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INSIGHT④] 지도에서 지워진 고을들, 일제 통폐합과 김포의 ‘최전성기’

1914년 행정구역 대수술, 김포가 원래 다섯 배였다는 사실

2025-11-22     임우경 기자
김포역사문화연구소, 김포를 아시나요.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김포는 과거 김포현·통진현·수안현·동성현 네 개 고을이 함께 존재하던 지역이다. 이러한 고을 구조는 오랫동안 유지되며 지역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근대적 행정 체계가 도입되면서 김포의 행정구역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지도 위에 존재하던 고을들이 사라지거나 통합되고 이름만 남은 경우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은 김포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은 조선의 전통적 군현 체제를 해체하는 첫 단계였다. 왕정 중심의 지방 행정에서 벗어나 군 단위 행정 일원화를 거쳐 근대적 행정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기존 고을 단위 생활권이 정부 중심 체계에 통합되는 과정이었다. 당시 김포 지역이 지닌 고유한 행정 질서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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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통폐합은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이루어졌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대규모 행정구역 조정은 전국의 공간 구조를 바꾸었다. 기존 330여 개 고을 가운데 대부분이 다른 행정구역과 합쳐지거나 폐지되었다. 지역의 역사와 생활권이 고려 대상에서 배제되었고 행정 효율성을 중심으로 경계가 재편되었다. 김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결과 김포군 영역은 급격히 넓어졌다. 통진과 수안, 동성 지역을 포함하는 기존 김포 영역에 더해 양천군 일부까지 편입되었다. 당시 지도를 보면 김포군은 현재 면적의 약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품었다. 행정 경계는 국가 의도에 따라 크게 확장되었으며, 김포는 자신이 만들어온 역사적 경계를 넘어서는 최대의 영토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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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김포 영토 확장은 생활권과 무관한 통합이었기 때문에 지역 주민의 공간 인식과 행정 경계 간 괴리가 발생했다. 양천 일부가 김포로 편입되어 김포공항 부지까지 김포 행정권에 포함되었다. 김포공항이 김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이 바로 이 행정구역 편입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후 행정 경계 변경으로 공항은 서울 강서구에 포함되었고, 이름만 남았다.

조민재 김포역사문화연구소장은 “김포공항이 실제로는 김포가 아니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는 점을 중요한 사례로 지적한다. 지명이 행정구역과 분리될 경우 시민의 인식과 공간 기억이 혼란을 겪게 된다는 설명이다. 지도 위에서 김포가 가장 넓었던 시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김포가 가진 잠재적 공간성과 역사적 확장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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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이 지도에서 사라진 과정에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한 고부군과 무장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는 동학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해당 행정구역을 폐지하거나 다른 지역에 통합했다. 김포 지역도 일제의 식민 통치 전략 속에서 기존 고을 경계가 대폭 조정되었다. 지역 정체성은 행정 편의 앞에서 밀려났다.

김포의 ‘최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이 시기는 인구·경제 규모가 아니라 공간 확장을 기준으로 한다. 강제적이긴 하지만 김포 행정 경계는 가장 크게 확장되었고, 하천과 해안, 평야가 포함된 광대한 지역이 김포군으로서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였다. 그러나 이 모습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해방 이후 행정구역은 다시 조정되었고, 김포는 과거보다 축소된 영역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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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개편은 단지 공간 변화가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였다. 주민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 지역 정체성의 근거가 바뀌었다. 기존 고을 이름이 지도에서 지워지고 행정 문서에서 사라진 뒤에도 주민들은 그 이름을 기억했다. 오늘 김포 곳곳에 남아 있는 마을 이름과 생활권은 지워진 고을의 흔적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어난 행정 변화는 김포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고을이 사라지고 행정 경계가 뒤섞이면서 과거 고을 기반 생활 질서가 흐려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민의 이동 경로, 학교 구역, 상권의 분포 등은 여전히 과거 고을의 중심과 연결되어 있다. 지도에서 지워진 기억이 생활 속에서 되살아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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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영토 확장과 축소를 반복한 역사 속에서 인식의 분열도 발생했다. 김포 지역 주민은 행정 문서 속 김포와 생활 속 김포를 혼동하기도 했다. 행정 변화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명은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다. 과거 고을의 이름은 비록 행정체계에서 사라졌지만 정체성의 핵심 언어로 남아 김포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김포의 공간 경계는 정치적 힘에 의해 변할 수 있지만, 정체성은 주민의 기억에 의해 유지된다. 김포공항이라는 이름이 김포라는 정체성을 일정 부분 지키는 데 기여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름은 지역과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는 끈이다. 김포라는 이름은 영토 축소에도 불구하고 김포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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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은 김포를 역사적으로 가장 크게 확장시켰지만 동시에 지역 정체성의 균열을 남겼다. 과거 고을의 흔적은 생활 속에서 남아 현재 김포의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지도로 작동하고 있다. 지도 위 경계가 움직여도 시민의 삶이 만들어낸 경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김포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면 행정 변화는 도시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이 되어왔다. 독립적 고을 체계에서 출발해 강제적 확대를 거쳐 다시 축소되는 과정 속에서 김포는 독자적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지워진 이름과 변한 경계 속에서도 김포의 뿌리는 남아 있다. 이 뿌리를 이해할 때 김포의 공간 정체성은 더욱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