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경제③] 알고리즘 쇼핑의 시대 누가 먼저 보여지는가가 매출을 결정한다
검색은 흐려지고 추천이 전면에 선다 패션기업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KtN 임우경기자]소비자가 쇼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상품이 화면에 등장하고 결제까지 이어지는 시대다. 스마트폰에서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 취향에 가까운 신상품이 연달아 나타나고 때로는 채팅 상담창에서 착용 예시를 제안받는다. 소비자는 과거보다 손이 덜 간다. 광고를 누르지 않아도 판매가 이루어지는 구조가 정착되는 중이다. 소셜미디어 피드, 커머스 앱 첫 화면, 지인 메시지 대화창 등 소비자가 의도하지 않은 공간에서 제품이 먼저 다가온다. 과거처럼 브랜드가 검색창을 통해 만나게 되는 흐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구매의 주도권이 완전히 이동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인공지능은 소비자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고 어떤 색을 자주 선택하며 어느 시간대에 어떤 종류의 상품에 반응하는지 끊임없이 학습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인지 모르게 소비자의 취향을 소비자보다 먼저 파악한다. 쇼핑이 필요하다는 자각보다 더 빠른 시점에 제품이 제안되고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인공지능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우수한 제품이라도 알고리즘이 이해하지 못하면 소비자 앞에 설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한다. 판매는 눈앞에 있지만 도달이 어려운 시장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대형 패션 플랫폼 기획자는 소비자 관찰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흐름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상품을 추천했을 때 소비자가 만족하면 더 이상 탐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많은 제품을 비교하고 여러 쇼핑몰을 오갔지만 이제는 추천 결과가 구매 결정으로 직결되는 빈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선택을 단순화해주는 과정이 신뢰 형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확한 추천이 반복되면 소비자와 플랫폼 사이에는 일종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브랜드는 그 관계에 초대받아야 한다.
검색 기반 환경에서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광고 효율이 가장 중요했다. 현재는 인공지능이 정보를 수집하고 상품을 이해하는 과정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브랜드가 재킷을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색상과 사이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착용할 수 있는지 비즈니스 장면인지 일상 활동인지 계절 변화에 따라 다른 조합이 가능한지 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제품 자체 설명이 아니라 사용 맥락이 포함된 정보가 필요하다. 기업 내부에서는 이 작업을 데이터 구조화라고 부른다. 데이터 구조화 정도가 바로 추천 노출의 우선순위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기업의 조직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머천다이저와 마케터가 상품 상세 페이지를 관리하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데이터 분석 인력과 시스템 개발자가 상품 기획과 판매 전략의 중심에 선다. 제품을 잘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제품을 잘 이해시키는 역량이 추가로 요구된다. 과거의 영업력은 매장 점유율과 광고 집행에 달렸다면 지금의 영업력은 알고리즘을 설득하는 정확한 데이터 관리에 있다.
한 글로벌 패션 리테일 관계자는 현재의 유통 환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자보다 알고리즘이 브랜드를 더 많이 기억하는 시대다. 소비자가 떠올리지 못해도 알고리즘은 브랜드를 떠올린다. 브랜드는 소비자가 필요를 느끼기 전에 이미 추천 리스트 상단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 공간은 한정적이며 경쟁은 치열하다. 추천 엔진 안에서 밀리면 실제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잃는다. 보이지 않는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가 된다. 온라인 시장에서 인지도를 잃는 것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타격이다.
추천 기반 구조의 확산은 비즈니스 모델 운영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마케팅 비용은 줄고 데이터 투자 비용은 늘어나는 흐름이다. 과거에는 고객을 데려오기 위해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했지만 현재는 추천 전환율이 높아질수록 광고비 절감 효과가 크다. 정확한 상품 정보와 인공지능 최적화 콘텐츠가 고객을 스스로 데려온다.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효율은 높아지는 방향이다. 플랫폼 관계자들은 이를 알고리즘 중심 효율 경영이라 표현한다.
한국 패션기업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주요 브랜드는 스타일 추천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하거나 플랫폼과 협력해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전략을 시행 중이다. 실시간 수요 분석 시스템과 연동해 재고 배분이나 신상품 기획에까지 활용하고 있다. 제품 사진 촬영 단계에서부터 코디 컷을 강화하고 생활 맥락을 반영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이 확대됐다. 제조 중심 기업은 품질 데이터와 생산 정보를 제품 정보에 연결해 추천 적합성을 높이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익숙한 한국 시장은 알고리즘 쇼핑 환경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기업에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상당하다. 자체 플랫폼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은 대형 유통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제품 데이터 품질 관리가 아직 충분히 정교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내부 인력 구조도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데이터 기반 운영을 경험한 인재 풀 또한 제한적이다. 추천 환경에서 뒤처진 기업은 가격 인하 외에 소비자 접근 방식을 찾기 힘들다. 가격 중심 경쟁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해외 시장 확장 역시 알고리즘 경쟁으로 귀결된다. 한국 브랜드가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플랫폼의 추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현지 유저 데이터가 부족한 브랜드는 초기 노출 기회를 얻기 어렵다. 예전에 비해 시장 진출 장벽이 더 높아진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 브랜드는 빠른 기획력과 디자인 구현 능력을 갖추고 있어 데이터 기반 상품 개발에 유리한 측면을 가진다. 이를 기반으로 국제 시장에서 볼륨을 확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패션 기업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질문은 기술과 데이터를 운영 중심에 둘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데이터 정합성은 단순한 품질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알고리즘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체계를 만드는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고 미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이 전환에 늦는 기업은 존재 자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판단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등장한 제품이 취향에 맞으면 비용과 고민을 절약하면서 만족을 얻는다. 편리함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충성도로 이어진다. 추천이 맞을수록 다른 선택을 탐색하지 않는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구매는 플랫폼과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화된다.
쇼핑은 변했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 다만 그 앞에 누가 서 있는지가 달라졌다. 패션기업의 경쟁은 제품 판매가 아니라 소비자의 눈앞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었다. 알고리즘이 선택하는 브랜드만이 시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과거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매출 곡선이 나타나고 있다. 검색 없이 구매가 일어나는 시장에서 승부는 추천 리스트 안에서 결정된다.
알고리즘 중심 유통 시대에 패션기업이 확보해야 하는 첫 번째 과제는 간단하다. 소비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브랜드와 제품이 소비자 앞에 놓일 이유를 설계하는 것이다. 선택받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패션기업에게 알고리즘은 새로운 영업 현장이며 추천 리스트는 단순한 노출 공간이 아니다. 미래 매출과 브랜드 명운이 달린 최전선이다. 움직임이 빠른 기업만이 다음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