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전략 리포트④] 문체부, 팬덤은 시장이 된다
감정 소비를 산업으로 끌어올린 K-컬처 전략 굿즈·체험·플랫폼으로 확장되는 파생 경제 팬덤을 ‘관리 대상’이 아닌 ‘경제 주체’로 본 정책 시선
[KtN 임우경기자]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 업무보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팬덤’이다. 과거 문화 정책 문서에서 팬덤은 부수적 현상에 가까웠다. 열성 소비자, 자발적 지지층 정도로만 다뤄졌다. 이번 업무보고에서는 다르다. 팬덤은 명확한 산업 주체로 설정된다. 감정과 취향이 만들어내는 소비가 정책의 계산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문체부는 K-컬처의 확산 동력을 팬덤에서 찾는다. 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을 넘어 굿즈, 전시, 체험, 관광으로 이어지는 소비 구조의 중심에 팬덤이 놓여 있다. 단발성 흥행이 아니라 반복 소비를 만들어내는 힘이 팬덤이라는 판단이다. 이번 보고에서 ‘팬덤 기반 동반성장 산업 확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감정을 경제로 전환하는 구조다. 팬덤은 단순한 소비 집단이 아니다. 참여하고, 공유하고, 재생산한다. 공연을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굿즈를 사고, 콘텐츠를 다시 소비하고, 관련 공간을 방문한다. 문체부는 이 흐름을 하나의 산업 가치사슬로 묶었다. 콘텐츠 제작에서 끝나지 않고, 경험과 체험까지 포함하는 구조다.
K-FANOMENON (케이-페노미논)으로 명명된 초대형 K-컬처 행사는 이 전략을 상징한다. 공연, 전시, 체험, 소비재가 결합된 복합 행사다. 팬덤을 특정 장르에 묶지 않고, K-컬처 전체로 확장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음악 팬은 공연을 찾고, 드라마 팬은 전시를 찾으며, 콘텐츠 소비는 관광으로 이어진다. 팬덤의 이동 경로 자체가 산업 설계의 일부가 된다.
굿즈와 파생 상품에 대한 정책적 관심도 같은 맥락이다.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다. 팬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자 반복 소비를 유도하는 장치다. 문체부가 콘텐츠와 소비재의 결합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OTT 콘텐츠와 연계한 간접광고, K-컬처 엑스포, 뷰티·패션·푸드와의 결합은 팬덤 소비를 일회성에서 일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팬덤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파트너로 다뤄진다. 문체부는 팬덤을 통제하거나 관리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산업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주체로 인정한다. 팬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상품, 경험을 늘리는 방식이다. 정책의 역할은 방향 제시가 아니라 판을 깔아주는 데 머문다.
이 전략은 최근 소비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소비는 점점 기능보다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만족, 소속감, 경험이 가격을 설득한다. 문체부가 팬덤을 산업 전략의 중심에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팬덤 소비는 경기 변동에 상대적으로 덜 흔들린다. 정서적 유대가 강할수록 소비의 지속성은 높아진다.
다만 이 구조는 동시에 위험을 안고 있다. 팬덤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콘텐츠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 대중성이 검증된 장르와 스타에 자원이 집중될 가능성도 커진다. 문체부가 기초예술과 신진 창작자 지원을 병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팬덤 경제가 산업을 키우는 동시에, 다른 영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조치다.
또 하나의 과제는 지속성이다. 이벤트 중심 전략은 단기 성과를 만들 수 있지만, 반복되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 대형 행사와 캠페인에 의존할수록 산업은 불안정해진다. 팬덤을 시장으로 삼은 이상, 일상적 소비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관건으로 남는다.
문체부는 팬덤을 문화 현상이 아니라 경제 주체로 본다. 감정은 더 이상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정책은 그 감정을 어떻게 산업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K-컬처 전략은 이제 콘텐츠 제작을 넘어, 감정이 소비로 이어지는 경로 전체를 설계하는 단계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