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패션②] 빅터의 의상은 어떻게 천재의 몰락을 말하는가

창조의 욕망이 무너뜨린 아름다움의 기록

2025-11-23     김동희 기자
Kate Hawley's Gothic Masterpiece: Inside the 'Frankenstein' Costume Design. 사진=Netflix.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문학과 영화 속에서 과학의 광기, 인간을 넘어선 창조 욕망,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는 몰락을 상징해왔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에서 의상 디자인은 이 상징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케이트 홀리는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미세한 요동까지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빅터의 여정에 따라 의상을 변화시킨다. 정교한 재단과 단단한 구조로 시작해 흐트러진 실루엣과 거친 표면으로 무너지는 과정. 이 변화는 서사와 인물의 심리적 붕괴를 완벽하게 매칭시키며 현대 영화 의상 디자인에서 보기 드문 정밀한 감정 번역 능력을 보여준다.

빅터의 첫 등장은 완벽에 대한 집착을 품은 젊은 과학자의 모습이다. 어둡지만 광택이 감도는 벨벳 수트는 상류 계급의 혈통과 함께 차가운 지성을 나타낸다. 매끄러운 선과 조밀한 버튼 간격, 목선까지 정확하게 계산된 칼라는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으려는 야망의 기초를 드러낸다. 케이트 홀리는 이 초기 의상에서 록 음악계의 카리스마 우상인 믹 재거의 무대 의상을 참조했다. 혁신에 대한 열망, 대중의 시선에 대한 갈망, 자신이 만든 세계를 지배하려는 태도. 빅터의 창조 열망을 패션 언어로 해석한 선택이다.

이후 실험이 벽에 부딪히고,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이 괴물 같은 집착으로 변할 때 빅터의 옷은 점차 균형을 잃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작은 주름과 어딘가 삐뚤어진 옷깃으로 나타난 변화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다. 옷의 선이 비틀리고, 재단이 흐트러진 부분들이 늘어난다. 관객은 대사를 듣지 않아도 그의 정신이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상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케이트 홀리는 이를 두고 캐릭터의 두 번째 피부라고 표현한다. 옷을 통해 빅터의 혼란, 죄책감, 자기 혐오가 그대로 피부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색의 상징 또한 서사를 끌어가는 핵심이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붉은색은 빅터와 깊이 연결된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죄의 기억, 실험 과정에서 묻어나는 피의 흔적, 그리고 고통을 외면한 채 집착을 이어가는 의지까지. 붉은 장갑은 그의 손이 더럽혀졌음을 말하며 동시에 신격화된 창조자라는 착각을 은유한다. 이 장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렬한 시각적 무게를 갖는다.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렸다는 상징이자 절대 포기하지 않는 광기의 증거이다.

Kate Hawley's Gothic Masterpiece: Inside the 'Frankenstein' Costume Design. 사진=Netflix.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빅터의 몰락은 실루엣의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치수 하나까지 완벽했던 수트는 점차 형태를 잃고 지나치게 넓어진 어깨선과 무너져 내린 소매로 표현된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사라지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불순물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홀리는 이 과정을 통해 창조의 아름다움이 잔혹함으로 뒤바뀌는 심리를 시각화했다. 어느 순간부터 빅터의 옷은 갑옷이 아니라 짐이 되고, 의상은 그와 함께 무너지는 세계를 그대로 반사한다.

케이트 홀리는 빅터 의상의 변화에 구조와 재단뿐 아니라 질감까지 변화시키며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번역한다. 부드러운 벨벳이 점차 거칠고 무딘 섬유로 대체되고, 마감선의 깔끔함이 사라진다. 이는 빅터가 과학을 통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깨닫는 과정, 즉 완벽한 창조자라는 환상이 붕괴하는 순간과 맞닿는다. 영화 후반부 빅터는 더 이상 자신의 옷을 정돈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재구성할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빅터의 의상 전략은 현대 패션 산업의 움직임과도 강한 연관성을 갖는다. 최근 수년간 유행한 다크 아카데미아와 고딕 리바이벌은 단순히 어두운 색을 사용하는 경향을 넘어, 인간의 결핍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감정적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 홀리는 이 흐름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완벽한 실루엣을 붕괴하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움의 소재가 된다는 점을 관객에게 설득하고 있다. 한때 런웨이에서 외면받던 구김, 균열, 해체된 구조는 빅터의 몰락을 통해 가장 강렬한 시각적 매력으로 변모한다.

Kate Hawley's Gothic Masterpiece: Inside the 'Frankenstein' Costume Design. 사진=Netflix.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적 관점에서도 빅터 의상은 흥미로운 파급력을 가진다. 서사가 분명하게 담긴 의상은 패션 브랜드들이 활용하고자 하는 최적의 서사 자산이다. 빅터의 초기 수트 스타일은 클래식 테일러링 시장에서 재해석될 수 있고, 후기에 등장하는 해체적 의상은 아방가르드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가 선호하는 디자인 언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5년 F/W 트렌드 전망에서도 해체·봉합형 실루엣과 붉은 포인트 색채 사용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어 영화의 영향력이 패션 산업에 반영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의상 구조는 단순한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을 논한다. 과학과 생명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빅터의 선택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창조의 성공이 불러온 파멸은 옷이라는 형태를 통해 시각적 진술로 남는다. 케이트 홀리는 의상이야말로 인간의 내면 갈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빅터의 옷은 그 진술을 완벽하게 비춰낸다. 아름답게 설계된 파멸의 여정이다.

과도한 야망이 만든 균열은 결국 인물의 영혼뿐 아니라 의상까지도 갈라지게 한다. 빅터가 마지막까지 손에 남긴 붉은 흔적은 어떤 수선도 불가능한 죄책감을 증명한다. 의상은 모든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빅터의 옷이 마침내 관객에게 알려주는 말은 명확하다. 창조자의 옷은 그가 만든 세계보다 먼저 찢어진다. 아름다움은 완전함이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낸다. 빅터의 의상은 그 비극을 가장 탁월하게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