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②] 미국은 왜 동맹국을 광물로 묶는가
비축·투자·가격 메커니즘으로 재편되는 공급망
[KtN 김상기기자]미국의 공급망 전략은 방향이 분명하다. 중국 의존을 줄이되, 시장에 맡기지 않는다. 대신 동맹국과 제도를 만든다. 최근 수년간 미국이 추진해 온 핵심광물 협력은 ‘거래’가 아니라 ‘체계’ 구축에 가깝다. 광물안보 파트너십을 중심으로 호주, 일본과 체결한 양자 프레임워크는 그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미국·호주 프레임워크의 핵심은 비축과 투자다. 미국은 산업 수요와 전략 비축 인프라를 활용하고, 호주는 국가 차원의 핵심광물 비축 제도를 연동한다. 단순한 공동 선언이 아니다. 채굴·정제·가공 전 단계에 정부와 민간 자본을 동원해 최소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기간에 집행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공급망의 취약 지점을 특정하고, 자금을 앞세워 메우는 방식이다.
미국·일본 프레임워크 역시 방향은 같다. 다만 초점은 고부가가치 단계에 맞춰졌다. 희토류 원광 확보에 그치지 않고 영구자석, 배터리, 촉매, 광학 소재까지 포함한 전주기 협력이다. 미국은 기술과 금융을 제공하고, 일본은 정밀 제조 역량을 결합한다. 중국이 장악해 온 정제·가공 구간을 동맹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대목은 ‘가격 메커니즘’의 등장이다. 미국은 자유시장에 가격을 맡기지 않는다. 표준 기반 거래제도, 가격 하한제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핵심광물 가격의 급락을 막고 프로젝트 수익성을 보장하려 한다. 이는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자원 시장에서 국가가 위험을 분담하지 않으면 공급망은 구축되지 않는다.
이 전략은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내포한다. 비시장적 정책과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동맹국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선언이다. 말은 경제지만, 실제로는 안보다. 핵심광물은 방산, 에너지, 첨단 산업과 직결된다.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만들지 못하면, 산업 주권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미국은 협력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호주와 일본에 이어 말레이시아, 태국과도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협정들은 법적 구속력은 약하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아세안 지역을 중국 외 대체 공급처로 키우려는 구상이다. 인허가 간소화, 투자 우대, 자산 매각 심사 강화가 동시에 담겼다. 자원 확보와 투자 통제를 함께 가져가는 설계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공급망을 둘러싼 질서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가격과 효율을 기준으로 공급처를 선택했다. 지금은 국가가 기준을 정하고, 기업은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공급망은 더 이상 글로벌 시장의 산물이 아니다. 동맹의 합의 결과다.
한국의 역할도 이 지점에서 재정의된다. 한국은 광물안보 파트너십의 핵심 참여국이자 의장국 경험을 가진 국가다. 배터리, 반도체, 소재 산업에서 동맹 내 가치가 높다. 동시에 원자재 확보에서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미국 주도의 공급망 체계에서 한국은 단순 수요국이 아니라 조정자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 정제·가공 투자, 장기 계약을 병행하지 않으면 위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핵심광물은 시장에 맡기지 않는다. 동맹으로 묶고, 제도로 관리한다. 이는 단기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공급망은 더 이상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체제 유지의 문제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