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클릭의 시대에 다시 묻는 영화의 본질

석류의 빛깔이 보여준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세계가 분열될수록 예술이 향해야 할 자리

2025-11-30     임우경 기자
석류의 빛깔 The Color of Pomegranates Սայեաթ-Նովայ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Sergei Parajanov. 사진=스틸 컷,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1969년에 완성된 석류의 빛깔이 2025년 한국 극장에서 다시 숨을 얻었다. 반세기 동안 검열과 유실, 오해와 침묵 속에 놓여 있던 필름이 4K 복원이라는 과정을 거쳐 스크린으로 돌아와 관객을 만나는 장면에는 단순한 재개봉 이상의 의미가 겹겹이 쌓여 있다. 상업 영화와 스트리밍 플랫폼이 선택을 압도하는 시대에, 이미지와 상징만으로 전개되는 난해한 예술 영화가 예매율 상위권에 올랐다는 사실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극장 로비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불이 꺼진 순간, 관객이 마주한 것은 지난 세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와 맞닿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영화는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향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질문이라는 형식의 문장은 아니어도 석류의 빛깔 전체가 관객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감독은 석류의 빛깔에서 줄거리와 설명을 거의 제거한 채 화면 전체를 하나의 시로 구성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사랑과 추방, 수도원과 죽음에 이르는 사야트 노바의 생애가 서사적 연속성보다 이미지의 연결로 제시된다. 석류가 갈라지며 흰 천 위로 붉은 즙이 번지는 장면은 대사 한 줄 없이 생명과 피, 창조와 파괴의 은유를 동시에 품는다. 포도가 발 아래에서 무자비하게 짓이겨질 때 관객은 쾌락과 고통, 축제와 폭력의 감정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목이 잘린 흰 닭이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장면은 죽음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기억을 시각화한다. 파라자노프 감독은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도 프레임 속 사물과 인물의 배치를 통해 감정의 파동을 증폭시킨다. 언어는 뒤로 물러나고 이미지가 전면에 선다. 영화가 말보다 먼저 감각에 닿는 매체라는 사실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석류의 빛깔 The Color of Pomegranates Սայեաթ-Նովայ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Sergei Parajanov. 사진=스틸 컷,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파라자노프 감독의 선택은 미학적 실험에만 머물지 않았다. 제작 당시 구소련 당국은 아르메니아라는 주변부 민족의 정체성과 독자적 종교성을 전면에 내세운 표현을 불편해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요구한 균질한 인간상과 명료한 이데올로기 서사 대신, 파라자노프 감독은 민족적 상징과 종교적 의식을 화면 가득 펼쳐 놓았다. 다양한 민족과 언어, 종교가 공존했던 코카서스의 복합 정체성은 정형화된 국가 정체성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파라자노프 감독은 투옥과 검열을 감내해야 했고, 영화는 제대로 상영되지 못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의 운명 속에는 하나의 진실이 포함된다. 영화는 사실만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지워지려는 기억을 지키는 행위다. 특정 국가와 체제가 감추고 싶었던 역사와 정체성을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기록한다.

현재 유럽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는 다시 정체성의 경계가 짙어지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경제 위기와 난민 문제, 글로벌 불평등이 겹치면서 극우 정치 세력은 민족과 국가, 전통 문화의 이름으로 폐쇄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국경은 물리적 장벽을 의미하는 수준을 넘어 문화적 장벽과 정서적 장벽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의 유산과 문화는 종종 자기만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도구로 소환된다. 문화 유산과 복원 작업은 한편으로는 소중한 기억의 회복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타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상징 자원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전통과 민족을 내세운 담론이 배제와 혐오의 언어로 변질되는 과정은 이미 여러 곳에서 현실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석류의 빛깔이 상영되는 장면은 단순한 예술 행사 범위를 넘어선다. 아르메니아라는 주변부의 문화와 언어, 종교와 예술이 스크린 한가운데 자리 잡는 순간, 관객은 세계 지도의 중심이 어디인지 다시 점검하게 된다. 파라자노프 감독이 구축한 이미지는 단일한 민족주의 선언이 아니다. 석류와 포도, 수도원과 직물, 민속 의상과 종교 의례가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면서 복합적 정체성이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폐쇄적 정체성을 전제로 하는 극우 문화 정치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다. 기억과 정체성을 다루되 혼종성과 상호성을 긍정하는 태도, 억압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로 기울어지지 않는 태도가 석류의 빛깔 속에 깃들어 있다.

석류의 빛깔 The Color of Pomegranates Սայեաթ-Նովայ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Sergei Parajanov. 사진=스틸 컷,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세계 영화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된 복원 과정 또한 의미심장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끄는 복원 작업은 단순히 과거의 명작을 수집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잊히거나 조용히 사라져가는 영화들을 다시 세계의 공용 기억 안으로 편입하는 시도다. 이는 단일한 영화사 서술에 균열을 내고, 주변부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유럽의 극우 문화 정치는 합법성과 제도성을 기반으로 특정 정체성을 상징화하고 이를 중심에 놓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복원이라는 행위는 주변부에 있던 정체성과 예술을 다시 현재의 시간 속으로 불러오는 작업이다. 이 두 가지 흐름의 방향은 정반대에 가깝다. 하나의 권력은 기억을 소유하려 하고, 다른 하나의 힘은 기억을 공유하려 한다.

한국 관객이 석류의 빛깔에 반응한 양상을 살펴보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흐릿하지 않게 드러난다. 젊은 관객과 창작자, 인문·예술 분야 종사자는 이 작품을 단순한 고전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미학적 실험, 민족 정체성, 종교적 상징, 검열의 역사까지 작품을 둘러싼 여러 층위를 한꺼번에 탐색한다. 관객은 리뷰와 에세이, SNS 포스트와 GV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해석을 생성하고 공유한다. 서양의 거장들이 남긴 평가, 파라자노프 감독의 삶, 아르메니아의 역사까지 맥락을 스스로 찾아 읽는 방식으로 감상을 확장한다. 영화는 다시 토론의 장을 여는 텍스트가 되고, 관객은 소비자를 넘어 해석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관객의 태도는 영화의 본질에 대한 또 다른 정의로 이어진다. 영화는 제작자의 창작물인 동시에 관객의 기억 속에서 다시 쓰이는 텍스트다. 스크린 위에 투사된 것은 촬영 당시의 현실과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관객이 마주하는 순간 새로운 현실이 된다. 영화가 기록한 과거의 이미지가 현재의 관객 의식과 결합할 때, 작품은 한 번 더 완성된다. 석류의 빛깔이 1969년이 아닌 2025년 한국에서 새롭게 읽히는 상황이 그 대표적 사례다. 당시 아르메니아의 억압과 검열은 지금의 유럽에서 벌어지는 문화 전쟁과 겹쳐지고, 소수 문화의 생존은 다문화 사회 전체의 과제로 확장된다.

석류의 빛깔 The Color of Pomegranates Սայեաթ-Նովայ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Sergei Parajanov. 사진=스틸 컷,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의 본질을 다시 말하자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기억과 정체성을 운반하는 예술이다. 필름과 디지털 파일에 새겨진 것은 빛과 그림자의 조합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공기와 억압, 희망과 두려움의 집합이다. 석류의 빛깔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이미지의 언어로 정리한다. 스토리텔링의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이미지들, 서사의 앞뒤가 맞지 않아도 괜찮은 구조, 보는 동안 이해되지 않아도 강렬하게 각인되는 장면들이 영화가 가진 고유한 영역을 드러낸다. 서사에 집중하는 영화가 감정의 일관성을 제공한다면, 파라자노프 감독의 영화는 감각과 기억의 깊이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극장이 다시 예술의 신전으로 기능할 때 영화는 단순한 여가 활동 이상의 위치를 차지한다. 관객은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가벼운 웃음을 찾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과 정체성의 기반을 묻는 작품을 찾기도 한다. 석류의 빛깔이 보여준 것은 후자의 가능성이다. 극장은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고, 스크린은 지워지는 존재를 다시 불러낸다. 복원된 필름과 현재의 관객이 만나는 그 순간, 영화라는 매체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드러낸다.

영화라는 예술은 기록과 기억, 저항과 연대가 뒤섞인 하나의 장치다. 스토리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권력이 지우려 한 얼굴을 다시 빛 속으로 끌어올리고,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목소리를 중앙으로 초대하는 장치다. 석류의 빛깔이 다시 상영되는 장면은 세계 곳곳에서 강화되는 폐쇄적 정체성과 배타적 문화 정치에 대한 한 편의 대답이 된다. 관객이 그 대답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관객의 선택이야말로 영화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마지막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