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①] Rick Owens, 모피를 멈추다
윤리가 선택이 아닌 기준이 된 순간
[KtN 임우경기자]Rick Owens가 모피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 발표 시점은 12월 15일. 선언 방식은 조용했지만 내용은 명확했다. Rick Owens 공식 웹사이트의 ‘Eco-Aware’ 항목에는 “지난 10년간 모피 생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했고, 앞으로는 모피 생산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추가됐다. 같은 날 이커머스에서는 판매 중이던 밍크 핸드백이 즉시 삭제됐다. 선언과 실행 사이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소재 변경이 아니다. Rick Owens라는 브랜드가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온 미학과 산업적 위치, 그리고 윤리에 대한 태도를 다시 정렬하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외부 압력과 내부 판단이 교차한 지점에서 내려졌다는 점에서 현대 럭셔리 브랜드의 작동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결정의 직접적 계기는 동물권 단체 CAFT가 주도한 5일간의 시위였다. 시위는 12월 10일부터 시작됐다. 런던에서는 Rick Owens Furniture의 전시 ‘Rust Never Sleeps’ 현장이 타깃이 됐고,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는 Rick Owens 매장 앞 시위가 이어졌다. CAFT는 Rick Owens가 과거 의류와 부츠, 액세서리 전반에 걸쳐 모피를 사용해온 점을 문제 삼았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아방가르드한 미학이 동물 희생 위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Rick Owens는 침묵으로 시간을 벌지 않았다. 성명은 변명이나 역사적 맥락 설명에 집중하지 않았다. 모피 사용을 중단한다는 결론만을 남겼다. 이 태도는 최근 럭셔리 업계가 위기 상황에서 선택하는 전형적인 대응 방식과는 다르다. 대다수 브랜드는 장문의 설명이나 중간 단계를 설정해 여론의 강도를 낮추는 전략을 택한다. Rick Owens는 선언을 통해 논쟁의 여지를 최소화했다.
주목할 부분은 Rick Owens가 이번 결정을 전면적인 ‘전환’이 아니라 ‘종결’의 언어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이미 모피 사용을 줄여왔다는 설명은 변화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앞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타협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이는 한 시즌의 정책이 아니라 브랜드 원칙의 재설정에 가깝다.
Rick Owens는 패션 산업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다크하고 아방가르드한 실루엣, 육체성과 퇴폐성을 동시에 끌어안는 미학은 강력한 팬층을 형성했다. 모피는 이러한 세계관을 구성하던 재료 중 하나였다. 질감과 무게, 원초적 이미지는 Rick Owens의 디자인 언어와 충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둡고 원시적인 감각을 강화하는 요소로 기능했다. 그만큼 이번 결정은 단순한 윤리 선언을 넘어 미학적 선택의 변화까지 포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ick Owens는 산업의 흐름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미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와 패션 기관은 모피를 금지하거나 사용을 중단했다. Condé Nast(콘데나스트)는 전 세계 자사 매체에서 모피 광고와 편집을 배제했고,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는 뉴욕패션위크에서 모피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브랜드의 결단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기준선이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Rick Owens의 선택은 늦은 결단도, 과도한 결단도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번 사건이 ‘윤리적 각성’이라는 감정적 서사로 소비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Rick Owens의 결정은 시위라는 외부 자극에 의해 촉발됐지만, 결과는 전략적으로 정제돼 있다. 선언은 공식 채널을 통해 이뤄졌고, 제품 철수는 즉각 반영됐다. 감정적 대응이 아닌 시스템적 대응이다. 이는 윤리가 더 이상 브랜드 이미지 관리의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운영 원칙의 일부로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현대 패션 산업에서 윤리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모피는 환경 부담, 동물 학대, 공급망 투명성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소재다. 이 문제는 캠페인과 시위를 통해 언제든 가시화될 수 있다. Rick Owens는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선택을 했다. 논란의 여지를 제거함으로써 브랜드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이다.
Rick Owens의 모피 중단은 패션 산업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사용해야 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시대다. 설명이 불가능한 선택은 빠르게 기준선 밖으로 밀려난다. Rick Owens는 그 기준선을 인식했고, 명확한 방식으로 응답했다.
이번 결정은 박수나 비난으로 평가될 사안이 아니다.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브랜드가 어떤 언어와 속도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윤리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증명된다. Rick Owens는 그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