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⑤] 대학 박물관의 미래는 지역에서 온다… 한서대학교 인장 전시가 남긴 과제
공공문화 거점으로서 대학 박물관의 역할을 묻다
[KtN 박준식기자]한서대학교 박물관 연암도서관 5층 인장 전시실은 캠퍼스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은 한서대학교 내부만을 위한 문화 시설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재인 명예교수가 평생 수집해 기증한 1,400여 점의 인장을 기반으로 전시가 개최되자, 지역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방문했다. 개막식에 서산장학재단 조규선 이사장, 설화문학관 박태규 관장, 홍주천년문학관 장기욱 관장을 비롯해 지역 기관 관계자들이 모인 사실은 이 전시가 지역 문화자산과 교육자산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학 박물관은 학술 기반 위에 자리하는 기관이다. 그 학술적 기반이 지역사회에 개방될 때 공공문화 기여가 성립한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이 전문 박물관으로 등록된 2019년 이후 기획전과 특별전을 꾸준히 운영해온 과정은 지역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인장 전시는 그동안 축적된 역량을 시민의 시선에 직접적으로 드러낸 계기가 됐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대학의 교육 역할과 직결된다. 인장은 전공 간 융합 학습의 훌륭한 교육 자료다. 전각 방식은 조형예술학과 학생들의 실기 연구 대상이며, 문인 인장은 국문학과의 문학사 교육에 적용 가능하다. 행정 인장에 관한 내용은 법행정 계열과 연동해 제도사 수업 자료가 될 수 있다. 문화재 보존학과를 둔 한서대학교는 인장 재질 관리와 복원 작업을 통해 학생 교육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전시가 박물관이 단순 관람 공간을 넘어 교육 과정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육과 전시의 연결만으로는 대학 박물관의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는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은 지역 문화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를 갖는다. 서산 도서관 5층이라는 물리적 위치는 외부 관람객의 방문을 어렵게 만든다. 접근성은 공공 문화시설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이다. 전시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찾아오는 과정을 최소화하는 환경 설계가 필요하다. 교통 안내, 단체 관람 유도 프로그램, 휴관일 정보 확대 등 현실적인 접근 전략 마련이 요구된다.
지역 문화 기관과의 협업 또한 필수적이다. 서산, 홍성, 예산 등 인근 지역에는 문학관, 사립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이미 존재한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이 특성화된 분야에서 협업을 확대할 경우 지역 전체의 문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재인 명예교수가 확보한 문인 인장을 기반으로 문학관과 공동 기획전 또는 전문가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지역 기관 간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대학 박물관의 외연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한서대학교가 보유한 학술적 장점은 전시 연구 심화에서 강점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각 양식 분석, 인장 재질 조사, 제작기술 연구가 이미 일부 진행되었지만, 정보 공유 체계는 이제 시작 단계다. 데이터 기반 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보존 기술과 진위 감정 체계가 필요하다. 인장 문화의 고유성은 체계적 연구를 통해서만 보장된다.
이재인 명예교수의 기증 방식은 대학 박물관 운영의 지속가능성 논의를 제기한다. 개인 소장가의 기증은 문화기관의 자산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러나 사후 관리와 연구 예산 확보가 병행되지 않으면 소장품은 저장 공간 속에서 의미를 잃기 쉽다. 기증을 문화유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예산, 인력, 연구 기반이 종합되어야 한다. 이번 전시가 대학 차원의 적극적 정책 지원과 문화재 관리 역량 강화를 촉발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은 지금 전환의 기점에 서 있다. 내부 기능에 충실한 박물관을 넘어 지역과 국가의 문화정책에 참여하는 기관으로 확장할지는 앞으로의 운영 전략에 달려 있다. 전시 운영뿐 아니라 학술대회 개최, 청소년 대상 문화 체험 프로그램, 디지털 전시 콘텐츠 제작 등 공공문화기여 방식이 다양해질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빙은 확장 전략 중 가장 시급한 영역이다. 인장은 촬영만으로도 일반 관람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대상이다. 온라인 전시와 모바일 열람 서비스 구축은 지역적 한계를 넘어 전국 단위 관람 경험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오프라인 박물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면 디지털 플랫폼은 필수 수단이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의 미래는 지역과의 연결성에 달려 있다. 지역의 문화 수요를 수용하면서도 대학의 학술 역량을 정체성 기반으로 유지해야 한다. 인장 전시는 과거를 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미래 운영 방식의 지표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전시를 통해 드러난 가능성과 한계는 향후 박물관 운영 전략의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대학은 지역과 함께 성장할 때 존재 의미가 강화된다. 대학이 보유한 전문 자원은 지역 문화 생태계에서 품격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은 단지 기념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식 생산을 공유하는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인장이라는 문화 소재는 작지만 특화된 박물관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충분한 매개 역할을 한다.
한서대학교 인장 특별전은 대학 박물관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확인한 기획이었다. 지역사회와 연결된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위한 단서가 전시장 안에 명확하게 놓여 있다. 교육, 연구, 지역 문화 기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박물관의 가치가 구체적 사례로 증명된 것이다. 인장은 작은 사물이지만, 대학 박물관 운영 전략의 중심에 놓일 수 있는 자원이다.
서산과 홍성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과 대학의 학술적 자산이 한 지점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장기적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역민이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문화 방파제, 학생 교육의 실습 현장, 연구자의 조사 아카이브. 그 모든 기능이 한 공간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대학 박물관의 미래는 지역 속에서 현실화될 것이다. 한서대학교 박물관이 다음으로 어떤 전시를 선보일지, 그리고 인장 연구를 어떤 학술 기반으로 구축해 나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인장의 새김은 과거를 보여주지만, 대학 박물관의 전략은 미래를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