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베트남⑤] IP는 어떻게 자산이 되는가
OST·카탈로그·레전드가 다시 돈이 되는 베트남 차트의 구조
[KtN 전성진기자]2025년 11월 베트남 케이팝 차트는 ‘신곡 경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변화는 오래된 곡, 이미 알려진 이름, 그리고 서사를 가진 콘텐츠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 시장에서는 이제 히트곡이 만들어지는 것만큼, 이미 존재하는 IP가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차트는 신작의 무대이자, 동시에 자산의 재평가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IP의 개념 확장이 있다. IP는 더 이상 새로 발매된 음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의 히트곡, OST, 프로젝트성 콘텐츠, 그리고 레전드 아티스트의 카탈로그까지 모두 포함한다. 베트남 차트는 이들 IP가 어떤 조건에서 다시 소비되고, 어떤 방식으로 가치가 연장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Golden’이다. HUNTRX·EJae·Audrey Nuna·Rei Ami가 참여한 이 곡은 단순한 케이팝 싱글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콘텐츠와 결합된 OST IP다. ‘Golden’은 NCT 차트에서 9월부터 11월까지 1위를 유지하며 팬덤 주도의 장기 체류를 보여줬고, 동시에 Zing MP3 차트에서도 여러 주 동안 상위권을 유지하며 대중 소비에 안착했다. 하나의 곡이 두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 것이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IP의 수익 경로가 단선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OST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세계관과 함께 소비된다. 음원 스트리밍 수익에 그치지 않고, 굿즈, 영상 콘텐츠, 2차 창작으로 확장된다. 베트남 차트에서 ‘Golden’이 오래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해당 IP가 음악을 넘어 하나의 콘텐츠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카탈로그 IP의 재평가 역시 눈에 띈다. 11월 NCT 차트에서 빅뱅의 ‘Haru Haru’, 지드래곤의 ‘Crooked’, 태양의 ‘Eyes, Nose, Lips’는 모두 최신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위권에 재진입하거나 장기간 머물렀다. 이 곡들은 공연과 이벤트를 계기로 다시 호출됐다. 특히 지드래곤 하노이 공연 이후 나타난 역주행 흐름은, 레전드 IP가 여전히 강력한 시장 자산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카탈로그 소비는 우연이 아니다. 베트남 케이팝 소비층은 이미 세대적으로 분화돼 있다. 2010년대 초반 케이팝을 경험한 세대는 이제 안정적인 소비력을 가진 주체로 성장했다. 이들에게 과거의 곡은 낡은 음악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함께 소비하는 콘텐츠다. 공연이라는 계기를 통해 이 감정은 다시 활성화되고, 스트리밍이라는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 재소비된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단발성 향수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Zing MP3 차트에서 확인되듯, 이러한 카탈로그 곡들은 일정 기간 반복 청취를 유지한다. 이는 베트남 대중이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한번 듣는 음악’이 아니라, ‘지금도 듣는 음악’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카탈로그 IP는 일회성 매출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자산으로 전환된다.
신세대 IP와 레거시 IP가 공존하는 구조 역시 베트남 시장의 특징이다. 11월 Zing MP3 차트에는 엔믹스, 베이비몬스터, 올데이 프로젝트 같은 신세대 IP와 함께, 우즈, 화사, 다비치, 로이킴 등 솔로·보컬 중심의 IP가 동시에 자리했다. 이는 하나의 메가 히트가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IP가 각자의 층위에서 소비되는 구조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획사의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신곡 발매만으로 시장을 유지하는 방식은 점점 비효율적이 된다. 대신 기존 IP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계기로 다시 시장에 노출시키느냐가 중요해진다. 공연, 페스티벌, OST 참여, 협업 프로젝트는 모두 IP의 수명을 연장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베트남 시장은 이러한 전략의 효과를 빠르게 검증해 주는 시험장이 된다.
IP 자산화의 관점에서 베트남 차트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예측 가능성이다. Zing MP3에서 장기간 체류하는 곡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스트리밍 수익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획사와 레이블 입장에서 중요한 지표다. 단기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어떤 IP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베트남에서의 성과는 동남아 전체로 확장될 가능성을 가늠하는 신호로 활용될 수 있다.
동시에 IP 간 격차는 더욱 선명해진다. 레전드 IP와 서사를 가진 콘텐츠는 쉽게 재활성화되지만, 맥락 없이 소비된 곡은 빠르게 잊힌다. 이는 베트남 시장이 단순히 소비량만 큰 시장이 아니라, 선택 기준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IP의 힘은 단순한 노출 빈도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이야기와 경험에서 비롯된다.
2025년 11월 베트남 케이팝 차트가 보여준 것은 하나의 방향이다. 이 시장에서 음악은 더 이상 일회성 상품이 아니다. 곡은 자산이 되고, 자산은 다시 호출된다. OST는 세계관과 함께 소비되고, 레전드의 곡은 공연을 통해 현재로 돌아온다. 베트남은 케이팝 IP가 어떻게 축적되고, 어떻게 다시 돈이 되는지를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