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Insight①] 면역 나이 되돌리는 시대, 면역노화의 진실

숨겨진 생물학의 균열이 드러나는 순간 인류는 면역의 시간표를 바꿀 수 있을까

2025-11-22     정석헌 기자
석류.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정석헌기자]노년층에서 흔히 관찰되는 감염 취약성은 단순한 체력 저하가 아니다. 면역 체계가 노화와 함께 구조적으로 약해지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감염내과 임상의들은 폐렴 입원 환자 분석 과정에서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고령 환자에게서 중증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다. 이 현상은 생물학적 기반이 분명하다. 면역 체계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방어 중심 세포를 잃는다. 그중에서도 면역학계가 주목하는 요소는 나이브 T세포 감소다.

나이브 T세포는 새로운 병원체에 대응하는 선봉대다. 신체가 처음 마주하는 바이러스와 세균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공격 전략을 빠르게 형성한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면역학 연구실은 나이브 T세포 감소가 단지 감염에 취약해진다는 의미를 넘어 암 발생 위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면역 체계가 암세포를 지속적으로 제거하지 못하면 종양 형성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면역노화 현상은 단지 특정 세포 수의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립암센터의 종양면역 분야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가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생체의 에너지 발전소로 불리며 모든 세포 활동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특히 면역세포는 끊임없이 적을 찾아다니고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 수요를 가진다. 실전 병력과 같다는 평가가 많다.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면역세포는 전투에 필요한 연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곧 면역 반응 저하를 의미한다.

면역 기능 저하는 세계보건기구가 경고한 고령화 시대의 대표적 위험 요인이다. 유엔은 2050년 전 세계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16퍼센트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수명 연장은 이뤄졌지만 면역 체계의 수명은 현 시점에서도 개선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다. 감염병 입원 증가 암 치료 기간 장기화와 같은 의료비 증가는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져 공공보건체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노화생물학 연구는 하나의 방향성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면역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국내외 세포생물학자들은 세포가 스스로 손상 부위를 치유하고 기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 주목해왔다. 그 가운데 미토콘드리아를 정화하는 자가정비 과정인 미토파지 활성화가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낡은 엔진을 교체해 차량 성능을 유지하듯 세포도 노화된 에너지 생산 장치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강한 면역 반응을 유지할 수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게오르크 슈파이어 연구소와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임상 연구는 이 분야에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진은 성인 50명을 모집해 일정 기간 Urolithin A를 섭취하도록 했다. Urolithin A는 석류 호두 일부 베리류에 포함된 엘라기탄닌 계열 폴리페놀이 장내 미생물에 의해 전환된 대사 산물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에서 관심을 모았다. 나이브 T세포 수가 섭취 전보다 증가했고 실험실 내에서 실시된 박테리아 제거 시험에서도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연구 책임자인 도미닉 뎅크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 의사과학자는 임상 참여자 전원에서 안전성을 확인했으며 심각한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면역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노화면역 분야의 가능성으로 해석한다. 세포 내부 미토콘드리아 관리 체계를 활성화함으로써 면역 기능 회복을 유도할 수 있다는 근거가 나온 셈이다. 실제로 면역항암치료 효과가 낮은 환자군에서 T세포 기능 개선은 치료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변수다. 게오르크 슈파이어 연구소의 암면역 연구팀은 이미 면역항암제 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Urolithin A 병용 실험을 진행 중이며 결과에 따라 암 치료 패러다임을 보조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급한 단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연구의 대상자 수가 적고 기간이 4주로 짧았기 때문이다. 장기간 복용 시 안전성과 효과 유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양한 질환과 연령 환경을 고려한 대규모 임상이 필요하다. 이를 확인해야만 Urolithin A가 치료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Urolithin A가 자연 식품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라고 해서 모든 성인이 동일한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내 미생물 구성에 따라 유효하게 생성되는 비율이 절반을 밑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체 미생물 생태계 연구를 토대로 한 맞춤형 영양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제조 기술 역시 큰 변수다. 건강기능식품 원료 수준의 생산과 의약품 등급 생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정제기술 공정 안정화와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Urolithin A를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치료제로서 사용 범위 확장은 규제 절차가 남아 있다. 유럽연합은 신규식품 규정에 따라 97퍼센트 순도 이상을 요구한다. 각국의 식의약 규제 체계에 맞추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경제적 관심도 높아진다. 글로벌 기능성 원료 시장은 고령화 속도에 따라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은 2030년 Urolithin A 관련 시장이 15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항노화 면역기술이 의료비 절감과 생산 가능한 고령층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가 산업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면역 체계의 노화는 단순한 생물학 현상을 넘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경제적 이슈다. 노화가 진행돼도 면역세포 활동이 유지된다면 회복 속도는 빨라지고 감염 사망률은 낮아지며 암 치료 성과도 개선된다.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건강수명 증가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크푸르트 연구팀의 결과는 노화연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면역 체계의 시간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실험적 근거가 제시되었다. 세계 각국 연구기관은 후속 검증을 준비 중이다.

면역노화는 필연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 생물학은 노화를 피할 수 없다고 간주했지만 인간은 다시 한 번 한계를 재정의할 기회를 얻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면역 회춘이 실현될 가능성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