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트렌드②] 조안 미첼과 루스 아사와, 왜 다시 최고가를 경신하나
기관 지지 작가로 자본이 되돌아가는 명확한 이유
[KtN 임민정기자]뉴욕 필립스 이브닝 세일에서 두 작가에게 쏠린 관심은 필연적이었다. 조안 미첼과 루스 아사와. 두 작가는 이미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결과는 단순한 과거의 회복이 아니다. 완전히 달라진 시장의 조건 위에서 새로운 기준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절하다. 금융적 관점에서 보면 아트마켓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이 변했고, 그 중심에 이들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
조안 미첼의 작품은 1천4백3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2018년 크리스티에서 동일 작가의 작품이 9백10만 달러에 팔렸던 것을 감안하면 약 57퍼센트 상승이다. 상승률보다는 안정성이 더 눈에 띈다. 미첼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도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았다. 공급이 제한적이고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가 지속적으로 전시를 통해 레퍼런스를 쌓아왔다. 뉴욕에서는 데이비드 즈워너가 올해 초 미첼 전시를 열었고, 이는 필립스 경매 직전까지 이어졌다. 기관과 갤러리의 신호가 직접적으로 가격에 반영된 셈이다.
루스 아사와 역시 마찬가지다. 1970~80년대의 금속 와이어 조형물 두 점이 각각 1백1만 달러, 90만 달러를 기록했다. 모두 추정 상단을 넘는 결과다. 아사와 역시 즈워너가 에스테이트를 관리한다. 특히 아사와는 최근 미국 주요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현대 조각사에서 동시대적 위치를 확보하는 과정이 가격의 재평가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급이 제한적이다. 에스테이트 관리 체계가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어 시장에 작품이 대량으로 쏟아지지 않는다. 둘째, 미술관 전시가 꾸준하다.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기관이 아니라 가격의 공인 기관으로 기능한다. 셋째, 메이저 갤러리가 유통을 통제하며 시장의 체계를 유지한다. 작품이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로 들어가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즉, 정보 비대칭이 적다.
미술 시장에서 안정성은 시간이 누적될수록 비싸진다. 그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제도적 검증과 공급 희소성. 미첼과 아사와는 이 두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작가군은 경기 변동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조정기일수록 자본은 신뢰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번 결과는 그 이동의 방향이 분명해졌음을 보여준다.
더 주목할 점은 세대적 변화다. 미첼과 아사와는 모두 여성 작가다. 현대미술 시장은 오랫동안 남성 작가 중심으로 가격 구조가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여성 작가의 재평가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미술사 서술이 수정되면서 가격 위계도 함께 재편되는 중이다. 젠더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권의 적극적 발굴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은 단지 수익을 좇는 구조가 아니다. 서사가 바뀌면 가치도 바뀐다.
또한 두 작가는 국적, 인종, 전통적 예술 제도와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지형을 보여준다. 아사와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과거에는 차별과 편견 속에 평가 절하되었던 인물이다. 미술사의 균열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장에서도 보상되고 있다. 미첼 역시 미국 추상표현주의 안에서 여성 작가가 어떻게 중심에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가격은 사회적 기억의 재편을 따른다.
이번 경매에서 신진 작가가 유찰되고, 베이컨과 같은 거장도 손실을 본 사례가 등장한 상황에서 미첼과 아사와의 상승은 경제적 의미가 크다. 시장은 지금 위험을 줄이는 길을 찾고 있다. 명확하게 검증된 서사와 공급 구조를 가진 작가에게 자본이 모이고 있다. 이 논리를 달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예상 가능한 미래”가 있는 작가.
필립스 이브닝 세일의 데이터는 그 흐름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전체 판매액에서 미첼, 아사와, 에른스트 등 검증된 모던·포스트워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확대되었다. 세일 상위 로트를 채운 블루칩 작가군의 비중이 높아졌다. 시장의 중추가 다시 과거가 아니라 제도권에서 엄선된 포트폴리올로 모이고 있다.
이 변화는 경매사에게도 기회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대형 블루칩으로 고가 시장을 주도한다면, 필립스는 중상단을 잡는 전략이 가능하다. 검증된 작가 중에서도 공급량이 많지 않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유치하고, 정확한 가격대에서 판매율을 높이는 구조가 필립스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시장 위축기에는 무리한 성장 대신 핵심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기관 지지 작가의 가격 상승은 단순히 가성비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귀해진다. 작품이 시장에 다시 등장할 확률이 낮다. 한 번 미술관이나 대형 컬렉션에 들어가면 유통 가능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작품을 확보한 컬렉터에게는 희소성을 지키는 것이 자산 가치의 핵심이 된다. 이 구조가 가격을 밀어올린다.
이번 세일에서 드러난 사실은 고점에서 구입한 블루칩이 손실을 낼 수 있어도, 검증된 작가군 전체의 신뢰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위험은 특정 작품 단위에서 나타나지만 안정성은 작가 전체에서 확보된다. 자본은 개별 사건에 흔들리지 않고 구조를 따라간다.
조안 미첼과 루스 아사와는 현재 시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가장 깔끔하게 충족한다. 서사와 제도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격 형성. 공급 희소성에 기반한 점진적 상승. 변동성은 낮고, 장기 수익 가능성은 높다. 미술 시장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기본은 더 정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