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①] 희토류 전쟁의 본질

중국의 ‘19개국 동맹’이 드러낸 공급망의 정치화

2025-12-17     김상기 기자
자원, 기술, 동맹… 세계는 왜 다시 공급망을 묶는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상기기자]중국이 희토류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에는 가격이나 물량 문제가 아니다. 외교와 산업, 안보를 하나로 묶는 방식의 재편이다. 2025년 11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출범한 ‘녹색 광물 국제 경제·무역 협력 이니셔티브’는 그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국은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자원 보유국 19개국과 광물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대상은 희토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리튬, 니켈, 코발트까지 포함한 핵심 광물 전반이다.

이번 협력체의 성격은 단순한 자원 협정이 아니다. 중국은 자본과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고 자원 보유국은 안정적인 광물 공급을 약속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채굴에서 정제, 가공에 이르는 전 과정이 중국 중심 가치사슬로 연결된다. 자원 보유국은 원자재 수출국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화의 기회를 얻고, 중국은 장기적인 공급 통제력을 확보한다. 공급망의 시작점을 장악하려는 전략이다.

이 움직임은 미국이 주도해 온 탈중국 공급망 전략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다. 미국은 호주, 일본, 한국, 유럽연합과 함께 희토류와 핵심 광물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광물안보 파트너십, 양자 협력 프레임워크, 전략 비축 확대가 동시에 가동됐다. 중국은 이 흐름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선진국 중심의 동맹에 맞서 자원 보유국 중심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소비국이 아니라 생산국을 묶는 방식이다.

중국 전략의 특징은 광물을 개별 품목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토류, 리튬, 니켈, 코발트는 각각 방산, 배터리, 에너지 전환 산업의 핵심 재료다. 중국은 이 광물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관리한다. 특정 품목에서 충격이 발생할 경우, 연쇄적으로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이는 가격 협상력을 넘어 정책 수단으로 활용 가능한 레버리지를 의미한다.

이미 중국은 희토류 정제·가공 분야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희토류 정제 물량의 대부분이 중국을 거친다. 여기에 자원 보유국 네트워크까지 결합되면, 향후 수출 통제나 물량 조절, 가격 관리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단기적 시장 변동이 아니라, 중장기 산업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단계다.

이번 동맹은 서방이 주도해 온 자원 거버넌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은 ESG, 투명성, 인권 기준을 앞세워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기준보다 생산과 투자를 우선한다. 참여국 다수는 규범보다 자본과 기술이 절실한 국가들이다. 중국의 제안은 정치적 조건을 최소화하고 산업적 실익을 전면에 내세웠다. 선택의 기준이 다르다.

공급망의 성격도 달라졌다. 더 이상 시장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국가 전략의 일부로 편입됐다. 광물은 교역 대상이 아니라 외교 자산이 됐다. 희토류를 둘러싼 경쟁은 자원 확보 경쟁이 아니라 체제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이 처한 위치도 가볍지 않다. 한국은 핵심 광물의 주요 소비국이자, 미국 주도의 공급망 협력체에 깊이 연결된 국가다. 동시에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산업 구조를 안고 있다. 중국 중심의 자원 네트워크가 강화될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단기적인 조달 안정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경우, 중장기 산업 전략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국의 19개국 동맹은 일회성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공급망이 이미 정치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희토류 전쟁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된 구조적 변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