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트렌드④] 시대를 넘어 다시 올라온 명곡들 세대와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장기 흥행의 비밀
캐럴과 스테디셀러가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부상한 이유
[KtN 홍은희기자]2025년 11월 22일자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최신 음원과 함께 수십 년 전에 발표된 음악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추억 소비가 아니다. 시대를 건너뛰어 다시 사랑받는 곡들의 존재는 현대 음악 시장의 구조를 정확히 반영한다. 스트리밍 시대가 열리며 모든 음악은 시간의 제한을 벗었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는 캐럴과 스테디셀러가 있다. 세대별로 다른 기억을 가진 청취자가 동일한 플랫폼 안에서 음악을 소비하면서 명곡이 다시 떠오르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번 주 차트에서 확인된 대표적인 곡은 머라이어 캐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다. 18위로 뛰어올랐다. 50주 이상 차트에 머물렀던 이 곡은 연말만 되면 다시 전 세계 스트리밍 차트를 뜨겁게 달군다. 휘트니 휴스턴이나 셀린 디온의 명곡들이 과거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과 달리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은 계속해서 현대 대중문화의 중심에 들어서는 특징을 가지며 여전히 세계 크리스마스 표준 음원으로 소비된다. 왐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이번 주 27위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한번 겨울의 시작을 알렸다. 브렌다 리의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는 재진입 후 59위에 올랐고, 바비 헬름스의 징글 벨 록도 재진입해 65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곡들은 연말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꾸준하게 상승한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지구적 축제 문화가 정착한 결과다.
캐럴의 힘은 문화적 기능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전 세계에서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감정선을 경험한다는 점이 캐럴을 특별한 콘텐츠로 만든다.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과 기념일,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집중되는 연말 분위기 속에서 캐럴은 배경 음악 이상의 역할을 한다. 일종의 감정적 장치로 기능하며 누구나 알고 있는 정서를 즉각적으로 불러낸다. 재미있는 점은 젊은 세대는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을 더 이상 과거 음악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겨울 시즌마다 자연스럽게 재생 목록에 오른다는 점에서 최신 음악과 동일한 소비 흐름을 가진다. 세대 간 음악 격차를 줄여주는 요소가 바로 캐럴이다.
또 다른 장기 흥행의 중심에는 스테디셀러가 있다. 더 네이버후드의 스웨터 웨더는 28위에 올랐고, 올해만도 계속 차트를 지키고 있다. 경찰의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는 35위, 라디오헤드의 크립은 30위권대, 콜드플레이의 옐로와 스파크스 역시 재진입과 장기 체류를 반복 중이다. 스모키한 기타 사운드와 감정의 농도가 짙은 곡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곡들이 플랫폼에서 다시 떠오르는 원인에는 SNS 콘텐츠 문화가 있다.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 감정 기반의 장면을 만들기 위한 음악으로 이미 검증된 스테디셀러들이 선택된다. 밈이나 숏폼 콘텐츠가 특정 곡을 다시 부각시키며 새로운 세대에게 이 음악을 소개한다. 한 번이라도 영상 속에서 노출된 곡은 플랫폼 알고리즘의 흐름을 타며 재생이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에 나온 곡들이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는다.
세계 음악 시장에서 오래 사랑받는 곡의 또 다른 특징은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리트우드 맥의 드림스는 록의 전통 안에 있지만 현재는 팝 소비의 중심에서 듣는다. 고릴라즈의 필 굿 인크 역시 전자 사운드와 록의 경계를 오가며 세대별로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장르의 구분은 시장에서 점점 힘을 잃어간다. 대신 청취자의 기억과 감정이 음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시대를 초월한 곡은 발매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적합한 감정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감정의 복잡성이 커질수록 명확한 감정 윤곽을 가진 곡이 안정감을 준다.
신기하게도 이런 곡들이 가진 결속력은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강화된다. 각각의 음악은 오래된 히트곡이지만 현재 차트에서는 최신 음악과 경쟁하며 같은 레벨로 재생되고 있다. 플랫폼은 모든 음악을 동등하게 배치한다. 발매 연도나 장르가 알고리즘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과거 음악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이다. 세대별 취향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인다. 부모 세대가 사랑한 곡을 자녀 세대가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선택하고 이를 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처음 듣게 된다. 이 반복 속에서 과거 음악은 다시 살아난다.
세대를 잇는 음악은 감정 전달 방식이 분명하다. 스웨터 웨더나 드림스 같은 곡은 멜로디와 분위기만으로도 곧바로 청취자를 특정 감정선에 올려놓는다. 블라인딩 라이츠가 여전히 70위권대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시대와 관계없이 특정 감정을 빠르고 선명하게 불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악의 감정 전파 속도가 빠를수록 반복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반복 소비는 결국 차트 성적을 이끌어낸다. 플롯의 재구성보다 감정의 직관성이 더 큰 힘을 갖는 시대에 스테디셀러의 재조명은 필연에 가깝다.
이런 음악이 오랫동안 사랑받을수록 창작 환경도 함께 변한다. 현재의 작곡가들은 스테디셀러가 가지는 구조적 안정성을 분석하고 이를 자신만의 음악 속에 반영하려 한다. 단순하면서도 감정의 강도가 높은 전개, 반복구조 속 미세변화, 과도한 장식 없이도 인상을 남기는 선율이 주목받는다. 이는 곧 플랫폼에서의 경쟁력을 의미한다. 알고리즘이 선택하는 곡은 결국 반복 재생에서 살아남는 음악이다. 과거 명곡의 성공 방식과 오늘날의 소비 방식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연말 차트에서 캐럴과 스테디셀러가 동시에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단순한 시즌 현상이 아니다. 세계 음악 시장은 특정 시점에 과거와 현재, 다양한 감정이 응축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음악을 듣는 이유가 즐거움에서 위로와 안정으로 확대되면서 정서적 공통분모를 가진 곡들이 앞서간다. 오래전 발표된 음악이 다시 현재를 대표하는 음악이 되는 것은 플랫폼 소비 구조가 선사한 놀라운 변화다. 세대와 세대 사이를 잇는 다리가 음악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