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RENDY③] 나일강의 기적을 향한 외교 서사, 이집트에서 새로 쓰다

중동 평화와 교육·문화 외교로 확장한 한국의 전략,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가치와 서사’

2025-11-23     최기형 기자

 

[KtN 최기형기자]한국 정부는 UAE 방문 직후 이집트로 향하며 이번 순방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 UAE에서 실물 기반 경제·기술 협력이 단단히 다져졌다면, 이집트에서는 서사와 가치, 평화 외교와 교육·문화 협력이라는 또 다른 축을 세우기 위한 외교가 펼쳐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가자와 홍해 지역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동 평화의 촉진자 역할을 강조했고, 이집트를 지역 안정의 중심축으로 규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카이로대 연설과 알 아흐람 기고문을 통해 양국 협력의 핵심을 명확하게 구조화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나일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연결하는 서사다. 한국은 전후 잿더미에서 첨단 산업 강국으로 성장했고, 이집트는 아프리카와 아랍을 잇는 문명·교역의 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연결점을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제시했다.

이재명대통령. 사진=대통령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카이로대 연설에서 발표된 한국판 중동 협력 전략은 ‘SHINE’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SHINE은 안보 안정(Stability), 사회 조화(Harmony), 혁신(Innovation), 인적 네트워크(Network), 교육(Education)의 앞 글자를 조합한 개념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 개념을 통해 한국과 이집트의 협력 목표를 단순한 경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역 평화, 인재 양성, 문화 교류, 기술 혁신까지 확장하겠다는 방향을 드러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분쟁과 홍해 해상 안보 위협은 중동 국가들에게 직접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인도적 지원의 주요 경로이자 역내 중재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외교적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한반도 전쟁을 겪은 국가로서 중동의 평화와 안정에 진정성을 갖고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제 협력도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 한국 정부와 이집트 정부는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체결을 위한 공동연구 논의를 정식으로 언급했다. CEPA는 자유무역협정보다 폭이 넓고, 산업·투자·서비스·문화 분야까지 다루기 때문에 경제협력의 규범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의 북아프리카 시장 진출, 이집트의 기술 도입과 인프라 확장이라는 상호 이익의 고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 회원국이기 때문에 한국산 제품과 기술이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된다. 한국 정부는 UAE에서 마련한 실물경제 기반을 이집트에서 확장하여,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대륙 회랑 전략을 마련한 셈이다.

문화·교육 외교는 이번 이집트 일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카이로대에서 청년들과 직접 만났고, 이집트 정부와 교육 협력 양해를 통해 교환학생 및 학술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집트 청년들은 한국 콘텐츠와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한류는 이미 이 지역 청년층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프로그램화해 양국 청년 교류를 제도화하려 한다. 중동 지역에서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은 경제 외교를 지원하는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작동한다. 한국 정부는 소프트파워 확장을 통해 국익 확보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김혜경 여사, 이집트 인티사르 여사와의 친교 행사. 사진=대통령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집트 일정에는 여성·문화 협력도 포함됐다. 영부인 일정으로 마련된 여사 간 친교 행사는 전통과 현대 문화가 만나는 장이었다. 이는 외교의 거칠고 전략적인 메시지 사이에서 신뢰를 다지는 역할을 한다. 한국과 이집트는 문화유산 보존, 관광 협력, 창작 산업 개발 등에서 구체적 과제를 논의했다. 이러한 협력은 물적 협력 못지않게 장기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문화적 유대는 경제 위기나 정세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집트 일정의 또 다른 특징은 ‘평화 외교’를 규범화한 대목이다. 한국은 한반도 긴장 속에서 평화의 가치를 국가 전략으로 삼아왔고, 이재명 정부는 이를 중동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에서 한반도 평화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이제는 평화를 제안하고 중재할 수 있는 국가로 위치를 바꿔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의 이집트 행보는 UAE 방문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UAE에서는 경제·안보 기반을 구축했고, 이집트에서는 가치·문화·평화 기반을 제시했다. 이 두 국가는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한 축은 경제·기술, 한 축은 문명·사상으로 연결된 구조다. 이재명 정부는 이 두 축을 결합해 중동 외교전략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중동의 미래가 에너지 자원에서 기술과 인재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고려하면, 경제·문화·안보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 외교는 필수적이다.

이번 이집트 방문은 향후 한국 외교의 확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시험할 첫 현장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이집트의 ‘비전 2030’ 전략을 지원하고, 디지털 전환 분야에서 동반 성장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의 K-스마트시티 경험, 의료 기술, 친환경 인프라 역량은 이집트의 국가 프로젝트 추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흐름은 실질 계약과 제도적 합의가 따라붙을 때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중동 외교경제 전략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설득력이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 성과를 목표로 삼는 동시에, 왜 한국이 중동과 함께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제시했다. 한강과 나일강을 연결한 서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설득 도구다. 한국은 경험을 갖고 있고, 이집트는 무대를 가지고 있다. 두 나라가 함께 그리는 비전은 지역 안정과 인재 양성, 경제 번영에 기여하는 목표를 향한다.

이번 이집트 방문까지 포함한 중동 일정은 한국 외교가 관세 위기 대응 단계를 넘어, 새로운 외교경제 질서를 설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일강의 도시 카이로에서 선택한 메시지는 단호했다. 한국은 누구의 뒷무대에 서지 않고 스스로 무대를 만든다. 한국 외교는 더 이상 조건에 반응하는 국가 전략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전략이 되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남아공에서 열리는 G20 회의와 MIKTA 정상회의를 통해 다자 외교의 무대로 이동한다. 한국이 중동에서 만들어낸 실물 기반과 서사 기반을 국제적 틀 속에서 연결하려 한다. 중동에서 시작된 한국 외교의 확장은 아프리카, 유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집트 일정은 바로 그 다음 장을 여는 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중동에서 말로만 외교를 하는 국가가 아닌, 경제·문화·평화의 종합 전략을 실천하는 국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끝나는 지점에서 중동 순방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다. 위기를 넘어선 자리에서 한국 외교는 새로운 서사를 쌓고 있다. 카이로의 하늘 아래에서 울린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단지 행사 발언이 아니라, 세계 속 새로운 한국의 위치를 정의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