 지지를 주고받지 않는 연결은 자주 정리된다. 관계의 효율성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오프라인 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정기적 대면이 사라진 관계는 점점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현실 세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나누지 않는 연결은 사적 범주에서 벗어난다. 실제로 조사에서도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지 않으면 친구로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이 꾸준히 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소통에 대한 익숙함이 관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화면 속 문장과 말풍선만으로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고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이 여전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생활과 사회 진입 초기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관계가 자연스럽게 확장되지만 진로 경쟁이 심화될수록 관계의 수는 좁아지기 쉽다. 미래 불안이 커지면 자기 관리에 몰입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경쟁 강도가 높은 집단일수록 이러한 변화가 더 빠르게 발생한다. 특히 20대 남성 집단은 새로운 친구 만들기를 주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가 공통적으로 제시된다. 변화한 사회 환경은 관계에 대한 가치 판단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흐름은 일상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친한 친구라는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되고 가벼운 친목은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넓어진다. 관계의 강도와 거리감을 정확히 측정하며 무리한 기대를 내려놓는다. 어릴 적처럼 자연스럽고 무해하게 친구를 사귀는 일은 더 이상 쉽지 않다. 성인이 된 이후의 관계는 각자 다른 인생 속도로 인해 조정이 필요하고 이 조정 과정에서 탈락하는 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고 현실적인 지지까지 가능한 관계가 이상적인 친구상으로 등장한다.
사회 초년층이 바라는 관계의 조건을 살펴보면 공통된 경향이 있다. 기댈 수 있는 사람과의 안정적인 연결이 중요해지고 있다. 무조건적인 공감보다는 시의적절한 조언과 현실적 지원이 선호된다. 취업 준비, 자격증 시험, 재정 관리 등 생존과 밀접한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곧 마음의 안전망으로 기능한다. 취약한 경제 기반 위에서 사회에 진입하는 현실에서 관계는 감정 교류를 넘어 서포트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압축 전략이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관계 축소 과정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는 개인도 있다. 대학 졸업 이후 타지에서 혼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고립을 경험하기 쉽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은 사회적 연결 부족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출퇴근과 경쟁, 생계와 미래 걱정 속에서 관계 확장은 부담스러운 과제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개인화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소통이 활발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채팅과 댓글은 깊은 신뢰를 형성하기 어렵다. 가벼운 정보 교환과 일시적인 공감은 가능하지만 장기적 관계 형성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사회적 고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는 이유도 이러한 구조적 어려움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에게 필요한 정서적 지지는 일정 정도 대면이 필요하다.
한편 소수의 관계가 단단해지면서 갈등 위험은 커질 수 있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기대치는 높아지고 배신이나 다툼에 대한 충격도 커진다. 친구 한 명과의 관계 변화가 삶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관계의 비중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관계 관리의 효율성을 추구하다가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불안정한 사회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역설적으로 높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대안으로 정보 기반 커뮤니티가 새로운 연결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취업 준비 스터디, 자격증 학습 모임, 금융 관리 커뮤니티 등 목적형 집단이 늘고 있다. 공통된 목표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감정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관계 형성 과정도 명확하다. 목적 달성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해산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이러한 커뮤니티는 목적과 감정 소모의 균형을 찾으려는 Z세대의 관계적 실험에 가깝다.
현재의 20대는 관계를 줄였다고 해서 사회적 감각이 퇴화한 세대가 아니다. 더욱 전략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선택하고 설계하고 있다. 감정 소모가 큰 관계는 최소화하고 필요한 도움과 지지를 주고받는 관계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연결의 수보다 질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감정 에너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과거에는 넓은 관계망이 든든한 안전망이라고 여겨졌지만 오늘의 20대에게 안전망은 소수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온다. 미래가 불안할 때는 각자도생이 정답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고립은 해답이 아니다.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관계가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 관계의 재편은 바로 그 최소 단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