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확실성의 시대, CEO들은 이미 답을 선택했다
글로벌 CEO들이 공유한 하나의 판단
[KtN 정석헌기자]2026년을 앞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은 하나다. 불확실성은 더 이상 일시적 변수가 아니다. 경영의 전제가 됐다. 딜로이트 글로벌 CEO 서베이가 보여주는 변화는 위기 인식의 완화가 아니라, 위기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다. 글로벌 CEO들은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위에서 작동하는 경영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글로벌 경제에 대한 낙관 전망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이 수치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같은 조사에서 미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비중은 여전히 높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 역시 해소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 성장에 대한 낙관론이 더 빠르게 개선된 점은 의미가 분명하다.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부 구조에 대한 신뢰가 경영 판단의 기준으로 이동했다는 신호다.
이러한 변화는 성장 전략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가격 인상이나 시장 확대는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다. 글로벌 CEO 다수는 비용 구조 관리와 공급망 재설계를 핵심 전략으로 선택했다. 이는 방어적 선택이 아니다. 외부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제 가능한 영역을 정교하게 설계하겠다는 판단에 가깝다. 성장의 전제는 수요가 아니라 구조가 됐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 변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CEO들은 인공지능을 비용 절감 도구로만 보지 않는다. 매출 성장과 자본 효율성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경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규제, 윤리, 조직 변화에 대한 부담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제라는 판단이 공유되고 있다.
이 판단은 조직 구조 논의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이 핵심 프로세스와 자원 배분, 인재 전략에 영향을 미칠수록, 기존의 부서 중심 조직은 한계를 드러낸다. 글로벌 CEO들이 민첩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조직 문화 담론이 아니라, 의사 결정 구조의 효율성 문제 때문이다. 데이터와 분석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환경에서, 과거의 승인 체계와 고정된 역할 분담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AX 조직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이상적인 미래상이 아니라, 현재 구조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실용적 선택에 가깝다. 조직을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글로벌 CEO들이 조직 전환을 동시에 논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재 전략이 다시 경영의 중심으로 이동한 배경 역시 명확하다. 글로벌 CEO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으로 성장 마인드셋과 적응력을 꼽았다. 특정 기술 숙련도보다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중시한다는 판단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없는 조직은 기술을 보유하더라도 성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에 가깝다.
마케팅과 고객 접점이 인공지능 도입의 출발점이 된 이유도 같은 선상에 있다. 고객 접점은 성과가 가장 빠르게 확인되는 영역이며, 동시에 조직 학습이 가장 효율적으로 축적되는 공간이다. 글로벌 CEO들이 이 영역을 먼저 선택한 것은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략을 검증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선택을 관통하는 공통된 판단은 단순하다.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전략은 한계를 갖는다. 대신 구조를 유연하게 만들고, 의사 결정 속도를 높이며, 조직의 학습 능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선택되고 있다. 이는 공격도 방어도 아닌, 조건 적응형 경영에 가깝다.
한국 기업과 국내 CEO들이 보여주는 흐름 역시 다르지 않다. 높은 낙관론과 동시에 비용 구조 관리, 공급망 다변화, 인공지능과 자동화 투자에 집중하는 전략은 단기 성과보다 구조적 경쟁력을 우선하겠다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성장 거점으로 인식하는 시각은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전략적 재배치를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을 향한 경영의 방향은 이미 상당 부분 정리됐다. 성장, 인공지능, 조직, 인재는 개별 의제가 아니다. 하나의 구조적 판단으로 수렴되고 있다. 기술은 속도를 높이지만, 성과를 결정하는 것은 구조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글로벌 CEO들이 공유한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더 많이 예측하기보다,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라는 판단이다.
불확실성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경영이 그 불확실성을 대하는 방식은 이미 달라졌다.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는 줄었고, 구조를 고치는 선택이 늘었다. 지금 글로벌 CEO들이 하고 있는 일은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미래에도 작동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 판단이 2026년 경영의 공통 분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