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경제 인사이트⑥] 가격은 그대로인데 살 사람은 없다? 미술 시장의 '폭탄 돌리기

2025년 고가 미술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

2026-01-04     임민정 기자
Gustav Klimt, Blumenwiese (Blooming Meadow) (ca.1908). 사진=Sotheby’s.

[KtN 임민정기자]2025년 고가 미술 시장은 겉으로 보기에 안정된 흐름을 유지했다. 전체 거래 규모는 줄었지만, 최고가 거래는 성사됐고 일부 작품은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숫자만 놓고 보면 회복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판단은 절반만 맞다. 가격이 유지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시장의 체력은 오히려 약해졌다. 고가 미술 시장은 지금 안정과 부담이 동시에 누적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가격 유지의 방식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25년 최고가는 거래 저변이 넓어지며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선택지가 줄어든 상태에서 특정 작가와 특정 작품에 자금이 집중되며 형성된 가격이다. 참여자의 폭은 좁아졌고, 거래의 중심은 더 뚜렷해졌다. 기록은 남았지만, 시장의 층위는 단순해졌다. 이 구조는 외형상 안정감을 주지만, 충격을 흡수할 여지는 줄어든다.

고가 미술 시장에서 위험은 가격 하락보다 구조 약화로 먼저 나타난다. 선택의 폭이 넓은 시장은 변수를 흡수한다. 반대로 선택지가 제한된 시장은 작은 변화에도 크게 반응한다. 2025년 고가 미술은 후자에 가까웠다. 몇몇 작가와 출처가 분명한 작품이 시장을 떠받쳤고, 그 외 영역은 조용했다. 이 집중은 안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취약성을 키운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담이 쌓이고 있다. 에스테이트 세일과 정리 매각은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대 교체는 이미 시작됐고, 대규모 소장품 이동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속도다. 고가 미술은 본질적으로 느린 시장이다. 판단과 결제에 시간이 걸리고, 거래 간 간격도 길다. 물량이 늘어나는 속도가 이 흡수 속도를 앞서기 시작하면 가격은 압박을 받는다.

Matthew and Carolyn Bucksbaum. 사진=Sotheby'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가격 압박은 반드시 급락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더 흔한 모습은 거래 정체다. 출품은 이어지지만 낙찰은 줄어든다. 추정가는 유지되지만 실제 거래는 미뤄진다. 표면적인 가격은 버티지만, 시장의 온도는 내려간다. 고가 미술의 위험은 그래프보다 체감에서 먼저 드러난다.

제도 환경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상속과 증여에 대한 과세 논의는 고가 자산을 직접 겨냥한다. 세금 부담은 매각 시점을 앞당기고, 물량 출회를 자극한다. 매각의 이유가 늘어날수록 가격 협상력은 약해진다. 고가 미술은 감정 자산이지만, 동시에 법과 제도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자산이기도 하다.

자금 운용 환경의 변화도 무시하기 어렵다. 금리 변동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산 배분 전략은 계속 조정된다. 고가 미술은 현금 흐름을 만들지 않는다. 보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관리 비용과 기회 비용이 함께 누적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판단이 늘어날수록 고가 미술은 선택지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시장 내부의 기준 편중도 위험 요인이다. 가격 형성이 소수의 경매, 소수의 도시, 소수의 컬렉션에 집중되면서 기준의 신뢰가 특정 경로에 의존하게 됐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어느 무대에서 거래됐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기준이 분산되지 못하면 시장은 보수적으로 수축한다. 거래는 더 느려지고, 가격은 더 까다로워진다.

Paul Klee, Kopf (Head) (1919). 사진=Sotheby'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중간 가격대의 약화 역시 장기 부담으로 이어진다. 신규 수집가가 성장할 수 있는 경로가 좁아지면 상단 수요는 자연스럽게 고령화된다. 고가 미술은 세대 교체와 분리될 수 없다. 다음 세대의 참여 없이 가격만 유지되는 시장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2025년은 이 문제를 드러낸 해였다.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 고가 미술은 상징적 소비의 성격을 지닌다. 사회 분위기가 불안정할수록 상징 소비는 위축된다. 가격이 유지되더라도 거래 빈도는 줄어든다. 거래가 줄어들면 가격 기준은 약해진다. 기준이 약해진 가격은 언제든 재조정될 수 있다.

이 모든 부담이 당장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고가 미술은 여전히 강력한 자본을 배경으로 한다. 다만 시장의 작동 방식은 이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최고가는 남을 수 있다. 기록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이 시장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앞으로의 고가 미술은 상승과 하락보다 선별과 조정의 문제에 가까워진다.

Alex Katz, Joan (1974). 팝아트는 20세기 중반, 예술과 대중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미술적 언어를 창조한 중요한 예술 운동이다./사진= Sotheby'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제 중요한 것은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그 가격이 유지되는가이다. 출처, 보유 기간, 거래 경로, 결제 환경이 동시에 맞물려야만 고가 거래가 성사된다. 이 중 조건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가격은 쉽게 멈춘다. 고가 미술 시장은 점점 '조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2025년은 회복과 경고가 동시에 존재한 해였다. 가격은 유지됐지만, 부담은 줄지 않았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형태를 바꿔 누적됐다. 고가 미술 시장의 과제는 상승이 아니다. 구조를 관리하는 일이다. 구조가 흔들리면 가격도 함께 흔들린다.

고가 미술이 오래 남기 위해서는 기록보다 폭이 필요하다. 선택의 다양성, 참여자의 확대, 거래 경로의 회복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가격은 구조 위에서만 유지된다. 2025년 이후 고가 미술 시장은 바로 이 구조를 시험받는 단계에 들어섰다.