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기획④] 러닝으로 무게를 옮긴 NIKE

스포츠웨어 브랜드 전략의 방향 전환

2025-12-23     박준식 기자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나이키의 50년에 걸친 디자인 여정을 다룬다./사진=Nike and Vitra Design Museum,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나이키의 실적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카테고리 전략의 변화다. 관세와 중국, 유통 구조라는 외부 변수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신호를 보낸 영역은 러닝이었다. 단순한 제품 성과가 아니라, 글로벌 스포츠웨어 산업이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향성에 가깝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확장돼 온 스포츠웨어 산업이 다시 ‘운동’이라는 본질로 수렴하고 있다.

나이키는 오랫동안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를 확장해 온 브랜드였다. 조던 라인, 에어 맥스, 협업 컬렉션은 운동을 넘어 문화와 정체성의 상징으로 작동했다. 이 전략은 한동안 막대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스포츠 본연의 카테고리는 점차 희석됐다. 러닝과 트레이닝은 브랜드의 뿌리였지만, 시장의 중심 무대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시장의 흐름은 분명하게 바뀌었다. 소비자는 다시 ‘왜 필요한가’를 묻기 시작했다. 기능, 착용감, 내구성, 실제 운동 성과가 구매 판단의 핵심으로 이동했다. 이 변화는 경기 침체나 소비 위축의 결과가 아니라, 스포츠웨어가 지나치게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된 데 대한 반작용에 가깝다.

나이키가 다시 러닝에 집중하는 이유는 러닝은 브랜드의 출발점이자,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글로벌한 스포츠다. 특정 문화나 트렌드에 의존하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기능과 성능이 직접적으로 검증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러닝은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카테고리다.

이번 분기 실적에서 러닝 카테고리는 지역별 편차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이는 소비자가 여전히 스포츠의 본질에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동안 글로벌 스포츠웨어 산업이 이 신호를 충분히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중심 전략은 단기적인 확장에는 유효했지만, 장기적인 브랜드 신뢰를 유지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경쟁 환경 역시 이 변화를 가속했다. 온과 호카는 러닝이라는 단일 카테고리에 집중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들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 확장보다 기능적 차별화에 집중했고, 소비자에게 명확한 이유를 제시했다. 가볍다, 편하다, 기록이 달라진다는 메시지는 직관적이었고,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나이키가 다시 러닝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은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이는 단순한 제품 라인 강화가 아니라, 브랜드 서사의 재정렬이다. 스포츠웨어 브랜드가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지를 다시 설정하는 과정이다. 패션적 영향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러닝 중심 전략은 유통과도 연결된다. 러닝 제품은 할인과 과잉 노출에 취약하지 않다. 소비자는 기능과 성능을 기준으로 판단하며, 가격 민감도 역시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도매와 직접 판매를 병행하는 현재의 유통 구조에서도 중요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볼륨 중심 제품보다 마진 방어력이 높고,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도 유리하다.

패션과 스포츠는 오랜 기간 서로 다른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두 분야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사진=Jacquemus and Nik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나이키 내부에서도 이러한 인식 변화는 분명하다. 엘리엇 힐 체제에서 강조되는 ‘Sport Offense’ 전략은 본질적으로 스포츠 카테고리 회복을 의미한다. 러닝, 농구, 트레이닝처럼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영역을 다시 중심에 놓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지난 수년간의 확장 전략을 부정하는 선택이 아니라, 균형을 되찾는 과정이다.

중국 시장에서도 러닝 카테고리의 의미는 크다. 전체 소비 환경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러닝은 제한적인 성장 흐름을 유지했다. 이는 중국 소비자 역시 스포츠의 본질에는 여전히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에서 다시 설 자리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마케팅보다 명확한 제품 이유다.

러닝 중심 전략은 브랜드 조직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디자인, 마케팅, 유통, 스폰서십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돼야 한다. 기능 중심 제품은 과도한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일관된 메시지와 반복적 신뢰가 중요하다. 이는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실행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글로벌 스포츠웨어 산업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많은 카테고리로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핵심 카테고리를 깊게 파고들 것인가. 나이키의 선택은 후자에 가깝다. 이는 성장의 속도를 늦추는 대신, 브랜드의 중심을 단단히 하는 전략이다.

러닝으로의 회귀는 과거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 가장 검증된 영역으로 이동하는 선택이다. 관세, 중국, 유통 구조라는 외부 변수는 브랜드가 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제품의 본질과 성능은 여전히 브랜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이키의 2분기 실적이 보여준 러닝 카테고리의 상대적 안정성은 우연이 아니다. 스포츠웨어 산업이 다시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방향성이다. 화려한 확장보다 명확한 이유, 트렌드보다 기능, 라이프스타일보다 운동. 지금 글로벌 스포츠웨어 산업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