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의 얼굴, 배우 윤석화 향년 69세로 별세…반세기 무대의 막 내리다
연극을 대중의 무대로 만든 배우 윤석화, 69세로 별세 ‘신의 아그네스’에서 ‘명성황후’까지, 장르를 넘나든 배우의 궤적 백상예술대상 4회 수상으로 남긴 연기 인생의 정점
[KtN 신미희기자] 한국 연극을 ‘대중의 무대’로 끌어올린 최초의 스타 배우 윤석화가 19일 오전 9시 54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뇌종양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9세.
1956년생으로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반세기 가까이 연극·뮤지컬·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4회 수상 등 한국 공연예술사의 주요 기록을 남겼다.
‘1세대 연극 스타’ 배우 윤석화가 19일 오전 9시 54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뇌종양 투병 끝에 별세했다.전날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고인은 유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앞서 한국연극배우협회가 19일 배우 윤석화의 별세 소식을 발표했다가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협회는 이날 정정 보도자료를 통해 “배우 윤석화 별세 소식은 사실이 아님을 긴급히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협회는 같은 날 오전 5시께 윤석화가 전날 오후 9시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고 알렸으나, 이후 확인 결과 윤석화는 뇌종양 투병으로 병세가 매우 위중한 상태이지만 현재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못해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가족과 팬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쾌차를 바라는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윤석화는 2022년 7월 연극 ‘햄릿’ 공연 이후 건강 이상을 느꼈고, 같은 해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치료와 회복에 전념해 왔다. 투병 사실을 공개한 이후에도 무대와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에 약 5분간 우정 출연하며 관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이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됐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연극은 소수 관객의 예술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윤석화는 무대 위 존재감과 대중적 인지도를 동시에 갖춘 배우로, 연극이 ‘스타의 장르’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선배 배우 손숙, 박정자와 함께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자리 잡으며 한 시대를 이끌었다.
윤석화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각인된 계기는 연극 무대뿐 아니라 광고를 통해서였다. 커피 CF에 출연해 남긴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는 시대를 상징하는 유행어가 됐다. 연극 배우가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장면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고, 윤석화는 연극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문 선구자로 기록된다.
대표작은 뚜렷하다. 1992년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재즈 여가수 멜라니를 연기하며 깊은 내면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1998년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를 맡아 예술가의 고독과 집념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2016년에는 예순의 나이에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아 나이를 초월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연극에 국한되지 않았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등 대형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보였고,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2018)을 통해 안방극장과도 꾸준히 호흡했다.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는 활동은 윤석화가 단순한 연극 배우를 넘어 종합 공연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배경이다.
윤석화는 무대 위 배우에 머물지 않았다. 연극 제작과 연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한국 공연예술의 저변 확대에 힘을 쏟았다. 2002년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서울 대학로에 개관한 소극장 ‘정미소’는 실험적 연극의 거점으로 기능했다. ‘19 그리고 80’, ‘위트’ 등 동시대 감각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창작자와 관객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2019년 만성적인 경영난 끝에 문을 닫았다.
연출가로서의 이력도 뚜렷하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고, 제작에 참여한 뮤지컬 ‘톱 해트’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성과를 거뒀다. 1995년에는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에 놓였던 공연예술 전문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비평과 기록의 영역까지 확장했다.
삶의 태도 또한 배우의 길과 맞닿아 있었다. 윤석화는 아들과 딸을 입양해 가정을 꾸렸고, 입양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지속적으로 열며 입양 문화 개선에 앞장섰다. 개인의 선택을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한 행보는 공연예술계 안팎에서 깊은 울림을 남겼다.
수상 이력은 윤석화의 예술적 성취를 증명한다.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연기상,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2005년 대통령표창, 2009년 연극·무용 부문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으며 국가 차원의 평가도 뒤따랐다.
윤석화의 별세는 한 배우의 죽음을 넘어, 한국 연극이 대중과 처음으로 깊이 만났던 시대의 마침표로 읽힌다. 스타였지만 무대를 떠나지 않았고, 유명했지만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윤석화가 남긴 무대와 기록은 한국 공연예술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와 아들,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