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트렌드①] 뉴욕과 서울이 묻는다
권대하 도시 회화가 보여주는 2025 세계 미술의 감각 변화
[KtN 박준식기자]2025년 미술 시장은 다시 회화가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NFT와 디지털 아트가 시장의 화두를 장악했지만, 2025 The Contemporary Art Market Report의 최신 분석은 상황이 바뀌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회화 전시는 전년 대비 증가했고, 도시 공간을 재해석한 회화 작품이 특히 부상했다. 디지털 화면에 지친 감각이 물성을 가진 이미지로 회귀하는 현상이다. 이 흐름 속에서 권대하의 도시 회화는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도시의 구조를 빛으로 포착해온 권대하의 작업은 2025년 미술이 요구하는 감각적 변화와 정면으로 호응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시 회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이미지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보고서는 세계 도시 경험이 팬데믹 이후 재정의되면서, 예술이 도시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동의 자유를 상실한 시기가 지나고, 거대한 도시가 새롭게 체험되기 시작했다. 인간이 도시를 이해하는 방식은 거리의 빛과 어둠, 건물의 그림자, 비에 젖은 도로의 반사광을 통해 감정적으로 작동한다. 권대하가 포착해온 도시의 빛은 바로 이 새로운 감각의 언어로 작동한다.
권대하의 신작 New York Story(2025)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수직적 구조를 빛과 색의 리듬으로 재구성한다. 고층 빌딩이 만들어내는 격자와 전광판의 불빛은 무수한 사물과 인구, 그리고 움직임을 하나의 화면에 묶는다. 권대하 회화는 구상을 기반으로 하지만, 화면에 가득한 빛의 파편은 추상적 감각을 유도한다. 이 결합은 도시를 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트렌드에서 강조되는 ‘감각의 복합성’, 즉 이미지가 단순한 풍경이 아닌 감정의 도시로 읽힌다는 분석과 맞닿는다.
뉴욕을 주제로 하는 또 다른 대표작 New York-Blue City(2024)는 세계 도시의 이면을 차분한 청색 계열로 번역한다. 강렬한 색채 과잉을 덜어낸 대신, 도시의 무게감과 공기의 밀도가 도드라진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느린 감각의 회복’이 회화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빠른 도시, 느린 회화. 그 충돌을 권대하가 감당하는 방식은 도시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감정을 우선한다는 데 있다.
감정의 회귀는 글로벌 미술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보고서는 감정의 회복이 팬데믹 이후 예술 생산의 주요 방향이라고 분석했다. 권대하가 오래도록 집중해온 비 내리는 도시 풍경은 이 흐름을 증명한다. A Rainy Day in New York 2-2(2020)에 나타나는 반사되는 도로의 빛과 흔들리는 자동차 불빛은 도시를 감정의 무대로 바꾼다. 빗물에 젖은 도로는 인간의 흔적이 스며든 곳이며, 화면이 진동하는 듯한 빛의 점들은 도시가 품은 불안과 기대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차갑고 거대한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정을 생성하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2025년 보고서는 도시에 대한 서사가 미술 시장의 주요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도시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예술의 주체로 다시 자리 잡는 상황이다. 권대하의 회화는 도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시를 통해 인간의 삶, 나아가 시대의 감각을 재배치한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만들어진 작품들은 한국적 정서와 세계 도시의 빛을 한 화면에 공존시킨다. 국내 화단에서 도시의 밤 풍경을 개척해온 권대하는 이제 세계 미술 시장이 다시 요구하는 도시 감각을 이미 오랫동안 축적해온 셈이다.
이 점에서 권대하 도시 회화는 한국 회화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동아시아 작가들이 가진 도시 경험의 특수성이 2025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압축 성장과 집약적 도시화의 경험은 빛이 난폭하게 번지는 야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감정의 노출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권대하가 그려온 서울의 비 내리는 거리 풍경은 그러한 한국적 도시 경험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도시는 인간의 경험을 가장 빠르게 바꾸는 공간이다. 예술은 그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기록한다. 권대하의 도시 회화는 기록이면서 사유이고, 풍경이면서 감정이다. 2025년 세계 미술이 요구하는 회화의 언어가 감각과 감정의 교차라면, 권대하의 작업은 이미 그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해온 셈이다. 도시가 스스로 말을 시작하고, 회화가 그 말에 응답하는 지점. 한국 출신 작가가 만든 도시의 빛이 세계의 감각과 다시 만나는 순간이 열리고 있다.
서울과 뉴욕, 두 도시를 한 눈으로 꿰뚫어본 권대하의 작품들은 이제 다시 예천으로 돌아와 새로운 여정을 준비한다. 도시에서 출발한 회화가 로컬의 뿌리를 확인하고, 다시 세계를 향해 이동하는 흐름이다. 2025년 미술의 핵심이 회화의 실체와 도시 감각의 진화를 요구한다면, 권대하의 도시는 바로 그 흐름의 지금, 한 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