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기획⑥] AI 시대의 승부처는 전력과 인프라다

CES 2026이 드러낸 기술 경쟁의 실체, 에너지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2025-12-27     박준식 기자
[CES 2026 리포트] 하이프의 종말, 작동하는 기술의 시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CES 2026은 기술 전시회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와 전력, 도시 인프라가 전시의 중심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Deloitte가 「CES 2026 Preview」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로보틱스, SDV가 아무리 고도화돼도 이를 떠받치는 전력과 인프라가 없으면 산업은 멈춘다. CES 2026은 기술 경쟁의 실체가 에너지와 인프라로 이동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에너지는 기술 발전의 배경 요소로 취급돼 왔다. 반도체,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주목을 받는 동안 전력은 보이지 않는 기반에 머물렀다. 그러나 AI 확산과 함께 상황은 급변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급격히 늘었고, 냉각과 송배전 문제는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했다. CES 2026에서 전력 기업과 에너지 솔루션 기업이 전면에 등장한 배경이다. 기술은 전기로 움직인다. 이 단순한 사실이 산업 전략의 중심으로 올라왔다.

AI 인프라의 확장은 전력 수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운영될 수 없다. 전력 품질과 신뢰성, 효율성은 AI 서비스의 성능과 직결된다. CES 2026 전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관리, 에너지 효율 최적화, 전력망 지능화 기술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는 전력이 더 이상 비용 항목이 아니라,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력 인프라의 역할은 데이터센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장, 물류센터, 도시 교통 시스템까지 AI 기반 운영이 확산되면서 전력망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실시간 수요 예측과 공급 조절, 장애 대응 능력이 산업 운영의 안정성을 좌우한다. CES 2026에서 디지털 트윈 기반 전력 관리와 지능형 송배전 시스템이 강조된 이유다. 전력망 자체가 하나의 운영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역시 중요한 축이다. 탄소 감축과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선언적 목표가 아니다. 산업 운영의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와 로보틱스, SDV는 모두 전력을 더 많이 소비하는 기술이다.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압박은 커지고 있다. CES 2026은 이 모순을 정면으로 다룬다. 고효율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분산형 전력 솔루션이 기술 전시의 중심에 선 이유다.

도시 인프라도 같은 맥락에서 재조명된다. 스마트시티라는 용어는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지만, CES 2026에서 다뤄지는 도시는 이전과 다르다. 교통, 전력, 물, 통신이 각각 운영되는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도시다. AI는 이 통합 운영의 핵심 도구로 활용된다. 교통 흐름과 전력 수요, 재난 대응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되는 구조가 제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단위의 인프라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에너지와 전력, 물 관리 기술은 단순한 산업 솔루션을 넘어 외교와 안보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CES 2026에서 국가 기반 인프라 기업의 존재감이 커진 이유다. 기술 전시회에서 보기 드물던 전력·유틸리티 기업이 중심에 서는 장면은 산업 질서 변화의 상징에 가깝다.

한국 기업의 움직임은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력, 원전, 수자원 관리 등 인프라 전반에 걸친 기술 경험은 AI 시대에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CES 2026에서 한국 기업이 전력 관리, 에너지 저장, 지능형 인프라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운 배경이다. 제조와 IT에 집중됐던 기술 담론이 국가 인프라 역량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력과 인프라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막대한 투자와 장기적 운영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번 구축되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CES 2026은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화려한 기술보다, 오래 버티는 시스템이 중요해졌다는 메시지가 전시장 곳곳에서 반복된다.

AI 시대의 기술 경쟁은 더 이상 알고리즘이나 사용자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전력과 에너지, 도시와 산업 인프라가 승부처로 떠올랐다. CES 2026이 보여준 여섯 번째 장면은 명확하다. 전력과 인프라를 장악한 쪽이 기술 경쟁의 주도권을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