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EO 인사이트②] AI는 비용 절감 도구를 넘어 성장 장치가 됐다
글로벌 CEO 84%가 AI를 선택한 이유
[KtN 정석헌기자]글로벌 CEO들이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한 단계를 넘어섰다. 과거의 인공지능은 자동화와 효율화의 도구였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비용을 낮추며, 운영의 마찰을 제거하는 기술로 인식됐다. 그러나 2026년을 향한 경영 환경에서 인공지능은 더 이상 ‘보조 수단’으로 머물지 않는다. 딜로이트 글로벌 CEO 서베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84%는 인공지능을 매출 성장과 직결되는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64%는 인공지능을 통해 투자 대비 수익률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인공지능이 비용 구조의 바깥으로 이동해, 성장 구조의 내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관세 정책과 지정학적 리스크,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기업이 외부 환경에 기대 성장 전략을 설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상황에서 CEO들이 선택한 방향은 명확하다. 외부 변수에 대한 예측보다 내부 통제 가능 영역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인공지능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핵심 프로세스, 자원 배분, 인재 전략, 장기적 비전 수립까지 인공지능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CEO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주목할 변화는 인공지능 도입의 목적이 비용 절감에서 가치 창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CEO들이 인공지능 도입 효과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표는 여전히 운영 효율성과 비용 절감이지만, 동시에 매출 증가와 고객 충성도 개선을 주요 성과 지표로 인식하는 비중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단기적인 재무 성과 개선을 넘어, 기업의 성장 곡선을 다시 설계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영역은 명확하다. 핵심 프로세스와 자원 할당이다. CEO들은 인공지능이 조직의 판단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경험과 직관, 조직 관행에 의존했던 의사 결정 과정이 데이터 기반 시뮬레이션과 예측 모델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의사 결정의 속도뿐 아니라, 결정의 질 자체를 바꾸는 변화다. 전략은 더 이상 정적인 계획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정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둘러싼 낙관론은 무조건적이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CEO들이 인공지능 도입의 위험 요소를 매우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불확실성, 데이터 거버넌스 문제, 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인공지능 확산의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조직 구조 변화에 대한 우려는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인공지능 도입이 기존 조직 체계와 충돌할 가능성, 인재 관리의 복잡성이 증가할 가능성은 CEO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리스크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의 인공지능 투자 전략은 단순한 기술 확산이 아니라 단계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규제 준수와 데이터 관리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 인프라와 플랫폼 개발을 통해 본격적인 가치 창출 단계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는 인공지능을 빠르게 도입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가깝다. 속도보다 신뢰를 먼저 확보하겠다는 선택이다.
인공지능 도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이 마케팅, 영업, 고객 서비스라는 점도 이러한 전략적 판단과 연결된다. 이 영역은 비교적 규제 부담이 낮고, 성과가 빠르게 가시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콘텐츠 생성, 고객 응대 자동화, 개인화 추천 시스템은 이미 많은 기업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반면 인사, 재무, 법무 영역에서는 도입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정확성과 윤리, 책임 문제가 동시에 요구되는 영역일수록 인공지능 확산에 신중한 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 전략의 본질이 드러난다. 인공지능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경영 문제다. 어떤 영역에 먼저 적용할 것인가, 어느 수준까지 자동화할 것인가, 인간의 판단은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모두 경영 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글로벌 CEO들이 인공지능을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은 단독으로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조직 구조, 인재 전략, 의사 결정 문화와 결합될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한국 기업과 국내 CEO들이 보여주는 인공지능에 대한 태도는 이러한 흐름과 높은 정합성을 보인다. 국내 CEO들은 글로벌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핵심 투자 영역으로 꼽고 있으며, 단기적 효율 개선과 중장기적 공급망 가시성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을 비용 관리 수단이 아니라 경영 체질 개선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6년을 향한 인공지능 논의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다. 인공지능을 통해 무엇을 통제하고, 무엇을 변화시키며, 무엇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글로벌 CEO들이 인공지능을 성장 장치로 규정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용을 줄이는 기술은 많다. 그러나 성장의 방향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도구는 많지 않다. 인공지능은 이제 그 드문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