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품은 배우 이순재 별세, 한국 방송 70년과 함께한 연기의 거장...향년 91세

대배우 이순재 91세 별세, 후배가 증언한 마지막까지의 열정 사랑이 뭐길래의 아버지, '리어왕'의 왕…불꽃 연기 남기고 떠난 이순재 ‘국민배우’ 이순재 타계—방송·연극계가 잃은 큰 별

2025-11-25     신미희 기자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 한국 방송 70년과 함께한 연기의 거장...향년 91세  사진=2025 11.25 KBS 연기대상’ 페이스북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  연기로 시대를 품은 어른, 마지막까지 무대 위에 살다

대한민국 연기의 품격을 세우고 한 시대의 정신을 전해온 국민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영면했다. 향년 91세.
평생을 연기에 바치며 대중의 마음 속 깊이 자리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기자라는 이름을 품고 있었다. 오랜 활동 속에서도 “배우에게 은퇴는 없다”는 그의 소신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 신념은 숨이 닿는 곳까지 이어졌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과 혼돈의 시대를 지나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연기를 처음 만나던 순간, 그는 삶의 방향을 바로 알아보았다. 철학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 한 편의 연극과 영화가 그의 길을 결정했고, 마침내 1956년 연극 무대를 통해 관객 앞에 섰다.
그리고 1960년대, TV가 걸음마를 떼던 한국 방송의 시작과 함께 그는 카메라 앞에 섰고, 드라마가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전 과정에 동행했다.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 한국 방송 70년과 함께한 연기의 거장...향년 91세  사진=2025 11.25  ‘사랑이 뭐길래’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70여 년 동안 14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한 그의 연기 속에는 늘 삶이 담겨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 속 다정한 아버지로, ‘허준’과 ‘이산’ 속 믿음직한 어른으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다시금 이런 말이 나오게 했다.
“아, 이순재는 시대를 넘어 매번 우리 곁에 있었다.”

사극과 현대극, 드라마와 시트콤을 오가며 그는 언제나 각 시대의 정서를 품었고,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그려냈다. 어떤 역할에서도 과장 없이 자연스러운 숨을 불어넣는 것이 그의 재능이자 철학이었다.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 한국 방송 70년과 함께한 연기의 거장...향년 91세  사진=2025 11.25  ‘사진 연우무대·에이티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하지만 그의 진짜 고향은 무대였다.
“연극은 배우에게 뿌리 같은 곳”이라 말하곤 했던 그는, 구순을 앞두고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선택했다. 200분을 넘는 공연을 단독으로 책임지며, ‘노장’이라는 말 대신 ‘거장’이라는 찬사가 더 어울리는 순간을 남겼다.
그 무대 위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증명해냈고, 관객은 오래도록 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 한국 방송 70년과 함께한 연기의 거장...향년 91세  사진=2025 11.25  ‘사진 연우무대·에이티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순재는 연기를 통해 배운 것을 후배에게 기꺼이 나누는 스승이기도 했다. 대학 강단에 올라 연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배우는 우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연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몸으로 가르쳤다. 촬영장에서도 늘 먼저 도착해 후배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이순재, 건강 문제로 연극 전 회차 취소… "3개월 휴식 권고" 사진=2024.10.18  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잠시 국회에 몸담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늘 “나는 본업이 배우인 사람”이라 말하며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그에게 있어 연기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는 연기는 곧 사회와 소통하는 언어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었다.

건강이 악화된 뒤에도 그는 연기를 멈추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 대사를 읽고, 캐릭터를 연구하며, 언제든 무대로 돌아갈 준비를 이어가던 사람.
가치 있는 예술을 지키기 위해 사적 욕망을 경계하며 “내게 빌딩 한 채 없지만, 연기로 충분하다”고 웃던 사람.
그런 이순재에게 무대는 삶의 전부였고, 대중은 그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영원한 현역' 이순재 별세, 한국 방송 70년과 함께한 연기의 거장...향년 91세  사진=2025 11.25  ‘사진 연우무대·에이티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그가 떠난 오늘, 관객들은 한 배우를 잃은 것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와 연극의 살아 있는 역사 한 장을 접어 올려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TV 속 따뜻한 아버지의 미소,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던 눈빛, 배우를 향한 그 끝없는 열정은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생생히 숨 쉬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의 큰 별, 이순재.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선생님, 그 오랜 여정 뒤에 이제 부디 평안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