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트렌드③] 공룡이 540만 달러에 팔렸다, 지금 컬렉터는 무엇을 원하는가

자연사 자산이 새 투자처로 급부상

2025-11-23     임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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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임민정기자]2025년 필립스 뉴욕 이브닝 세일에서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향한 대상은 회화도 조각도 아니었다. 전시장의 중앙을 차지한 것은 유년기의 트리케라톱스 골격. 이름은 세라. 예상가 250만~350만 달러였던 이 화석은 결국 54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작품명이 없고 작가도 없다. 그러나 경쟁은 치열했고 가격은 뛰었다. 이 장면 자체가 미술 시장의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왜 공룡인가.

자연사 기반 수집은 오래된 취향이다. 그러나 이 위치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골동품 혹은 일부 전문 수집가의 영역에 머물렀지만, 최근 5년 사이 공룡 화석 가격은 완전히 다른 곡선을 그리며 미술 시장과 동일한 영역으로 이동했다. 기록을 살펴보면 변화의 속도가 드러난다.

2020년대 들어서만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출품된 대형 공룡 화석이 1천만 달러 이상을 기록한 사례가 여러 번 등장했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형태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종일수록 가격 상승폭이 컸다. 특히 2022년 스테고사우루스 골격은 4천5백만 달러를 돌파했고, 시장은 단순 호기심이 아니라 확고한 수요를 확인했다. 이번 필립스의 세라는 그 흐름을 다시 증명한 사례다.

자연사 자산이 새 투자처가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극단적 희소성. 공룡 화석은 더 이상 새롭게 생산되지 않는다. 발굴지 규제가 강해질수록 공급은 줄어든다. 희소성은 가격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둘째, 경험경제의 확장. 컬렉터는 자산의 존재 자체보다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원한다. 화석은 전시와 콘텐츠화가 수월하다. SNS에 공유되는 순간 하나의 사회적 자본이 된다. 셋째, 대체투자 관점 확대. 테크 산업 부자와 신흥 부유층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을 미술 시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주식, 암호화폐, 벤처 투자의 변동성 속에서 실물 기반 자산은 안전판이 된다.

미술품과 자연사 자산의 경계가 흐려지는 근본적 배경도 있다. 관람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 전환이다. 물리적 존재감이 강하고 이야기성이 풍부한 오브제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세라는 6천6백만 년 전 생명체라는 점, 성장기의 독특한 골격 구조, 포토제닉한 세팅 등으로 전시효과가 극대화된다. 작품이 아니라 위치가 의미를 만든다. 경매장 한가운데 놓인 공룡 골격은 곧 브랜드가 된다.

이번 필립스 세일 이후, 많은 참석자들이 세라 앞에서 줄을 섰다. 물론 전시의 퇴장도 함께였다. 카메라는 세라를 중심으로 돌았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관성이다. 공공 기관, 가족 관람객, SNS 기반 확산이 결합된 순간 시장은 작가의 서사 없이도 자산의 서사를 소비할 수 있다고 증명된다.

자연사 자산은 미술 시장에 새로운 층을 만든다. 기존 미술 수집과 결이 다른 구매자들이 등장한다. 과학, 테크, 금융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이 미술 시장으로 진입할 때 전통적 미술품보다 자신의 전문성과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오브제를 선호한다. 세라는 이들의 상징이 된다.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대표하는가”가 가치 기준을 규정한다.

물론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자연사 자산은 규제가 강해질 수 있다. 국가 간 소유권 분쟁, 문화재 반환 요구, 발굴 허가 문제 등 정책 리스크가 뒤따른다. 화석의 윤리적 소유 문제는 앞으로 더 논쟁적 이슈가 될 수 있다. 또한 과학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공룡 화석을 미술품처럼 가격 책정할 때 과학계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이 있다는 것은 곧 리스크 프리미엄이 있다는 뜻이다. 고위험 자산은 높은 보상 기대를 만든다. 시장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연사 자산의 가격 형성 방식은 기존 미술품과 다르다. 작가가 없고 제작 연도도 없다. 대신 희소성과 보존 상태, 발굴 기록, 종의 인지도, 전시 가능성, 그리고 크기 같은 명확한 물리적 요소가 가격에 반영된다. 수수료와 보증 구조를 포함한 금융 논리로 풀어낼 수 있다. 투자자는 분석하기 쉬운 구조를 선호한다. 자연사 자산은 정서가 아니라 팩트 기반의 가격을 만든다.

필립스의 전략도 중요한 대목이다. 공룡 화석을 이브닝 세일에 포함한 결정은 단순 실험이 아니다. 이브닝 세일은 하우스의 전략적 쇼케이스다. 가장 자부심 있는 로트를 배치하는 무대다. 필립스는 이 자리에서 공룡을 선택했다. 이는 브랜드 포지셔닝을 바꾸겠다는 신호다. 전통적 모던과 컨템포러리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의지다.

시장 차원에서 보면 필립스의 선택은 ‘미술’의 정의 자체를 확장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미술 시장은 항상 외연을 넓혀왔다. 사진. 디자인. 디지털 아트. NFT. 각 시대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 기존 위계를 흔들었다. 자연사 자산의 등장은 그 확장의 최신 국면이다. 공룡이 들어오자 컬렉터의 관심이 모였고, 숫자가 이를 증명했다.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결국 자연사 자산의 등장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미술 시장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가. 답은 명확하다. 수요가 향하는 곳까지. 그 수요는 지금 서사와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공룡 골격은 그 접점의 상징이다. 작가 서사 중심의 시장에서 객체 중심의 시장으로 확장되는 전환기. 미술 시장의 관점은 지금 더 넓은 세계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