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경제④] 주얼리의 시대 장기 가치가 소비를 움직인다
투자와 자기표현이 결합한 새로운 핵심 시장
[KtN 임우경기자]패션 산업 전반이 원가 압박과 소비 둔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주얼리만은 다른 흐름을 그리고 있다. 가격 인상 압력이 거세고 경기 불확실성이 퍼지는 환경 속에서도 주얼리 매출은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다. 어느 국가나 연령대를 막론하고 착용 목적이 장식에만 머물지 않는 제품에 소비가 집중되고 있는데 주얼리는 그 대표적 사례다. 사용 기간이 길고 가치 보존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의 선택 기준을 충족한다. 개인 감정과 자산의 성격이 결합된 소비영역이 주얼리다.
최근 몇 년 동안 주얼리 시장은 연평균 4퍼센트 이상 성장했다. 같은 기간 패션 시장 전체 성장률과 비교하면 네 배 이상의 속도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성장률이 유지되고 있다. 시장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수요 기반이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수요 견조의 배경은 투자재 성격을 가진 상품군에 대한 선호 확대다. 소비자는 가격 변동 위험이 높은 제품보다 장기 보유가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고 있다. 주얼리는 대표적 대체 투자재로 간주된다.
과거 주얼리는 선물 시장 중심으로 운영됐다. 결혼과 기념일이 주요 수요였다. 현재는 흐름이 달라졌다. 자기 확신과 자기 보상이 구매를 이끌고 있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소비가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MZ세대 소비자는 브랜드 충성도보다 자신의 취향과 가치에 맞는 제품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성취감과 정체성 표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얼리가 선택되는 것이다. 경기 불안이 커질수록 이러한 수요는 더욱 선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기분 전환과 심리적 안정이 소비 이유로 중요해지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남성 시장 확장은 또 다른 성장 기반이다.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는 남성 라인을 적극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브랜드 또한 이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과거 일부 이용층에 국한되었던 남성 주얼리는 이제 흔한 일상 착용 아이템이 되었고 상품군도 다양해졌다. 단순 실버 액세서리 수준을 넘어서 프리미엄 소재와 디자인 상품군이 늘었고 착용 방식도 가벼운 레이어링 방식으로 발전했다. 여성 중심 시장에서 벗어난 확장은 수요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대한다.
주얼리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변화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확산이다. 실험실에서 제작한 다이아몬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윤리적 가치 소비 흐름과 맞닿아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 대비 접근성이 높아 결혼 링 중심 시장에서 일상용 시장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과는 차별적인 규모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심미성과 품질이 높아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는다. 수요 트렌드 변화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재정비를 요구한다.
패션 기업의 전략적 접근도 변화하고 있다. 제품 경쟁력은 단순한 소재와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헤리티지와 착용 맥락 제안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목걸이나 반지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옷과 함께 어떤 일상에서 활용되는지가 중요하게 평가된다. 브랜드는 이러한 요소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하고 제품 스토리와 문화 요소까지 담아내는 방식을 강화하고 있다. 감정의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이 차별화 전략이 되는 이유다.
리세일 시장 성장 역시 주얼리의 안정성을 높인다. 다른 패션 제품과 비교했을 때 주얼리는 사용 흔적이 작고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 특히 금과 다이아몬드 제품은 원자재 가치가 명확해 재거래가 쉽다. 이러한 구조는 구매를 투자로 전환하는 심리적 기반이 된다. 소비자는 구매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한다. 의류와 가방은 유행에 따라 가치가 급락할 수 있으나 주얼리는 상대적으로 가치 하락 위험이 적다.
경제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에도 주얼리 수요가 꾸준히 유지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주얼리는 가격이 잘 방어되고, 필요할 때 손쉽게 재판매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며, 소유자가 느끼는 감정적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결국 주얼리는 경제적 가치와 감정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는 독특한 성격의 재화로, 이러한 구조 덕분에 오히려 시장이 침체될 때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로 부각된다.
한국 시장에 주얼리 성장 가능성은 크다. 국내 소비자는 패션 감도와 브랜드 이해도가 높은 편이며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도 높다. 최근 한국 주얼리 브랜드가 해외 전시회에서 수주를 확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디자인 역량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ODM 기업은 정밀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생산 파트너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제조 경쟁력과 디자인 창의성이 동시에 부각되는 시기다.
온라인 유통 구조의 발달도 한국 주얼리 시장 확대에 유리한 조건이다. 착용 컷과 영상 콘텐츠가 소비자의 판단을 돕고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영향력이 구매로 연결된다. 디지털 기반 주얼리 커머스는 성장 여지가 크다. 반면 시장 확대 단계에서 위조품이나 품질 편차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증과 품질 기준 관리 강화는 필수적 과제가 된다.
주얼리 시장은 고가 브랜드 집중에서 벗어나 중가 브랜드 성장세가 함께 두드러지고 있다. 소비자는 편안한 가격대를 선호하면서도 품질과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중가 주얼리는 이 요구를 충족한다. 시장의 중심축은 명품 브랜드 일극 체제에서 다양한 브랜드가 공존하는 경쟁 구도로 이동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품질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기업이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패션기업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진다. 의류와 가방에 집중된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시점이다. 감정 소비와 자산 소비가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이 주얼리며 시장 안정성이 높다. 국내 제조 기술과 디자인 역량을 결합하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지속가능한 소비 흐름에 부합하는 투명한 공급망 운영과 친환경 소재 연구가 중요한 차별 요소가 될 수 있다.
소비 중심이 과거처럼 명확하게 하나로 집중되지 않는 시대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확고해졌다. 패션기업에게 주얼리는 위기 속 기회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시장 사이클에 대한 방어력과 확장성을 동시에 갖춘 카테고리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주얼리는 일시적 장신구가 아니라 스스로를 증명하고 미래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소비 대상이 된다. 경제적 긴장과 불확실성 속에서 더욱 매력적인 수요 기반이 형성된 셈이다.
패션 산업 전반에 걸친 비용 압박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환경에서 높은 수익성과 함께 안정적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품목은 많지 않다. 주얼리는 그 조건을 충족한다. 소비자의 감정과 자산 양쪽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상품군은 흔하지 않다.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이 가능한 시장이다. 국내 패션기업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때 최우선 전략 옵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주얼리는 긴 시간 동안 사람 곁에 머문다. 이 특성이 시장의 탄탄한 성장 기반이다. 기업이 장기 관점 전략을 설정할 때 주얼리 사업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감정 자본과 재무성과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확장성이 높아질 것이다. 미래 패션 시장이 불확실해도 주얼리의 성장 곡선은 완만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며 지금이 대응 속도를 높일 시점이다. 패션기업이 다음 전환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 가치와 경제 가치를 연결하는 전략적 설계가 필요하다. 주얼리 시장은 그 조건을 가장 명확하게 갖춘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