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르포①] 공허와 순수의 경계에서 생성된 질감
Pearl & Void가 보여준 2026년식 색채 감각의 현실성
[KtN 박준식기자]2025년 김포대학교(박진영 총장) 뷰티아트과 캡스톤 디자인 성과공유회에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1팀 Pearl & Void는 단순한 미감 실험을 넘어 색채·질감·오브제 구조를 기반으로 한 조형적 탐색을 시도했다. 팀을 구성한 김호영과 신정원은 진주가 갖는 ‘형성의 시간’과 공허가 지닌 ‘미정의 공간성’을 대비시키며, 차갑고 절제된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공 네 파트의 수행 능력을 구조적으로 배치했다. 작품은 실버와 화이트를 기반으로 하되 명도 대비와 질감 변화를 극도로 제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극단적 절제는 표현의 폭을 좁히는 대신, 미세한 차이로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 뷰티 작업이 과장된 색채와 다중적인 텍스처를 혼합해 강렬함을 추구하는 흐름과 비교하면, 1팀의 방식은 오히려 ‘제거’를 통한 구축에 가깝다.
최근 발표된 팬톤 2026 색채 전망은 시대 전반에 흐르는 양가적 정서를 반영하며, 감정적 안정과 정돈된 색채 표현을 주요 흐름으로 제시한다. 팬톤은 복잡한 사회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찾는 ‘정서적 중립지대’를 강조하고 있는데, Pearl & Void가 선택한 색채 구성은 이 분석과 유사한 방향성을 가진다. 팬톤의 전망은 색채가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는데, 작품은 그 인식이 실제 창작물에 적용될 때 어떤 형식적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WGSN이 제시한 2026 올해의 컬러 트랜스포머티브 틸 또한 심리적 회복과 균형을 핵심으로 삼는다. 해당 컬러는 청록 계열의 조용한 에너지로 설명되며, 기술 기반 환경과 자연 기반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색채로 규정된다. Pearl & Void는 이 컬러 스펙트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유사한 시대 진단을 다른 색조로 번역한 시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트랜스포머티브 틸이 ‘회복을 향한 색채적 전환’을 이야기한다면, Pearl & Void의 실버·화이트는 그 회복 이전의 단단한 정서 상태, 혹은 감정이 정리되기 전의 정적을 상징한다.
트렌드코리아 2026의 HORSE POWER 분석에서 제시된 ‘픽셀라이프’, ‘필코노미’, ‘근본이즘’ 흐름은 작품의 해석을 보조하는 구조적 배경이 된다. 픽셀라이프는 작은 단위의 경험이 모여 삶의 밀도를 구성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네일과 피부미용 파트에서 나타나는 미세 단위의 질감 해석과 닮아 있다. 필코노미는 소비가 기능보다 감정 경험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뜻하는데, 진주 특유의 반사광이 남기는 잔상은 사용자 경험을 넘어 관람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근본이즘은 복잡한 흐름 속에서 전통적 구조나 단순함으로 회귀하는 태도인데, 실버·화이트의 제한된 색채 구성과 절제된 형태는 이러한 흐름을 조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작품의 구조를 이루는 첫 번째 축은 헤어이다. 신정원은 실루엣을 단순한 장식 차원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통합하는 골격으로 설정했다. 헤어의 선과 윤곽은 진주가 가진 단단한 외피 구조와 연결되며, 공허를 상징하는 공간적 여백을 중심에 두었다. 헤어가 시각적 중심축이 되는 이유는 관람자의 첫 접점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과한 부피감이나 장식이 아닌, 정제된 선으로 구축한 형태는 작품의 개념적 기반을 명확하게 한다.
메이크업은 형태의 강조보다 감정의 명도 조절에 가깝다. 김호영은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해 관람자의 스스로 해석할 여백을 남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눈 주변의 얇은 광택과 반사 패턴은 진주의 빛을 번역하되, 전체 메이크업의 개입을 제한했다. 이는 메이크업이 작품의 주제보다 앞서지 않도록 조정한 전략이었으며, 절제된 구조는 오히려 관람자의 집중을 높이는 효과를 만들었다. 메이크업의 역할이 ‘표현의 중심’이 아니라 ‘감정의 조율’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가 가능하다.
네일에서는 작품의 미세 단위 조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3D 젤을 이용해 질감을 중첩시키고 반사율을 조절해 진주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기적 표면을 구현했다. 표면의 번짐, 결정의 층위, 투명 재료와 불투명 재료의 조합은 손끝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수행된 고밀도 실험이었다. 작은 단위의 조형적 선택들이 작품 개념의 신뢰도를 높였으며, 손톱이라는 좁은 무대에서 높은 정확도로 수행된 점은 직업적 역량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피부미용 파트는 작품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공간적 구조를 맡았다. 오브제와 세트스타일링을 피부미용 전공에서 제작했다는 사실은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부미용 전공이 다루는 영역이 단순히 피부 표현에 국한되지 않고, 질감·물성·표면 구조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조형적 확장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금속성 표면, 유리의 투명함, 진주의 확산되는 빛을 결합한 조형물은 공허와 순수의 대비를 공간적으로 번역한 결과물이었다. 검은 패브릭과 실버 오브제가 구성하는 명암 대비는 작품 전체의 기조를 선명하게 만들었고, 방향성을 잃기 쉬운 단색 구성에서 질감의 층위를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네 파트의 협업은 전공별 기능의 병렬적 결합이 아니라 동일한 개념을 네 개의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 구조는 학생 개개인의 기량보다 ‘전공 간 해석의 일관성’을 중심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각 전공이 가진 기술적 강점과 표현 방식의 차이가 전면에 드러나는 대신, 진주와 공허라는 기반 개념 안에서 조율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협업 설계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색채의 극단적 절제를 택한 작업이 갖는 장점은 관람자가 의미를 해석할 여백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작품은 ‘결핍’을 통해 구조를 만든다. 화려한 장식이나 다층적 색채가 없다 보니 표현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은 좁지만, 그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선택은 더욱 엄격해진다. 학생들은 이 제한의 구조를 불리한 조건이 아닌 조형적 실험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절제는 표현의 축소가 아니라 표현의 집중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증명했다.
Pearl & Void는 단순한 미적 기호가 아니라 2026년을 앞두고 변화하는 감정 구조와 색채 감각을 반영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기술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는 시기에는 시각문화가 ‘정리된 감정 상태’를 향한 움직임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실버·화이트의 조용한 조합과 제한된 질감 구조는 이러한 시대적 감각을 반영한다. 회복을 추구하는 흐름이 곧바로 밝고 화려한 표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차분한 표면이 더 큰 정서적 설득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대신 구조적인 차원에서 관람자의 사고를 천천히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투박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감정의 미세한 흔적을 찾아내는 방식이며,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이 얼마나 세밀한 관찰을 기반으로 작업을 수행했는지 드러난다. Pearl & Void는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작품이다. 차갑고 조용한 표면 아래에서 조형적 판단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구조 자체가 메시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학생들이 향후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색채와 질감을 다룰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실무에서는 화려한 결과물만큼 정제된 조형 감각이 요구되며, 표현의 확장보다 제한 속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Pearl & Void는 바로 그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작품의 외형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단순함을 유지하기 위한 조형적 결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전체 구조가 흩어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장기적인 작업 습관과 관찰 방식도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Pearl & Void는 과도한 의미나 장식을 배제한 채 조형적 긴장감과 질감 실험을 중심으로 구성된 작업이다. 기술적 성취에 대한 과장 없이, 색채와 질감의 제한 속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차분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단순히 미학 실험으로 끝나지 않고, 2026년을 둘러싼 색채 담론·소비 정서·감정 구조 변화와도 연결되며, 학생 작업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