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트렌드①] 세계 4위 증권시장의 심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KtN 김상기기자]인도 국가증권거래소 National Stock Exchange of India. 이제는 세계 4위 자본시장의 중심으로 평가받는 이 금융 인프라가 글로벌 투자 흐름을 바꾸고 있다. 상장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5조 2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인도 국민 부의 약 3분의 1이 이 시장을 통해 움직인다. 하루 6시간 반, 그 짧은 거래 시간 동안 최대 200억 건에 이르는 주문이 쏟아지고 체결되는 거래는 약 3억 건에 달한다. 1초에 백만 건에 가까운 거래 메시지가 오간다는 뜻이다. 1억 2천만 명의 투자자가 움직이는 거대한 민간 금융 생태계의 심장이 바로 이 시장이다.

이 거대한 성장의 바탕에는 기술을 중심에 둔 철저한 신뢰 구축 전략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창립 초기부터 거래 안정성과 공정성은 시장 발전을 이끌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설정됐다. 자본시장은 단 한 번의 중단도 용납되지 않는다. 가격 변동은 허용돼도 거래 정지는 곧 신뢰 붕괴를 의미한다. 이 명확한 기준이 성장의 출발점이었다.

1994년 설립 당시 인도 주식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1천억 달러. 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도약했다. 세계 금융기관들이 분석한 결과, 인도 내 급격한 디지털화와 젊은 인구의 자본시장 참여 확대가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화려한 지표 뒤에는 그만큼의 거래를 끊김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기술 아키텍처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따른다.

국가증권거래소는 수년간 단 한 번의 중대한 시스템 장애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적만큼 기술의 안정성 자체가 시장의 경쟁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기술 투자의 기준이 됐다.

2022년, 보다 확고한 미래 대비를 목표로 대규모 시스템 혁신이 시작됐다. 명칭은 레질리언스 프로그램. 거래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더 높은 수준의 회복력과 무정지 운영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아니었다. 조직 운영 방식, 외부 파트너 관리, 위험 대응 체계, 지식관리 등 전 부문에 걸친 개혁이었다. 진단 결과 총 82개 개선과제가 도출됐고 현재 대부분이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기술 인프라의 변화는 특히 눈에 띈다. 초고속 알고리즘 거래사가 집결하는 전용 데이터센터는 지금 약 1400개의 랙이 가동되고 있다. 수요에 따라 조만간 2000개, 더 나아가 4000개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준비되고 있다. 아시아 최대급 규모의 프라이빗 클라우드가 운영되며 시스템 용량을 유연하게 늘릴 수 있다.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복제되는 재해복구 환경에서는 거래 시스템을 45분 내에 전면 전환할 수 있다. 자연재해나 우발 사태가 발생해도 자본시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초대형 금융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이버보안이 핵심 축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최근 20분 동안 120여 개국에서 4억 건 이상의 공격 시도가 몰린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한 대응 체계는 개발 단계에서 보안을 내장하는 방식으로 전환됐으며, 연중무휴 관제와 지속적인 모의 훈련으로 방어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공격의 양이 늘어날수록 대응 속도는 더 빨라지는 구조가 정착하고 있다.

사람과 조직을 향한 투자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엔지니어링 중심 문화로 재편하고, 지식 공유와 업무 문서화를 체계화해 특정 인물에게 집중되는 기술 의존성을 줄였다. 기술 의사결정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한편, 내부 인력의 역량을 높이는 훈련 프로그램도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 속도는 빨라졌고 운영 효율성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회복력 강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도 도입됐다. 이름은 레질리언스 인덱스. 기술, 운영, 사람, 프로세스에 걸친 안정성을 세밀하게 수치화해 개선 방향을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이 주류였다면, 이제는 문제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전략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실질적 성과를 통해 국제 평가기관으로부터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글로벌 벤치마킹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 자본시장의 무게가 더 커질수록 기술 기반의 신뢰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민의 부가 빠져나가지 않고 시장에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글로벌 자본이 안심하고 유입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안정적인 금융 인프라를 통해 가능해진다.

거래량이 커질수록 위험도 커지는 법이다. 하지만 위험을 다루는 능력이 더 빠르게 성장한다면 그 시장은 한 단계 높은 영역으로 올라선다. 인도 국가증권거래소가 보여준 성장 경로는 바로 그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세계가 인도를 주목하는 이유다.

투자 트렌드는 분명해진다. 신뢰는 기술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그 기술은 이미 인도의 자본시장 한가운데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