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트렌드④] 돈 이야기를 꺼내는 세대

생존을 위해 경제를 가장 가까운 화제로 올렸다

2025-11-21     정석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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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정석헌기자]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20대는 더 이상 돈 얘기를 피하지 않는다. 주변의 기대처럼 ‘청춘’이라는 단어가 낭만과 모험을 의미하던 시기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취업난과 주거난, 부채 부담, 고금리 상황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경제는 20대의 일상 가장 중심에 놓인 화제가 되었다. 친구와 만나면 일을 비롯해 소득과 투자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간다. 예의나 체면보다 현실이 우선된다. 돈을 이야기하는 것이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층이 가장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는 ‘불안하다’이다. 이 불안은 종종 숫자로 환산된다. 월세와 식비를 계산하고 고정 지출을 항목별로 정리하며 남는 돈을 확인한다. 남는 금액이 많지 않을수록 불안은 더 선명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경제 관리는 생존 관리와 같다. 소득 흐름과 지출 구조를 면밀하게 추적하는 습관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대화의 주제가 변한 배경에는 명확한 현실이 있다. 기성세대가 20대에 경험했던 사회 진입 환경과 비교하면 현재의 20대는 훨씬 높은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 노력만으로 극복 가능한 장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동시장, 자산 가격의 격차, 적은 기회와 많은 경쟁자 속에서 생존하려면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판단을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는 대화를 통해 얻는다. 돈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정보 교환 과정이 된다.

투자와 재테크는 더 이상 일정 소득을 갖춘 직장인의 영역이 아니다.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빠르고 시장 변동성이 큰 시대이기 때문에 시점은 중요하다. 사회에 늦게 진입할수록 기회를 잃는 구조가 강화된다. 그래서 20대는 소득이 적어도 돈을 굴리는 방식을 조기에 학습하려 한다. 소액 투자, 분산 투자, 적립식 투자 같은 방법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특히 20대 남성 집단에서는 주식과 가상자산 관련 정보가 대화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경제에 대한 관심의 진폭은 과거보다 커졌다.

그러나 투자 자체를 맹목적 과제로 여기지는 않는다. 투자를 통한 이익 확대 못지않게 손실 회피가 중요한 목표로 자리한다. 신중한 접근이 기본이며, 감정적 매매를 피하는 태도가 확산된다. 어쩌면 경제 위기 시대를 살아온 경험이 만들어낸 실용적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빠르게 벌기보다 크게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학습이 세대 전반에 공유되어 있다.

돈 이야기가 일상화되면서 직장 선택과 경력 설계에서도 경제적 고려가 강화된다. 급여와 복지 수준을 따지는 것은 기본이고, 이직 가능성, 연봉 상승 속도, 직무 확장성 같은 금융적 관점이 추가된다. 자신의 경력을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 직장에 머물며 오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목표 연봉과 커리어 가치 상승을 중심으로 이동한다. 사회는 더 이상 한 회사에서의 장기 근속을 안정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역량을 키우고 기회를 확대하는 방식은 곧 자산 증식 전략이다.

경제적 대화의 중심에는 협상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학습도 존재한다. 첫 연봉 협상, 외주 계약, 임대차 계약, 금융 상품 가입 등 삶 전반에서 계약이 가진 의미를 체감한다. 계약은 곧 이해관계의 협상이다. 각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파악하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경제적 문해력은 생존 문해력과 동일한 가치로 기능한다. 돈을 지키기 위해 돈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경제적 소통이 관계의 형성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가 같은 경제적 감각을 공유하는지, 소비 성향과 재정 관리 철학이 비슷한지를 확인하며 가까운 관계를 만든다. 돈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관계의 지속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과도한 소비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서로의 미래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친구로 남는다. 경제 감각의 상호 조율이 하나의 관계 기준으로 작동한다.

사회 초년층의 개인 재정관리 방식은 세부 영역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계부 앱을 사용해 소비 내역을 일일 기록하고, 금융 플랫폼을 통해 신용 점수를 확인하며 관리한다. 작은 지출도 누적되면 큰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액 절약의 중요성을 체감한다. 현명한 소비자를 넘어 재무 설계 능력을 갖춘 시민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만 경제적 긴장이 너무 강해질 경우 정신적 압박과 피로감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돈 이야기를 많이 하는 만큼 경제적 비교가 더 쉽게 일어나고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 또래 집단의 성공이나 자산 형성 속도에 대한 비교는 때로는 큰 스트레스를 낳는 요소가 된다. 경제적 기준이 관계의 우열을 가르는 잣대로 작동하는 상황은 부담을 늘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적절한 감정 관리와 자신만의 목표 설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사회에서 돈 이야기를 둘러싼 편견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경제적 대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약해지고 있다. 자신의 재정 상태를 살피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으로서 필요한 태도다. 돈은 더 이상 은밀하게 숨겨야 할 사적 영역만은 아니며,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안전망이다. 적절한 정보 교환과 상호 도움은 개인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현재의 20대는 경제를 삶 깊숙이 들여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생존, 독립, 자립을 모두 돈이라는 언어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사람은 더 나은 이동 경로를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돈 대화는 소란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솔직한 대화다.

Z세대는 돈 이야기를 잘하는 세대다.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경제적 감각은 생존을 연장하고 기회를 넓히는 도구가 된다. 위기 속에서 경제적 판단 능력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자 방패다. 돈을 아는 청년은 불확실성을 견뎌낸다. 그리고 그 견딤 위에서 더 멀리 갈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돈을 움직이고, 내일을 위해 돈을 공부하는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를 버티고 미래를 준비하는 Z세대의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