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치④] 공정은 문화정책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불법유통·암표·체육 개혁으로 본 문화국정의 제도 설계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123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공정’은 도덕적 선언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문화정책 영역에서 공정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다뤄진다.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제도가 불공정을 반복적으로 만들어왔는지를 짚는 방식이다. 문화국정에서 공정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언어로 제시된다.
국정과제 문서에서 문화 분야의 공정은 창작자의 권리 보호, 유통 질서 개선, 체육 단체의 신뢰 회복이라는 구체적 항목으로 분해돼 있다. 문화정책을 둘러싼 불공정은 일부 행위자의 일탈이 아니라, 오랜 관행과 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 문제로 인식된다. 문체부 업무보고가 불법유통, 암표, 체육 단체 구조 개혁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가장 먼저 주목되는 지점은 콘텐츠 불법유통 문제다. 국정과제는 저작권 보호를 문화산업 경쟁력의 핵심 조건으로 명시했다. 문체부 업무보고 역시 불법 스트리밍과 무단 복제, 해외 불법 사이트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단순한 권리 보호 차원을 넘어, 정당한 시장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정책적 판단이다.
불법유통이 반복되는 구조는 명확하다. 창작자와 합법 유통망은 비용과 책임을 부담하지만, 불법 유통은 낮은 비용으로 수익을 거둔다. 이 구조가 방치될 경우 시장은 왜곡되고, 정당한 투자와 창작은 위축된다. 문체부가 불법유통 대응을 공정 문제로 다루는 이유다. 공정한 경쟁 조건을 회복하지 않으면 문화산업 투자 전략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연·스포츠 분야의 암표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국정과제는 문화 향유권 확대를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암표 근절을 통해 접근성을 회복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암표는 단순한 시장 행위가 아니라, 문화 향유의 기회를 왜곡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된다.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될 수 있지만, 인위적 공급 제한과 자동 매매 시스템을 통한 이익 독점은 공정한 거래로 보기 어렵다.
암표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루겠다는 접근은 문화정책의 성격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소비자의 불만이나 윤리 문제로 취급되던 영역이 행정 개입의 대상으로 들어왔다. 이는 문화정책이 더 이상 ‘선의의 시장’에 기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공정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체육 분야 개혁은 문화국정에서 공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영역이다. 국정과제는 체육 단체의 투명성 강화와 신뢰 회복을 분명한 과제로 설정했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인사·재정·운영 구조 개선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체육 단체 개혁은 단순한 사업 개선이 아니라, 오랜 이해관계와 관행을 건드리는 제도 개편에 가깝다.
체육 영역에서의 불공정은 구조적이다. 특정 집단에 집중된 의사 결정 권한, 폐쇄적인 인사 관행,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재정 운용이 반복돼 왔다. 국정과제와 문체부 업무보고는 이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로 규정한다. 공정 회복은 인물 교체가 아니라 구조 개편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문화정책 전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공정은 동일한 규칙을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다. 문화예술, 산업, 체육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갖는다. 공정의 기준 역시 영역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규칙의 내용이 아니라, 규칙이 누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공정을 ‘강화된 규제’로만 다루지 않는다. 불법유통과 암표에는 단호한 대응을 예고했지만, 창작 영역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강조한다. 이는 공정을 동일한 통제의 문제로 보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자율이 필요한 영역과 개입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공정한 정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구분은 운영 과정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규제 강화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과도할 경우 현장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불법유통 단속 과정에서 합법 플랫폼과 창작자가 과도한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 암표 대응 과정에서 정상적 거래까지 위축될 위험도 존재한다. 공정이라는 명분이 새로운 불편을 낳지 않도록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공정 정책의 또 다른 과제는 집행력이다. 제도는 설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단속과 제재, 사후 관리까지 이어질 때 효과를 낸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공정 회복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지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 얼마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공정은 선언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국정과제 123과 문체부 업무보고가 보여준 공정의 접근법은 분명하다. 문화정책에서 공정은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제도적 조건이다. 불공정을 방치한 채 자율과 성장을 말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정책 전반에 깔려 있다. 이는 문화국정이 감성적 언어에서 행정적 언어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문화정책에서 공정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문화산업 투자 전략, 문화 향유 확대, 체육 개혁 모두 공정한 구조를 전제로 한다. 문체부 업무보고는 공정을 문화국정의 기반 조건으로 끌어올렸다. 다만 공정이 규제의 이름으로만 작동하지 않도록, 영역별 특성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교한 운영이 뒤따라야 한다.
문화정책의 공정성은 결과로 평가되지 않는다. 구조가 바뀌었는지, 규칙이 작동하는지, 기회가 실제로 확장됐는지를 통해 판단된다. 국정과제와 문체부 업무보고는 그 방향을 제시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공정이 문화 생태계 전반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