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트렌드③] 도시는 결국 사람의 흔적이다

권대하 회화가 말하는 2025 인간 중심 도시미술의 귀환

2025-11-21     박준식 기자
 [KtN 증권부]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2025년 미술 시장의 핵심 변화는 이미지보다 감정이 앞선다는 점이다. 데이터와 기술이 과잉 생산한 이미지를 소비해온 지난 10년 동안, 감정은 종종 부차적 존재로 밀려났다. 그러나 2025 The Contemporary Art Market Report는 전 세계 관람객이 다시 감정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미술을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감정의 회귀가 예술 소비의 중요한 동력이 된 것이다. 도시 회화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진다. 도시를 거대한 구조물이나 익명의 셔터 이미지로 보는 대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남기는 흔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권대하가 오랜 시간 탐색해온 도시 풍경은 이러한 전환을 증명하는 사례다. 19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권대하 회화의 중심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거나, 화면 한 귀퉁이에 작은 크기로 존재한다. 하지만 도시의 구조, 빛의 움직임, 비가 지나간 도로의 흔적은 결국 사람의 자취를 드러내는 장치다. 도시를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퇴적된 장소’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A Rainy Day 2_200.0×100.0cm_Oil on Canvas_2006. 권대하 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작품 A Rainy Day 2(200.0 × 100.0cm, 2006)는 이러한 관점을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표현한다. 빗방울을 머금은 아스팔트 위로 차량 불빛이 번지며, 헤드라이트가 남기는 잔상은 도시인들의 숨결에 가까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형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화면 전체가 사람을 말하고 있다. 빛의 흔들림은 걷는 속도, 비의 양, 거리의 습도, 그리고 그날의 감정을 함께 끌고 온다. 2025년 보고서가 강조한 “작품이 삶의 정서적 아카이브로 기능한다”는 분석과 정확히 호응하는 지점이다.

A Night in Seoul_250.0×100.0cm_Mixed Media on Canvas_2009. 권대하 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A Night in Seoul(250.0 × 100.0cm, 2009)에서는 도시라는 무대가 한층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서울 한복판의 야경이지만, 눈앞의 풍경은 특정 브랜드나 지명이 아니라 익명적 감정으로 읽힌다. 권대하는 대도시의 속도감을 적용하면서도, 도시의 과잉이 주는 소외감까지 함께 포착한다. 빛과 어둠, 속도와 정지, 화려함과 고독이 동시에 존재한다. 보고서는 도시의 밤이 사람들의 기억을 생성하는 장치로 변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하 회화가 그 장치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비 오는 날-명동 블루스_180.0×142.0cm_Oil on Canvas_2010. 권대하 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비 오는 날‐명동 블루스(180.0 × 142.0cm, 2010)는 도시 감정의 서사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 도시의 파란 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파형이다. 명동이라는 장소는 소비의 중심지이지만, 화면 속 명동은 쓸쓸함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중적 감정은 관람자의 경험과 연결된다. 각자가 기억하는 비 오는 밤의 장면이 떠오르고, 도시가 개인의 기억을 호출하는 무대로 역할을 바꾼다. 보고서가 지적한 “감정 기반의 회화 소비 증가”를 권대하 작품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결국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인구의 이동이 도시의 신진대사라면, 감정의 흐름은 도시의 공기다. 권대하가 화면에 채택한 빛의 요소들은 자동차와 가로등 같은 사물이지만, 그 빛을 만들고 소비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도시에서 사라진 얼굴들을 다시 호출하는 작업, 즉 도시를 감정의 장소로 되돌리는 것이 권대하 회화의 역할로 보인다.

2025년 미술시장은 이러한 감정의 재활성화를 요구한다. 작품을 통해 공감을 얻고, 공감을 통해 작품이 다시 공유된다. 예술의 가치는 유통 속도가 아니라 정서적 잔여량에 의해 평가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권대하는 오랫동안 도시의 불빛과 그림자를 소재로 삼았고, 작품 속에 담긴 감정은 시대의 요구보다도 앞서 있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권대하, 신풍미술관 초대전 “도시, 빛으로 그리다-서울에서 뉴욕까지” 사진=권대하 작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도시의 감정화는 한국 현대도시 경험에서도 중요하다. 서울과 명동은 빠른 변화를 겪어온 도시이지만, 그 변화가 남긴 정서는 아직 분석되지 않은 감정의 층위로 남아 있다. 권대하는 그 층위를 빛으로 드러냈다. 비가 그치면 사라지는 반사광일지라도, 그 순간의 감정은 오래 남는다. 인간의 흔적이 저장된 도시를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권대하 회화는 작동한다.

‘사람 없는 도시’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누가 그곳을 살았는지, 어떤 감정이 스쳤는지, 왜 그 빛이 그렇게 보이는지. 2025년 도시 회화의 관심사는 그 질문 위에 세워진다. 권대하가 오랜 시간 축적한 감정의 도시 기록은 이 관심사에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도시가 결국 사람의 흔적이라는 진술은 단순한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미술 시장의 리얼리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