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치③] ‘지원’에서 ‘투자’로

문화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타당성과 위험

2025-12-19     박준식 기자
정부업무보고(문화체육관광부, 권익위원회). 사진=대통령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123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분명하다. 문화정책의 관점 전환이다. 문화예술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대상으로만 다루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문화산업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설계해야 할 영역으로 재정의했다. 문체부 업무보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투자’라는 단어는 단순한 수사나 분위기 조성이 아니다. 국정과제가 요구한 문화국정의 실행 방식이다.

국정과제 문서에서 문화는 창작의 자유와 향유권이라는 가치에 머물지 않는다. 문화는 성장 산업이자 국가 경쟁력의 일부로 규정된다. 문화수출 확대, 글로벌 영향력 강화, 관광과의 연계, 연관 산업 동반 진출이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된다. 이 구조 속에서 문화정책은 복지 정책의 하위 항목이 아니라 산업 정책과 나란히 놓인다. 문체부 업무보고의 ‘지원에서 투자로’라는 선언은 이러한 국정과제 인식을 그대로 받아온 결과다.

문체부가 제시한 투자 중심 문화정책의 출발점은 역할 분담의 재설정이다. 창작 영역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산업 구조와 유통 질서, 글로벌 진출 경로에 대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형성과 성장 경로에는 공공의 설계를 개입시키겠다는 방식이다. 이는 문화예술과 문화산업을 동일한 기준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정책 논리 자체만 놓고 보면 이 전환은 타당성을 갖는다. 문화산업은 이미 시장 규모와 고용 효과, 수출 기여도 측면에서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콘텐츠 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초기 위험이 크고 회수 기간이 길다. 민간 자본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에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접근은 산업 정책 차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국정과제가 문화산업을 성장 전략의 일부로 설정한 배경이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이러한 논리를 구체적인 정책 수단으로 옮겼다. 투자 확대, 법제 개선, 유통 구조 정비, 글로벌 진출 지원이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단순 보조금이나 일회성 지원을 넘어, 제작·유통·해외 진출 전 과정에 개입하겠다는 구상이다. 문화산업을 개별 기업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생태계 단위로 관리하겠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확장성 또한 분명하다. 국정과제는 문화산업을 콘텐츠에 국한하지 않는다. 음식, 미용, 패션, 관광 등 연관 산업을 함께 묶어 ‘K-컬처’라는 이름으로 확장한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이 방향을 정책 도구의 확장으로 연결했다. 콘텐츠를 중심에 두되, 연관 산업이 함께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컨설팅, 비즈니스 매칭, 공동 기획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가 다른 산업의 해외 진출을 견인하는 허브 역할을 맡는다는 구상이다.

연장성 측면에서도 변화는 확인된다. 기존 문화정책이 단년도 사업 중심으로 설계됐다면, 이번 업무보고는 중장기 목표를 전제로 정책 도구를 배치했다. 투자 정책은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반복 가능한 제도와 구조를 강조한다. 이는 국정과제가 제시한 2030년 목표 지표와도 연결된다. 문화정책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경로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 전환이 순탄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부분은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산업 정책의 목표가 충돌할 가능성이다. 투자라는 개념이 들어오는 순간, 성과 측정과 효율성 논리가 따라붙는다. 문화예술 영역에 산업적 기준이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창작의 다양성과 실험성이 위축될 수 있다. 문체부가 팔길이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선언과 운영 사이의 간극이다. 정책 문서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과 실제 집행 과정에서 이를 보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투자 정책이 확대될수록 심사 기준과 성과 평가의 영향력은 커진다. 이 과정에서 창작의 질과 산업적 성공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실패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현장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또 다른 위험은 정책 자원의 집중이다. 투자 중심 정책은 필연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요구한다. 이는 대형 프로젝트와 이미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자원이 쏠릴 가능성을 높인다. 국정과제가 강조한 문화 향유 확대와 지역 격차 해소가 산업 중심 정책 속에서 주변화될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문체부 업무보고가 산업 정책과 향유 정책을 병렬적으로 제시한 이유 역시 이러한 균형 문제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경제성 역시 냉정한 검증이 필요하다. 문화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분명하지만, 모든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 구조, 손실 관리 방식, 민간과 공공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으면 정책 신뢰도는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투자 확대를 강조하지만, 위험 분산과 실패 관리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다.

관광과 연계된 투자 정책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문화 콘텐츠와 관광 인프라를 결합한 전략은 수요 논리가 강하지만, 지역별 수용 능력과 지속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단기 붐에 그칠 수 있다. 문화산업 투자와 관광 정책이 서로의 성과를 갉아먹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환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문화정책을 ‘지원’의 언어에서 ‘투자’의 언어로 옮긴 것은 정책 책임의 방식 자체를 바꾼 선택이다. 지원은 성의의 문제로 평가되지만, 투자는 성과와 설명 책임을 요구한다. 국정과제와 문체부 업무보고는 문화정책을 더 이상 선의의 영역에 두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원에서 투자로’라는 전환은 국정과제 123이 요구한 문화국정의 핵심 실행 방식이다. 논리적 타당성과 산업적 필요성은 충분히 갖췄다. 다만 이 전환이 성공하려면 자율과 성과, 공공성과 시장 논리를 조율하는 정교한 운영 기준이 필수적이다. 문화정책의 성패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그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화정책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과제는 이미 방향을 제시했다. 남은 과제는 그 방향이 문화 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여부다. 이번 업무보고는 그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