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치①] 문화정책은 국정의 부속이 아니다

국정과제 123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로 읽는 문화국정의 설계와 검증

2025-12-17     박준식 기자
정부업무보고(문화체육관광부, 권익위원회). 사진=대통령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는 정책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정 운영의 기준을 먼저 세우는 구조를 택했다. 국민주권, 공정, 책임, 실용이라는 네 개의 기준은 선언적 가치가 아니라 국정과제 전반을 관통하는 설계 원리로 기능한다. 각 부처 정책은 해당 기준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통해 평가받는다. 이 틀 속에서 문화정책은 주변부에 머물지 않는다. 국정과제 123은 문화를 국정 목표의 핵심 추진 전략 가운데 하나로 명시했다.

‘함께 누리는 창의적 문화국가’는 별도의 국정 목표 축으로 제시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 부처로 지정됐다. 문화예술, 문화산업, 관광, 체육, 국제 문화 교류가 하나의 정책 묶음으로 구성됐다. 이는 문화정책을 상징이나 이미지 관리 차원이 아니라 국정 성과 관리의 대상 영역으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문화는 감상의 영역을 넘어 행정과 평가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국정과제 문서에 제시된 문화 분야 과제는 구체적이다. 문화예술관람률 70퍼센트 달성이라는 중장기 목표가 제시됐고, 통합문화이용권 확대, 아동·청소년 문화역량 강화, 지역 문화 기반 확충, 전통과 유산의 체계적 보존, K-컬처의 글로벌 확산까지 세부 항목이 병기됐다. 문화정책은 추상적 가치의 나열이 아니라 목표와 수단이 결합된 실행 과제로 설정됐다.

이 구조를 전제로 볼 때 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 업무보고는 연간 사업 계획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국정과제 123이 제시한 문화 분야 설계를 실제 정책 언어로 전환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이 국정과제의 한 축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여부는 문체부 업무보고의 내용과 실행 구조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국정과제의 기본 방향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문화정책의 관점을 ‘지원’에서 ‘투자’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팔길이 원칙을 전제로 하되, 산업 구조와 유통 질서, 국제 진출 전략에 대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설계하겠다는 접근이 제시됐다. 이는 국정과제가 강조한 실용적 국가 운영 기조와 맞닿아 있다.

국정과제 104의 세부 항목을 문체부 업무보고에 대입하면 연관성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화 향유 확대는 통합문화이용권 인상과 청년 문화예술패스로 구체화됐다. 아동·청소년 문화역량 강화는 꿈의 예술단 확대와 생애주기 독서 정책으로 이어졌다. 지역 문화 기반 확충은 지역 순회 콘텐츠와 거점형 사업으로 재배치됐다. 글로벌 확산 전략은 해외 주요 도시 전용 공연장 확보와 K-컬처 네트워크 강화 계획으로 연결됐다.

이러한 구성은 국정과제가 방향 제시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국정과제의 항목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2026년 실행 과제로 정렬했다. 정책 언어는 선언보다 구조에 가깝고, 각 과제는 대상과 범위를 중심으로 구체화됐다.

확장성 측면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국정과제는 문화산업을 콘텐츠에 국한하지 않고 음식, 미용, 패션, 관광 등 연관 산업으로 확장하는 방향을 명시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이 방향을 정책 도구의 확장으로 연결했다.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라 현지화 컨설팅, 공동 제작, 민관 협의체, 비즈니스 매칭 등 실행 수단이 제시됐다. 문화가 연관 산업의 해외 진출을 견인하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설계하겠다는 판단이다.

문체부 최휘영 장관은 팬덤을 문화 현상이 아니라 경제 주체로 본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장성 또한 일정 수준 확보됐다. 국정과제는 2030년을 기준으로 한 목표 지표를 제시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2026년을 해당 목표로 가는 중간 단계로 설정하고 반복 가능한 정책 도구를 중심에 배치했다. 문화 향유 확대는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이용권과 패스 같은 제도로 설계됐다. 관광 정책 역시 단기 방문객 유치보다 체류 전 과정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단년도 성과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경제성 논리도 비교적 명확하다. 국정과제는 문화수출 확대와 관광객 증가를 국가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제시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이를 산업 목표로 전환하며 투자, 법제, 유통 구조 개선을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문화산업을 고용과 수출, 지역 경제를 동시에 자극하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일관성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검증이 필요한 지점이 드러난다. 국정과제와 문체부 업무보고가 제시한 방향과 구조는 정합성이 높지만,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가장 큰 과제는 가치 충돌 관리다. 창작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팔길이 원칙과 산업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 국가 전략은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심사 기준과 지원 방식, 성과 평가 체계가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을 경우 현장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대형 문화 인프라 확충 역시 경제성 검증이 필요한 영역이다. 공연장과 대형 시설 확대는 수요 논리가 분명하지만, 입지와 재원, 운영 모델에 따라 지역 격차를 확대할 위험도 함께 내포한다. 문체부 업무보고에서도 해당 사업은 연구와 타당성 검토 단계에 놓여 있다. 정책 추진 의지와 별개로 냉정한 비용·편익 분석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체감도 문제도 남는다. 문화정책은 성과를 수치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관람률과 이용권 수치는 참고 지표가 될 수 있으나, 문화 격차 해소와 삶의 질 개선을 온전히 대변하지는 못한다. 국정과제가 제시한 문화국정의 목표를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려면 성과 지표 설계와 설명 책임이 더욱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종합하면 국정과제 123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는 상당 부분 맞물려 있다. 국정과제는 문화정책을 국정의 한 축으로 끌어올렸고, 문체부는 그 설계를 실행 과제로 번역했다. 연관성, 확장성, 연장성, 경제성 모두 일정 수준의 논리와 구조를 갖췄다.

다만 정책의 완성도는 설계의 일관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가치 충돌을 관리하는 능력, 대형 사업의 경제성을 입증하는 과정, 국민 체감도를 설명하는 언어가 뒤따라야 한다. 문화정책이 국정과제로 기능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 지점에서 판가름 난다.

이재명 정부의 문화국정은 현재 설계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국정과제와 업무보고는 그 설계도를 제시했다. 성패는 앞으로의 보완과 수정, 그리고 설명 책임의 축적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