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Insight②] 힙합의 부츠가 메종의 트로피가 되는 순간 팀버랜드는 누구의 것인가
도시와 노동이 만든 상징이 초고가 시장에 흡수되는 문화적 전유 과정
[KtN 임우경기자]팀버랜드 6인치 부츠는 미국 동북부의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탄생했다. 방수 가죽, 발목을 잡아주는 구조, 거친 땅을 딛기 위한 러그솔. 이 기능적 요소는 영하로 내려가는 기온과 불규칙한 지면에서 몸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기술이었다. 생존과 직결된 목적 때문에 제조사가 강조한 가치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착용자의 삶이 그대로 표면에 새겨지는 구조였고, 일상의 흔적이 디자인을 완성하는 신발이었다.
뉴욕 힙합 문화가 팀버랜드를 선택한 시기, 신발의 성격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1990년대 초반 뉴욕의 래퍼들이 무대와 거리에서 팀버랜드를 착용하며 도시 정체성의 언어로 활용했다. 나스는 퀸즈브리지의 현실과 존엄을 랩으로 표현할 때 팀버랜드를 스타일의 기초로 삼았다. 더 노토리어스 B.I.G.는 브루클린의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 도구로 팀버랜드를 활용했다. 우탱클랜은 지역 공동체의 분노를 음악으로 드러내며 팀버랜드를 발 아래 두고 무대에 올랐다. 신발은 대량 생산된 제품이었지만, 착용자의 경험을 통해 유일한 서사가 만들어졌다.
거리에서 축적된 시간의 흔적은 팀버랜드를 사회적 상징으로 변화시켰다. 노동자 계층과 도시 청년층이 구성한 문화는 과시가 아닌 생존과 저항의 형태였다. 팀버랜드를 신고 거리를 걸었다는 사실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스크래치, 주름, 윤기 없는 가죽 표면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루이비통 남성복이 팀버랜드를 끌어올린 방식은 원래 존재하던 사회적 맥락과 충돌한다. 희소성과 고가 전략을 중심축으로 삼는 럭셔리 산업의 접근은 팀버랜드가 지닌 서사적 기반을 배경으로 밀어낸다. 퍼렐 윌리엄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주도한 팀버랜드 재해석 과정에서, 노동자의 신발과 힙합 커뮤니티의 작품은 초사치 시장의 수집품으로 재배치된다. 문화적 뿌리에서 분리된 채 고급 소비층을 향한 상징 도구가 되는 순간, 팀버랜드의 정체성은 상품의 가격 수준으로 판단된다.
높은 가격 책정은 단순한 금전적 가치 평가가 아니다. 누구는 접근할 수 있고 누구는 접근할 수 없는지를 구분하는 벽으로 기능한다. 팀버랜드의 핵심 상징이었던 ‘접근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배제 구조만 남는다. 팀버랜드를 통해 사회적 인정과 자기 정체성을 쌓아왔던 원래 사용자들은 고급 브랜드가 설정한 시장 구조에서 제외된다. 상징의 기원은 거래 대상이 되고, 상징의 소유권은 자본이 통제하는 영역으로 이동한다.
퍼렐 윌리엄스는 힙합을 가장 깊게 이해해온 창작자이지만, 메종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선택한 협업 방향은 힙합의 포용성을 강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힙합이 방어해 온 현실의 서사는 사라지고, 상류층 전유물이 된 팀버랜드만 남는다. 문화적 자산이 패션 브랜드의 이익 체계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원래 문화를 만들어 온 주체는 발언권을 상실한다.
팀버랜드의 의미가 뒤바뀌는 상황에서 가장 크게 손실을 입는 집단은 거리 커뮤니티다. 자신들의 신발이었던 제품이 가격과 진열 위치, 자산화된 패키징을 통해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부여받는 과정은 문화적 분리의 상징적 사건이다. 빈민가 출신 음악이 만든 상징이 부유층 전유물로 재탄생하는 흐름은 오랜 시간 축적된 공동체의 경험을 말소시키는 방식이다. 힙합이 존재를 증명하려고 선택한 도구가 이제는 존재를 심사하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문화의 기원을 시장이 필요로 하는 형태로 재편하고, 그 결과를 자본 권력이 독점하는 방식이다. 팀버랜드의 경우, 원래의 상징이 유지되어야 할 영역은 사라지고 브랜드가 부여한 인위적 신화만 중심에 둔다. 실제 사용자의 경험이 부재한 팀버랜드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징이 된다. 신발이 걷는 길이 더 이상 거리가 아닐 때, 신발은 삶과 단절된다.
뉴욕 힙합이 만들어 낸 팀버랜드의 상징은 공동체적 경험의 발현이었다. 누구나 획득 가능한 제품을 통해 모두가 주체가 되는 문화였다. 그러나 루이비통이 구축한 새로운 팀버랜드의 서사는 배타적 권력 체계가 지배한다. 숫자(50족), 가격(8만5천 달러), VIP 전용 유통망이 모든 의미 체계를 지배하는 구조다. 과거의 팀버랜드는 입장권이었다. 지금의 팀버랜드는 출입 제한을 강화하는 보안장치다.
문화의 원래 주인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상징은 진정성을 잃는다. 팀버랜드가 힙합의 중심에서 벗어난 현재의 풍경은 패션 산업의 본성을 보여준다. 현실보다 가격을, 공동체보다 독점을, 정체성보다 희소성을 우선하는 구조. 팀버랜드를 둘러싼 소유권 이동은 패션이 어떤 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