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포커스③] 김영대 이후, K-팝을 누가 설명할 것인가
‘해설자의 부재’가 드러낸 비평 생태계의 공백과 문화 산업
[KtN 임우경기자]대중음악평론가 김영대의 부재는 한 명의 필자를 잃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영대가 담당해 온 역할은 평가나 순위 매김이 아니었다. 음악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며, 왜 지금 이런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이 설명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이 K-팝 산업과 문화 담론 전반에서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K-팝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산업 축으로 자리 잡았다. 성과는 숫자로 확인되고, 영향력은 통계로 입증된다. 그러나 규모가 커질수록 설명은 더 필요해진다. 성취가 커질수록 오해도 함께 커지고, 찬사와 비판은 더욱 감정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김영대는 이 사이에서 열광과 냉소를 동시에 낮추는 설명의 언어를 제공해 왔다. 김영대가 사라진 자리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주던 해설 장치가 사라진 상태에 가깝다.
설명이 줄어들 때 나타나는 문화의 모습
설명이 사라지면 문화 담론은 쉽게 극단으로 이동한다. K-팝을 둘러싼 논의도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는 세계적 성공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피로와 반감이 증폭된다. 성과는 신화로 소비되고, 문제는 도덕적 비난이나 감정적 충돌로 축소된다. 이 과정에서 산업 구조와 문화적 맥락은 뒷전으로 밀린다.
김영대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을 막아내는 일이었다. 김영대는 성취를 말하면서도 비용을 언급했고, 열광을 설명하면서도 소진을 외면하지 않았다. 팬덤을 존중하면서도 시스템을 묻고, 기획사를 이해하면서도 책임의 문제를 흐리지 않았다. 이런 설명이 줄어들수록 K-팝 담론은 감정의 소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대표 해설자’라는 호명의 이면
김영대는 오랜 시간 ‘K-팝을 설명하는 대표 인물’로 불렸다. 해외 언론 인터뷰, 시상식 중계, 강연과 방송에서 김영대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호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대중음악을 이해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과 거리감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또 다른 문제를 남겼다. 한 사람의 설명이 기준처럼 소비되는 순간, 다른 해석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밀려난다. 김영대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K-팝 비평은 몇 개의 이름에 의존하는 형태로 굳어졌다. 이는 특정 평론가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넘어, 비평 생태계의 취약함을 드러낸다. 설명이 개인의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문화 저널리즘이 놓인 현실
김영대의 부재는 문화 저널리즘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드러낸다. 음악 비평을 장기적으로 다룰 지면과 플랫폼은 줄어들었고, 빠른 반응과 클릭이 우선되는 환경에서 설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깊이 있는 분석보다 즉각적인 반응이 요구되는 구조에서, 맥락을 쌓아 올리는 작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 됐다.
김영대는 이 환경 속에서도 설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문과 온라인, 방송과 강연을 오가며 음악 이야기를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 역할이 개인의 노력과 사명감에 의존해 유지됐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로 남는다. 설명이 개인의 헌신으로만 유지되는 구조에서는 다음 세대가 같은 자리를 맡기 어렵다.
다음 해설자에게 요구되는 조건
누가 K-팝을 설명할 것인가. 단순히 음악 지식이 많은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 팬덤과의 거리 조절, 문장의 책임감이 함께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은 감정의 편에 서지 않는 태도다. 찬양도 냉소도 아닌 설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김영대의 글이 신뢰를 얻은 이유는 단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대는 관찰과 분석을 통해 도달한 결론을 제시했고, 그 근거를 독자 앞에 놓았다. 판단의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훈련과 환경의 결과다. 개인의 재능 이전에, 그런 설명이 가능하도록 지지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산업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시점
K-팝 산업은 다시 한 번 전환점에 서 있다. 글로벌 시장의 반응은 이전보다 복잡해졌고, 팬덤의 피로도는 누적되고 있다. 플랫폼 중심 구조는 수익을 키웠지만 갈등도 함께 키웠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과가 아니라, 현재 위치를 정확히 짚는 언어다.
김영대는 K-팝을 ‘잘 나가는 산업’으로만 부르지 않았다. 언제 강해졌고, 어떤 지점에서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함께 말했다. 이런 설명이 사라질수록 산업은 자기 점검의 언어를 잃는다. 숫자와 기록만 남고, 맥락은 흐려진다. 문화는 설명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
설명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설명은 개인의 능력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구조가 만들어야 하는가. 김영대의 작업은 개인의 역량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동시에 개인에게 모든 역할이 집중될 때 얼마나 취약해지는지도 드러냈다.
K-팝은 더 이상 설명 없이 이해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문화가 커질수록 해설은 필수 기능이 된다. 김영대가 남긴 문장들은 여전히 참고점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문장 위에 새로운 설명이 쌓이지 않는다면, K-팝 담론은 다시 오해와 소음의 반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김영대는 K-팝을 가장 성실하게 설명한 사람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또 다른 김영대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설명이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문화 산업의 기본 기능으로 작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 과제가 지금, 가장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