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제③] 정부는 왜 다시 경제의 전면에 섰는가

시장 이후의 시대, 재정이 성장의 조건이 된 이유

2025-12-30     박채빈 기자
전문가들이 말하는 경제 2026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세계경제에서 정부의 존재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한동안 시장에 맡겨졌던 성장의 방향과 속도는 더 이상 민간의 판단만으로 조정되지 않는다. 재정은 보조 수단이 아니라 중심 장치가 됐다. 이 변화는 일시적인 위기 대응이 아니라 구조 전환에 가깝다.

2026년을 향한 세계경제 전망을 정리한 LG경영연구원의 「2026년 국내외 경제전망」은 각국 정부의 재정 역할 확대를 공통된 흐름으로 제시한다. 경기 부양을 넘어 성장의 하단을 방어하는 기능이 정부 재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민간이 주도하던 성장 공식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국가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민간 성장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과거의 성장 구조는 비교적 단순했다. 기업이 투자하고, 가계가 소비하며, 무역이 이를 확장했다. 정부는 균형을 조정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이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소비는 구조적으로 둔화됐다. 고물가와 인구 구조 변화는 소비 여력을 제한한다. 무역은 보호무역과 지정학 리스크로 제약을 받는다. 기업 투자는 비용 상승과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민간 부문의 자율적인 성장 동력이 약해진 환경이다.

이 공백을 그대로 두면 성장률은 더 빠르게 하락한다. 각국 정부가 개입을 확대하는 배경이다. 재정은 경기 조정 수단이 아니라 성장 유지 장치로 성격이 바뀌었다.

재정의 복귀, 위기 대응이 아닌 구조 대응

이번 재정 확대는 위기 대응과 성격이 다르다. 금융위기나 팬데믹 당시 재정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임시 수단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재정은 구조적 저성장을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

LG경영연구원의 「2026년 국내외 경제전망」은 주요국이 전략산업, 공급망, 인프라를 중심으로 재정을 배치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단기 소비 진작보다 중장기 생산성 방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전력망, 교통 인프라는 민간 투자만으로 속도를 내기 어렵다. 정부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재정은 민간 투자의 길을 여는 역할로 전환됐다. 직접 성장의 주체가 되기보다, 민간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방식이다.

통화정책과 결합된 재정의 영향력

재정의 영향력은 통화정책과 결합되면서 더 커졌다. 금리는 완화 국면에 들어섰고, 유동성은 다시 공급되고 있다. 기억할 점은 통화정책 단독으로는 성장을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금리를 낮춰도 소비와 투자가 자동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이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이 재정이다. 재정은 특정 산업과 프로젝트로 자금을 유도한다. 통화 완화가 넓게 깔린 토양이라면, 재정은 방향을 정하는 장치다. 이 조합이 현재의 성장 방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 구조는 국가별 차이를 확대한다.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는 성장률 하락을 완만하게 관리한다. 여력이 부족한 국가는 통화 완화의 효과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같은 글로벌 환경에서도 성장 경로가 갈리는 이유다.

전략산업 중심 재정의 부작용

재정의 전면 복귀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전략산업 중심 재정은 산업 간 격차를 키운다. 자금이 몰리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의 온도 차는 커진다.

인공지능, 반도체, 에너지 인프라는 빠르게 확장된다. 전통 제조업과 내수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성장률 숫자는 유지되지만 체감 경기는 분화된다. 정책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배경이다.

LG경영연구원의 「2026년 국내외 경제전망」 역시 재정 확대가 산업 구조 재편을 가속화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정부 개입이 늘어날수록 선택과 배제의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국가별 격차가 커지는 성장 환경

재정 중심 성장 구조는 국가 간 격차를 확대한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전략산업 투자를 이어간다. 일부 신흥국은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얻지만, 상당수 국가는 재정 제약으로 대응이 제한된다.

이 격차는 단순한 성장률 차이가 아니다. 산업 경쟁력과 기술 축적 속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한 번 벌어진 격차는 단기간에 줄이기 어렵다. 정부의 역할이 커질수록 국가의 재정 능력은 곧 경제 경쟁력이 된다.

시장 이후의 경제 질서

정부가 다시 경제의 전면에 등장한 이유는 명확하다. 시장만으로는 현재의 구조적 저성장을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은 더 이상 예외적인 개입이 아니다. 상시적인 성장 조건이 됐다.

이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민간 성장 공식이 복원되지 않는 한 정부의 역할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재정은 성장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지속 가능성은 또 다른 문제다.

2026년, 재정을 읽는 기준

2026년 세계경제를 이해하려면 정부의 재정 역할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성장률의 크기보다 재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전략산업, 인프라, 기술로 향하는 재정은 성장률을 방어한다. 소비성 재정은 한계를 드러낸다.

이번 국면에서 정부는 조정자가 아니다. 조건 설계자다. 시장 이후의 경제 질서는 이미 시작됐다. 재정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