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RENDY①] 관세 위기 넘은 한국, 중동에서 출구 찾다
한미 관세협상 직후, UAE를 첫 행선지로 선택한 전략의 실체
[KtN 최기형기자]한국 수출 주력 산업은 지난 수년 동안 관세와 공급망 불안이라는 거대한 압박에 놓였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불확실성을 완화하며 당장 급한 불을 끈 뒤, 다음 전략을 어디에 두는지가 국내외 관전 포인트였다. 이 흐름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관세협상 직후 가장 먼저 UAE를 국빈 방문한 결정은 단순한 외교 일정을 넘어, 한국 외교경제 전략의 변화된 방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17일 아부다비에 도착하며 7박 10일 일정의 첫 국가로 UAE를 선택했다. 한국 대통령의 중동 첫 일정으로 UAE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과거 대비 방향 전환을 보여준다. 미국과의 관계가 한국 통상·안보의 핵심 축인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을 지키는 한편,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해 신흥시장 개척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관세 위기가 실제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초입에서, 한국 정부는 국가경제 안정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답을 중동에서 찾았다.
UAE는 한국에게 단순한 자원 공급국이 아니다. 손정의, 구글, 아마존 등 세계 기술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인공지능·데이터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고, 군수산업과 에너지 전환 정책 역시 적극적이다. 두 나라는 이미 원전과 방위산업에서 협력 기반을 다져 왔다. 이러한 배경 위에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UAE 방문을 통해 경제·안보·기술·문화까지 아우르는 관계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 UAE 대통령실은 한국 대통령에게 공군 전투기 호위라는 최고 예우를 부여했다. 이는 단순한 의전이 아니라 전략적 메시지다. UAE는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국’에만 이런 형식의 영접을 제공해 왔다. 한국이 중동 지역에서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음을 UAE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은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며 장기적 협력 비전을 제시했다. 협력 분야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에너지. 기존 원전 운영 협력에서 재생에너지·수소·스마트 그리드로 확장된다. 둘째, 방산. 판매 중심 구조에서 공동개발·제3국 진출 모델까지 확대된다. 셋째, 반도체·AI. UAE의 산업 전환 전략에 한국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대형 투자가 논의되고 있다. 넷째, 보건·교육·문화. 이재명 대통령은 현지 청년층을 만나 한류 기반 교류를 강화할 의지를 밝혔다. 이러한 종합 협력은 기존 단일 품목 수출에서 벗어나, 산업 생태계 전체를 연결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번 방문에서 두드러진 점은 경제계 핵심 인사들이 다수 동행했다는 사실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논의 테이블에 국내 산업계 수장이 함께했다는 것은 정책과 기업 활동을 한 선으로 묶는 전략을 의미한다. 미국 중심 수출 구조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기업들도 직접 체감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중동 협력은 기업에게 곧 실적과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지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인 간담회에서 한국 기업의 글로벌 확장을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기업인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의 UAE 전략은 현재의 관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임시 방편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세계 경제가 다극화되는 흐름 속에서 중동이 새로운 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을 것으로 분석했다. 에너지 자본을 바탕으로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이 보유한 기술, 생산능력, 프로젝트 수행 경험이 맞물릴 수 있는 최적의 시장이라는 판단이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경쟁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에너지 안정 확보는 안보이자 경제이며, 반도체·AI 협력은 미래 기술 패권 확보의 관건이다.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만큼 현실적 과제도 있다. 중동 시장은 계약 성사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현지 규제·정치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조건 없는 대규모 투자 유치보다, 사업 타당성과 기술 경쟁력, 그리고 장기 협력 기반을 함께 고려하는 전략을 기본으로 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백년 동행 메시지는 투자 기반 외에 신뢰 기반이 함께 쌓여야 한다는 판단을 내포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 계약 성과보다는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우선한다는 의미다.
관세 위기 국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UAE에서 보여준 행보는 한국 외교경제 전략이 세 가지 점에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첫째, 미국 중심 대응에서 한국 주도 전략으로 전환했다. 둘째, 수출 확대 중심 구조에서 산업 생태계 확장 전략으로 이동했다. 셋째, 안보·에너지·기술·문화가 결합한 종합 외교 전략을 가동했다. 관세 협상이라는 통상 이슈가 외교 전체 방향을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고, 중동은 이를 실천하는 첫 무대가 되었다. 한국이 스스로 움직이며 판을 넓히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다음 행선지는 이집트와 남아공 G20 무대다. 이 흐름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일정은 미리 짜인 퍼즐처럼 이어지고 있다. 관세와 공급망 리스크를 해결하고, 중동에서 경제·안보 기반을 구축한 뒤, 다자무대에서 국제적 역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서다. 이번 UAE 방문은 그 첫 단추가 꿰어진 순간이다. 세계 경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스스로 설계하려는 전략이 공식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한국 외교는 더 이상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국가가 아니라, 국익을 기준으로 기회를 찾아 움직이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관세 위기를 넘긴 한국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아부다비에서 던진 백년 동행이라는 문장은 말의 장식이 아니라, 한국이 선택한 경제 안보 복합 전략의 선언이다. 한국 외교가 미국이라는 단일 축에만 기대지 않고, 중동이라는 두 번째 축을 구축하는 순간, 한국 경제는 위기에서 기회로 이동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관세 협상의 끝에서 찾은 길은 바로 중동이었다. 한국 경제의 다음 장은 지금, 아부다비에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