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기획①] CES, 가전 전시를 넘어 산업 기술 무대로 재편

생성형 AI 이후, CES가 선택한 것은 ‘작동하는 기술’이었다

2025-12-22     박준식 기자
[CES 2026 리포트] 하이프의 종말, 작동하는 기술의 시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CES는 더 이상 소비자가전 신제품을 나열하는 전시회가 아니다. 2026년을 앞둔 CES는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무대로 성격이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Deloitte가 발표한 「CES 2026 Preview」 보고서는 CES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 쇼케이스가 아닌, 산업 구조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지점으로 규정한다. 기술을 설명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기술은 비용 구조와 효율, 운영 안정성이라는 산업의 언어로 평가받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CES 2026의 공식 슬로건은 ‘Innovators Show Up’이다. 혁신을 말하는 기업이 아니라, 혁신을 구현한 기업만 무대에 오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성형 AI가 시장의 기대를 끌어올렸던 2024년과 2025년이 가능성의 시간이었다면, 2026년은 결과를 요구하는 시간에 가깝다. Deloitte는 이 시점을 ‘Operative AI’, 즉 실전 AI의 출현으로 정의한다. 개념과 데모를 넘어 산업 구조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기술만 살아남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다.

CES의 전시 구성은 이미 달라졌다. TV와 가전을 전면에 내세우던 방식은 중심에서 물러났고, AI 인프라와 로보틱스, SDV, 에너지와 전력 시스템이 전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의 적용 대상이 개인 소비자에서 산업과 도시, 국가 인프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CES는 이제 제품의 외형이나 기능을 앞세우지 않는다. 운영 구조와 적용 범위, 확장 가능성이 주요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CES Foundry다. CES 2026에서 처음 신설된 이 구역은 AI, 양자 기술, 블록체인, 사이버 보안을 하나의 산업 제작 환경으로 묶는다. 기술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실제 적용 가능한 구조를 검증하는 공간에 가깝다. 비전과 구호보다 설계와 성능이 앞서는 전시 방식은 CES의 성격 변화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CES가 ‘혁신을 보여주는 무대’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기조연설의 메시지도 이전과 다르다. 과거 CES의 기조연설이 기술의 미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면, CES 2026의 기조연설은 산업 운영의 현실을 전면에 내세운다.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차원의 기술로 다뤄지지 않는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전력 인프라까지 결합된 물리적 시스템으로 다뤄진다. 기술 경쟁의 단위가 단일 제품이나 개별 칩에서 풀스택 인프라로 확장된 배경이다. AI가 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편입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Deloitte는 CES 2026을 B2C 중심 전시에서 B2B 산업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분기점으로 평가한다. 혁신상 수상 분야에서도 이 흐름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AI, 디지털 헬스케어, 에너지 전환, 산업 솔루션 등 인프라와 운영 기술 분야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 가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기술이 ‘보여주기 위한 대상’에서 ‘운영 비용과 생산성을 좌우하는 수단’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 전략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제품 하나를 잘 만들어 판매하는 경쟁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운영 체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가다. 하드웨어 중심의 매출 구조는 소프트웨어, 데이터, 플랫폼 기반의 반복 수익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CES는 이러한 산업 구조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위상 변화도 눈에 띈다. CES 2026 혁신상 수상 비중에서 한국 기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참가 기업 수의 문제가 아니다. AI 전용 반도체, 운영체제 통합 전략, SDV, 전력 인프라 등 CES의 핵심 의제를 구성하는 영역에서 한국 기업이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은 더 이상 글로벌 기술 전시회의 보조적 참가자에 머물지 않고, 산업 전환의 방향을 제시하는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 산업 구조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제조 경쟁력에 기반한 국가에서, 산업 운영 기술과 시스템 설계 능력을 갖춘 국가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CES 2026은 이러한 이동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제 기술과 구조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전, 자동차, 에너지, 로보틱스가 각각의 산업으로 분리돼 존재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하나의 운영 체계로 묶이는 흐름이 이미 시작됐다.

CES가 산업 전반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술은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가 아니다. 비용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 효율을 얼마나 끌어올리는지, 시스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가 판단 기준이다. 작동하지 않는 기술은 시장에서 빠르게 도태된다. CES 2026은 이러한 기준을 전면에 내건 첫 무대다.

기술의 과장은 사라지고 있다. 남은 것은 작동 여부다. CES가 보여주는 것은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이미 산업 현장에서 진행 중인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