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트렌드③] 모듈러 디자인은 해답이 되었나, 장치에 머물렀나

P.Andrade ‘Nonhuman Life’, 조립 가능한 옷이 남긴 질문

2025-12-20     신미희 기자
P.Andrade Explores Biomimicry in Its “Nonhuman Life” Collection. 사진=P.Andrad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P.Andrade의 ‘Nonhuman Life’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미래를 말하는 장치는 모듈러 구조다. 탈부착 가능한 패널, 분리된 플랩, 레이어의 재조합은 기술적 진보를 암시하는 표식처럼 배치돼 있다. 설명만 놓고 보면 변화무쌍한 환경에 대응하는 옷,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시스템이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 착장 이미지를 기준으로 보면 모듈러 디자인은 기능적 해법이라기보다 형식적 장치에 가깝게 작동한다.

모듈러 디자인은 본래 분명한 전제를 가진다. 사용자가 상황에 따라 옷의 구조를 바꾸고, 그 변화가 체온 조절이나 활동성, 수납 기능으로 이어져야 한다. 조립과 분해가 반복될수록 효율은 높아지고, 사용성은 직관적이어야 한다. 공구나 장시간의 조작을 요구하는 구조는 모듈러라는 개념과 어긋난다. 문제는 ‘Nonhuman Life’의 모듈러 구조가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충족하는가다.

컬렉션에 등장하는 플랩과 패널은 분명히 분리돼 있다. 그러나 결합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착용 장면만으로 조립 순서를 파악하기 어렵고, 변화 이후의 기능적 차이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분리와 결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그 결과가 체감되는 구조는 아니다. 모듈러라는 단어가 요구하는 사용 경험의 변화는 제한적으로만 드러난다.

이 지점에서 모듈러 디자인은 장비가 아닌 제스처로 작동한다.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라기보다 기능을 상징하는 이미지에 가깝다. 옷은 조립될 수 있지만, 조립의 필요성은 분명하지 않다. 환경 변화에 따른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시각적 구조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테크웨어가 패션 언어로 번역될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P.Andrade Explores Biomimicry in Its “Nonhuman Life” Collection. 사진=P.Andrad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모듈러 구조의 또 다른 문제는 일상성과의 충돌이다. 출퇴근 동선이나 도시 생활에서 반복적인 탈부착을 요구하는 옷은 사용 빈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가방에서 부품을 꺼내고, 옷을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는 과정은 실용보다는 의식에 가깝다. ‘Nonhuman Life’가 설정한 도시적 착용 맥락과 모듈러 구조의 사용 시나리오는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테크웨어 역사에서 모듈러 디자인은 이미 여러 차례 등장했다. 군복의 레이어 시스템, 아웃도어 브랜드의 지퍼 결합 구조, 산업 안전복의 교체형 패널은 모두 명확한 목적을 전제로 한다. 비와 바람, 충격과 마찰에 대한 대응이 구조 변경으로 이어졌다. 반면 P.Andrade의 모듈러 설계는 목적이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다. 변화의 필요성보다 변화의 가능성이 강조된다.

옷은 조립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조립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선택권을 부여받았지만, 선택의 결과가 분명하지 않다. 기능적 유연성보다는 디자인적 유연성이 강조된 구조다. 모듈러는 해법이라기보다 콘셉트를 가시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접근은 컬렉션 전체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Nonhuman Life’는 장비를 만들기보다 도시형 복장을 재해석하려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셔츠와 타이, 테일러드 팬츠를 중심에 두고, 기능은 외형보다 내부에 배치된다. 모듈러 구조 역시 같은 흐름에 놓인다. 과도한 실용성을 요구하기보다는 기술적 언어를 은유적으로 차용하는 방식이다.

P.Andrade Explores Biomimicry in Its “Nonhuman Life” Collection. 사진=P.Andrad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제는 모듈러라는 개념이 지닌 기대치다. 조립 가능한 옷은 사용자에게 능동성을 요구한다. 동시에 그 능동성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체감 가능한 기능 변화가 없다면, 모듈러 구조는 곧 복잡성으로 인식된다. ‘Nonhuman Life’의 모듈러 설계는 바로 그 경계선에 서 있다.

디자인적 완성도와 별개로, 모듈러 구조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탈부착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남을 경우, 구조는 장식에 가까워진다.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전략과 맞물리면서 모듈러 디자인의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진다.

‘Nonhuman Life’의 모듈러 구조는 실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동시에 해답으로 작동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기능성과 일상성 사이에서 선택된 절충안이다. 변화 가능한 옷이라는 개념은 제시되지만, 변화의 필요성은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다. 조립 가능한 옷은 남았고, 사용 시나리오는 열려 있다.

모듈러 디자인이 이후 작업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능적 효율을 강화할 수도 있고, 형식적 장치를 정리할 수도 있다. 현재 단계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분명하다. ‘Nonhuman Life’의 모듈러 구조는 기능적 해답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