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전략 리포트③] 문체부, 법은 늦었고 산업은 먼저 움직였다

OTT 영화를 ‘영화’로 인정한 정책 결정의 함의 AI·AX·VFX 투자, 콘텐츠 제작 구조를 바꾸는 국가의 선택 IP 1,000개 목표가 말하는 K-컬처 경쟁력의 방향

2025-12-19     임우경 기자
중예산 영화, 작가 중심 프로젝트, 실험적 작품 상당수가 OTT를 유통 창구로 선택하고 있다. 법은 이를 영화가 아닌 ‘온라인 영상물’로 분류해 왔다. 현실과 제도의 간극이 계속 벌어져 온 셈이다.  사진=2025 08.18.  넷플릭스 ,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 업무보고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콘텐츠 산업의 현실이 이미 법과 제도를 앞질렀다는 점이다. 이번 보고에서 드러난 여러 정책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OTT 상영 영화를 법적 ‘영화’로 포섭하겠다는 결정이다. 오랫동안 유지돼 온 구분선이 처음으로 공식 수정된다.

그동안 법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작품만을 영화로 규정해 왔다. 제작 방식과 상관없이 유통 창구가 극장이 아니면 영화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제작 환경은 이미 달라졌다. 중예산 영화, 작가 중심 프로젝트, 실험적 작품 상당수가 OTT를 유통 창구로 선택하고 있다. 법은 이를 영화가 아닌 ‘온라인 영상물’로 분류해 왔다. 현실과 제도의 간극이 계속 벌어져 온 셈이다.

문체부 최휘영 장관은 이번 업무보고에서 그 간극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OTT 유통 여부와 관계없이 영화는 영화로 인정하겠다는 방향이다. 이는 특정 플랫폼을 옹호하는 결정이 아니다. 제작 현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선택이다. 정책이 산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바뀐 만큼 정책이 따라가는 구조다.

이 결정은 영화 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긴다. 지원 제도, 기금 구조, 제작 방식, 유통 질서가 함께 재정렬된다. 극장을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질서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문체부는 그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 제도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늦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접근에서도 같은 태도가 읽힌다. 문체부는 AI·AX·VFX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기술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기술은 수단이다. 콘텐츠 제작 구조를 바꾸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고가 장비 의존도를 낮추고, 제작 공정을 줄이며,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체부 최휘영 장관은 이번 업무보고에서 그 간극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OTT 유통 여부와 관계없이 영화는 영화로 인정하겠다는 방향이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흐름은 제작 현장의 체질 변화를 전제로 한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일부 제작사만 살아남는 구조에서 벗어나, 중소 제작사와 창작자도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AI는 창작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작 부담을 줄이는 장치로 설정된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겨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같은 기술 정책은 결국 IP 전략으로 이어진다. 문체부가 제시한 ‘IP 1,000개’ 목표는 단순한 숫자 경쟁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의 중심을 작품 단위에서 지식재산 단위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한 편의 흥행보다, 반복 활용 가능한 원천 자산을 축적하겠다는 방향이다.

IP 중심 전략은 산업 구조를 바꾼다. 제작은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장기적 자산 축적 과정이 된다.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으로 확장 가능한 서사가 핵심 자원이 된다. 문체부가 원천 스토리 발굴, IP 거래 플랫폼, B2B 매칭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작과 유통, 투자와 수익이 분절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판단이다.

이 전략은 글로벌 경쟁 환경을 전제로 한다. 콘텐츠 시장은 이미 국경을 넘었다. 플랫폼은 글로벌 단위로 움직이고, 투자 역시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개별 작품으로는 경쟁하기 어렵다. IP를 축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국가만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문체부의 IP 전략은 이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다.

다만 속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산업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제작 현장과 플랫폼은 빠르게 변한다. 정책은 항상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문체부의 이번 업무보고는 그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다. 법을 고치고, 제도를 손보고, 기술 투자를 통해 산업의 흐름에 합류하겠다는 선택이다.

콘텐츠 산업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법과 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정책은 무력해진다. 문체부는 그 사실을 인정했고, 늦게나마 방향을 틀었다. 이 선택이 충분한지 여부는 앞으로의 실행에 달려 있다. 그러나 최소한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