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EO 인사이트③]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구조가 바뀌었다

CEO들이 다시 정의한 위험의 우선순위

2025-12-16     정석헌 기자
불확실성 이후의 세계, AI는 성장의 해답이 될 수 있는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정석헌기자]2026년을 향한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위기’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위기의 성격은 분명히 달라졌다. 글로벌 CEO들이 체감하는 위험은 더 이상 돌발적 사건이나 단기 충격에 머물지 않는다. 위험은 구조로 이동했고, 관리의 대상이 됐다. 딜로이트 글로벌 CEO 서베이가 보여주는 핵심 변화는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위험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 리스크,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불안정은 여전히 기업 운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기 리스크로 꼽힌다. 사이버 리스크와 인플레이션을 최우선 위험으로 인식한 CEO 비중은 각각 48%에 달한다. 지정학적 불안정 역시 41%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다만 주목할 부분은 단기 위험에 대한 공포가 경영 판단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글로벌 CEO들의 시선은 중장기 위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요구, 공급망 붕괴 가능성, 금융 및 시장 불안정과 같은 구조적 리스크가 향후 3년 동안 더 강화될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기업들이 일회성 사건보다 산업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에 더 큰 경계심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험의 초점이 사건 중심에서 체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경제 환경의 성격과도 맞물린다. 관세 정책, 통상 질서의 변화, 지정학적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낮다. 글로벌 CEO들은 이를 ‘관리 불가능한 외부 변수’로 인식하기보다, 장기적으로 공존해야 할 환경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인식 전환이 리스크 대응 전략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의 위기 국면에서는 비용 절감과 투자 축소가 가장 먼저 선택됐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는 대응 방향은 다르다. 공급망 재설계, 비용 구조 혁신, 기술 도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는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방어 전략이 아니라, 위험을 전제로 성장 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위험이 상수로 인식되면서, 대응 방식 역시 구조화되고 있다.

특히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인식 변화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글로벌 CEO들은 공급망 붕괴와 혼란을 중장기적으로 강화될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동시에 공급망 다변화와 운영 현지화를 가장 중요한 대응 전략으로 선택했다. 이는 공급망을 단순한 물류 네트워크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급망은 더 이상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 탄력성을 결정하는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이버 리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사이버 위협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가장 중대한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사이버 리스크에 대한 접근 방식은 공포나 회피가 아니다. 글로벌 CEO들은 사이버 보안과 데이터 보호를 핵심 투자 영역으로 설정하며, 이를 경영 인프라의 일부로 편입하고 있다. 이는 보안 사고를 막기 위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디지털 기반 경영을 지속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구축하는 과정에 가깝다.

인플레이션과 비용 압박에 대한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가격 인상을 통해 비용을 전가하는 전략은 여전히 검토 대상이지만, 다수의 기업은 내부 비용 구조 개선을 우선 선택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변수로 보지 않고, 장기적 경영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용 관리는 단기 대응이 아니라 구조 혁신의 출발점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부분은 위험 관리가 더 이상 특정 부서의 역할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정학적 리스크, 금융 불안정, 지속가능성 요구는 전략, 운영, 인재 관리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리스크 관리는 경영 의사 결정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CEO들이 리스크를 전략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기업과 국내 CEO들이 보여주는 인식 역시 이러한 글로벌 흐름과 높은 정합성을 보인다. 국내 CEO들은 사이버 위협을 최우선 리스크로 인식하는 동시에, 향후 3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금융·공급망 리스크의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이는 단기 충격보다 구조적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공급망 다변화와 비용 구조 개선을 핵심 대응 전략으로 선택한 점은 위험을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결국 2026년을 향한 경영 환경에서 리스크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관리와 설계의 대상이다. 글로벌 CEO들이 보여주는 태도 변화는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상수가 된 환경에서, 이를 전제로 경영 구조를 재편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에 가깝다.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기업의 성과를 가르는 기준은 위험의 유무가 아니라 위험을 다루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경영의 언어를 바꾸고 있다. 위기는 더 이상 예외 상황이 아니다. 지속되는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가장 낙관적인 기업이 아니라, 가장 구조적으로 준비된 기업이다. 글로벌 CEO들이 다시 위험을 정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경쟁력은 예측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